지난해 협상은 무산됐지만 자금 지원안은 유효…국내 사업 확장 공세 속 ‘인수 시너지’ 의견 분분
#11번가 재매각 작업 시동
1월 초 11번가는 씨티글로벌마켓증권과 삼정KPMG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고 재매각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매각 주체는 11번가 지분 80.26%를 보유한 SK스퀘어가 아닌 지분 18.18%를 가진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이다.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은 사모펀드 운용사 H&Q코리아와 국민연금, 새마을금고로 구성된 재무적투자자(FI)다. 이번 매각은 SK스퀘어보다 FI가 자금을 먼저 회수하는 워터폴(Waterfall) 방식으로 진행된다.
앞서 2018년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은 11번가에 약 5000억 원을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다. 당시 11번가는 지난해 9월 30일까지 기업공개(IPO·상장)를 통한 투자금 회수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고 지난해 11월 말 SK스퀘어가 FI 지분을 되사올 수 있는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자산을 살 수 있는 권리)이 발동됐다. SK스퀘어는 콜옵션 행사를 포기했다. 투자 약정에 따라 FI들은 SK스퀘어가 보유한 11번가 지분까지 한꺼번에 제3자에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청구권을 행사하게 됐다.
관심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큐텐의 인수전 재참여 여부다. 큐텐은 G마켓 창업자인 구영배 대표가 세운 회사다. 지난해 9월부터 큐텐은 SK스퀘어와 11번가 인수를 놓고 협상을 진행해왔다. 큐텐과 SK스퀘어는 5000억 원의 현금을 동반한 지분스왑 인수 구조에는 합의했다. 큐텐과 인연이 있는 사모펀드 운용사 코스톤아시아와 IMM인베스트먼트는 메리츠증권으로부터 5000억 원을 조달해 펀드를 결성한 후 이를 큐텐에 투자할 예정이었다. 메리츠증권은 SK스퀘어에 투자금에 대한 지급보증을 요구했으나 SK스퀘어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지난해 11월 협상은 결렬됐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코스톤아시아와 IMM인베스트먼트가 큐텐에 자금을 지원하는 안이 백지화되지는 않았다. 두 회사는 큐텐이 11번가 재인수에 나서면 자금 지원을 그대로 하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구영배 큐텐 대표의 의사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지난해 SK스퀘어와 큐텐이 11번가 협상을 할 때보다 11번가 매각희망가가 낮아졌기 때문에 투자금 규모는 기존 5000억 원 대비 줄어들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IB(투자은행) 업계 한 관계자는 “구 대표가 11번가를 인수하는 구조는 긍정적으로 봤다. 다만 이미 한 번 협상이 중단됐기 때문에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신중히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큐텐이 11번가 재인수에 나서고 코스톤아시아와 IMM인베스트먼트가 투자금 조성을 추진하면 펀드출자자(LP)로는 메리츠증권이 다시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IB 업계에서는 지난해 SK스퀘어 주도로 진행된 매각 협상 과정보다는 FI 주도로 이뤄지는 이번 매각 협상이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FI의 매각 희망가는 원금 손실을 보지 않는 수준인 5000억~6000억 원 정도다. FI의 매각 의지가 강한 셈이다.
큐텐이 11번가 인수 딜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는다면 구체적인 인수 방식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IB업계 관계자는 “큐텐은 현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분스왑 방식이 수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원매자에 따라 인수 구조가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라며 “큐텐이 재인수에 나서더라도 매각 희망가가 낮아졌기 때문에 구체적인 인수 구조는 지켜봐야 할 듯하다”고 내다봤다.
#큐텐, 한국 시장 외연 확장 지속
큐텐이 11번가 인수자 물망에 계속 오르는 것은 큐텐이 한국 시장에 지속적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큐텐은 2022년 9월 티몬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3월과 4월에는 인터파크커머스(쇼핑·도서부문)와 위메프를 연이어 인수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2022년 거래액 기준으로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는 각각 8~10위에 올라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큐텐의 한국법인 큐텐코리아가 유한책임회사에서 주식회사로 조직을 변경했다. 큐텐코리아의 대표는 G마켓 출신 목주영 티몬 사내이사가 맡았다. 위메프와 인터파크커머스 사내이사를 맡고 있는 김효종 씨와 인터파크커머스 사내이사인 김준영 씨가 큐텐코리아 사내이사직을 맡았다. 주식회사로 조직 변경을 하기 위해서는 법원 인가를 받아야 한다.
주식회사는 1주당 1의결권이 부여되는 반면 유한책임회사는 사원 1명당 1의결권이 부여된다. 외부 투자가 사실상 어렵다. 권성은 법무법인 여백 변호사는 “주식회사는 자본 조달이 용이하다. 자본 조달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금 확보가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결국 남은 것은 구영배 대표의 결정이다. 큐텐이 11번가를 인수하면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점유율 11.6%(2022년 기준)로 쿠팡과 네이버에 이은 업계 3위로 도약한다. 이커머스 업계에서 영향력이 높아지면 셀러(판매자)들로부터 들여오는 상품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더욱이 현재 큐텐은 크로스보더 커머스(CBEC·Cross-border E-commerce)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큐텐은 물류 풀필먼트 사업을 영위하는 자회사 큐익스프레스를 활용해 티몬과 위메프 등의 해외 직구(직접구매)와 역직구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큐익스프레스는 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 입점 셀러를 대상으로 통합 풀필먼트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큐텐은 11번가를 인수하면 입점 셀러를 다수 확보할 수 있다. 특히 큐텐은 자회사 큐익스프레스의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상황이다. 큐익스프레스는 나스닥 상장을 위해 자문사와 IPO 시기를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큐텐이 11번가 인수에 다시 나설지를 두고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유통업계 다른 관계자는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도 아직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며 “11번가는 적자라 투자 비용 부담도 감내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유통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11번가와 오랜 협력을 했던 아마존도 시큰둥하고 알리익스프레스도 인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마트도 G마켓을 인수했지만 큰 존재감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큐텐의 11번가 인수가 급한 상황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