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시장 공들이는 알리 “인수 계획 없다” 부인하지만…실적 절실 SSG닷컴 등 중국 업체들 공세 ‘예의주시’
매각가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만큼 매각작업도 순항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그럼에도 국내 사모펀드나 대기업은 11번가에 관심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에서는 11번가 인수 후보로 중국 알리바바그룹, 미국 아마존 등 외국계 회사를 거론한다.
11번가 매각전을 계기로 국내 이커머스 기업 간 과열 경쟁이 재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우려하는 곳이 이마트다. 중국 기업들의 11번가 인수전 참여 여부에 따라 이마트 자회사인 지마켓글로벌, SSG닷컴의 기업가치가 요동칠 수 있다.
#알리 국내시장서 폭발적 성장
알리바바그룹 계열사 알리익스프레스(알리)는 최근 국내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알리는 지난해부터 국내 시장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알리는 한국 현지 물류센터 건설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알리의 위상은 협력사인 CJ대한통운의 동향에서 확인할 수 있다. CJ대한통운은 최근 국제특송센터(ICC)의 생산능력(CAPA)을 월 200만 박스에서 1000만 박스로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는 관세 당국과의 조율을 준비 중인 단계로 알려졌다. CJ대한통운의 2023년 알리 취급 물량은 3000만 박스였으나 올해는 5000만 박스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CJ대한통운의 알리 물동량은 지난해 1분기 346만 박스에서 지난해 3분기 904만 박스로 3배 가까이 폭증했다.
일단 알리는 11번가 인수 가능성을 부인한 바 있다. 레이 장 알리 한국 대표는 지난해 12월 6일 기자간담회에서 “11번가 인수와 관련한 아무런 계획도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11번가 인수전에 참여할 가능성도 있다. 알리가 가장 공들였던 미국 시장은 미국 정부로 인해 앞날이 불안한 상태다. 미국 정부는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관세 면제 한도를 800달러(약 106만 원)로 높였다. 그러나 해당 조치가 중국 플랫폼들의 시장 지배력만 높였다는 이유로 한도를 다시 낮추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데이터 보안 관련 조사에도 착수했다. 불투명한 개인정보 보호 및 사이버 보안 관리 관행, 중국 정부의 데이터 사용 가능성 등을 짚어볼 계획이다. 이런 추세는 유럽도 동일하다. 이 때문에 알리와 테무는 일단 미국 시장보다 한국 시장 공략을 우선할 가능성이 있다.
국내 해외 직구 이용자 수는 2018년 519만 명에서 2022년 1557만 명으로 증가했다. 폭발적인 성장세다. 다만 11번가 월간 이용자 수도 1300만~1400만 명에 달한다. 해외 직구는 심리적 거리감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용자가 분명히 있다는 방증이다. 알리가 11번가를 인수하면 이들까지 소비자로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대 의견도 있다. 알리가 품질 논란과 소비자 보호 이슈 등을 고려해 국내 진출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시대에 현지 쇼핑몰이 따로 필요하지는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알리바바의 또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 타오바오는 중국 국내몰인데도 국내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해외직구몰 2위에 올라 있다.
#이마트 계열사 주목받는 내막
SK그룹이 11번가를 포기한 것에서 보듯 국내 대기업들은 이커머스에 비관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GS리테일은 GS프레시몰 사업을 중단했고, 야놀자는 인터파크 쇼핑 부문을 큐텐에 매각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마트를 주목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대대적 인사 이후 올해는 수익성 회복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런데 이마트 자회사 신세계건설의 실적 둔화 가능성이 크다. SSG닷컴과 지마켓은 적자를 조금이라도 덜 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SSG닷컴은 올해 기업공개(IPO·상장)를 목표로 하고 있다. SSG닷컴으로서는 목표 기업가치를 맞추기 위해 성장 및 수익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SSG닷컴은 한때 기업가치 10조 원까지 거론됐지만 현재는 내부적으로 목표 기업가치를 낮춘 것으로 전해진다.
SSG닷컴은 아직 지난해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증권은 SSG닷컴이 지난해 매출 1조 7250억 원, 영업손실 1000억 원을 거둔 것으로 추정한다. SSG닷컴은 2022년 매출 1조 7447억 원, 영업손실 1112억 원을 거뒀다. 매출은 전년 대비 역성장했다. 적자 폭은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1000억 원에 육박한다. SSG닷컴으로서는 목표 달성을 위해 올해 2조 원 중반대 매출과 적자폭 축소가 필수적이다. 쉽지 않은 목표인 데다 알리의 공세 수위에 따라 실현 가능성은 더 멀어질 수 있다.
쿠팡은 최근 LG생활건강과 화해했고, CJ제일제당 등과도 다시 제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모두 중국 이커머스 등장 때문에 나온 판도 변화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변하는 상황이다. 이마트는 최근 마트와 슈퍼마켓, 편의점의 통합 소싱 및 시너지 창출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SSG닷컴에는 특별히 눈에 띌 만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다.
수년 전 캔톤페어(광저우 무역박람회)에 참가했다는 한 자산운용사 매니저는 “캔톤페어에 가보면 수만 원짜리 세탁기와 TV 모니터, 1000원짜리 손풍기 등이 즐비하다”며 “이런 제조 기지가 있는 나라의 이커머스를 우리나라 기업이 이기려면 대규모 연합 및 시너지 창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SSG닷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중국 업체들은 대부분 저가 제품을 판매하지만 SSG닷컴은 상대적으로 고가 제품 위주 판매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SSG닷컴 관계자는 “SSG닷컴은 식품이나 명품 등 퀄리티가 중요한 상품을 많이 판매하고 있어 해외 직구 상품과는 시장이 겹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