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자산 활용 여력 있고 전기차 부문 매력적…현대차, 지배구조상 ‘운신의 폭’ 좁아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놓고 따져도 기아가 현대차를 앞선다. 현대차의 매출은 기아보다 60% 많지만 영업이익은 약 33% 많다. 기아가 같은 자본으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비효율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현대차는 현대자동차그룹 내 가장 큰 계열사지만 지배구조 상으로는 중간에 있다. 순환출자를 해소하지 못한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현대차의 자산을 허투루 집행할 수 없다.
기아는 지난 1월 31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 41조 3703억 원을 기록하며 현대차(41조 1640억 원)를 제쳤다. 그러나 다음날인 2월 1일 종가 기준으로 현대차의 시가총액이 43조 9986억 원으로 늘어나며 기아(42조 7373억 원)를 재역전했다. 이어 2월 2일 두 회사의 시가총액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2월 5일 이후로는 현대차가 앞서나가고 있다.
현재는 현대차가 시가총액에서 기아에게 우위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기아 내부에서는 경영진의 사기가 한층 고무됐다는 후문이다. 기아의 주가가 우상향하면서 경영진의 리더십에도 좋은 점수가 매겨질 전망이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연세대학교 불문과 출신으로 ‘해외통’이라는 평가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기아 사장을 맡을 당시 송 사장은 기아 프랑스 판매법인장, 수출기획실장 등을 맡았다.
기아가 다시 한 번 주주환원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 주요 업체들은 최근 수년간 주주환원정책을 강화해 왔고, 올해 주주환원정책이 발표된 것도 최근의 일”이라며 “단기간 내 올해 정책을 좋은 쪽으로 고쳐 수정 발표할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기아는 현대차에 비하면 여력이 있다. 기아에게는 중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 있다. 바로 현대모비스 지분이다. 기아는 현대모비스 지분 17.42%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현대차그룹의 현 지배구조를 감안했을 때 정의선 회장 또는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언젠가는 기아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이 아직 지분 승계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입장에서 보면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는 사실상 현대모비스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 7.19%를 갖고 있고, 현대모비스가 현대차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밖에 없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도 많지 않으므로 증여 또는 상속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정의선 회장이 어떤 형태로 지배구조를 개편할지는 현재로서 짐작하기 어렵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현대차를 동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가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방법도 있지만 현대글로비스는 그 정도의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등이 인적분할을 통해 중간지주회사를 설립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기아 입장에서만 보면 현대모비스는 언젠가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인 셈이다. 기아는 현대모비스 지분 처리 방안을 두고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은 적은 없다. 그렇지만 기아 내에 주주 우선주의가 뿌리내린 만큼 주가에 긍정적 요인이 될 전망이다.
나아가 현대차그룹이 기아를 전기차 전문회사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기아의 전기차 부문이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윤혁진 SK증권 연구원은 테슬라의 올해 매출 증가율은 20%를 밑돌지만 기아의 전기차 매출 증가율은 50%가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윤혁진 연구원은 “테슬라는 모델3, 모델Y의 노후화와 인공지능(AI) 사업 불투명성으로 주가가 부진하고, 도요타는 각종 테스트, 데이터 조작 사건이 불거지며 신뢰성에 타격을 받고 있다”며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기아의 저평가 상황(환율, 밸류에이션, 경쟁력 등)이 무척이나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 펀드매니저는 “기아는 전기차 사업을 아주 놀라울 정도로 잘하고 있다”며 “지배구조 개편의 우려가 약간 있는데 현대모비스 지분 헐값 매각 등과 무관하다는 점이 입증되면 순수 전기차 회사로 가치 상승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현대차는 자산의 효율적 운용이 어려운 기업으로 꼽힌다. 현대차는 현대차증권,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현대건설 등 비주력 계열사 지분은 물론이고, HD현대, 현대오일뱅크, 현대지에프홀딩스, 현대그린푸드, 현대아산 등 계열분리된 범 현대가 지분까지 갖고 있다. 또 현대차는 KT(지분율 4.69%), 한국경제신문(20.55%) 등도 보유 중이다.
현대차 소유의 서울 삼성동 옛 한전 부지도 자산가치는 높지만 당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자산이다. 신사업 투자도 현대차의 이익률을 갉아먹는 요소로 지목된다. 도심항공교통(UAM)과 로봇 분야는 미래 먹거리지만 당장은 이에 대한 지출이 만만치 않다.
자산 효율 운용의 어려움 때문인지 현대차는 기아에 비하면 자사주 소각에도 소극적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3155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는 약 5년 만에 처음이었다. 기아는 현대차보다 많은 조 단위 매입 및 소각 계획을 발표하고 이행 중이다. 다만 현대차는 추가 주주환원정책 계획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1월 현대차 주가가 부진했을 당시 “(현대차가) 기아와 주가 흐름 차이를 만든 가장 큰 요인은 보수적인 가이던스(목표)보다는 자사주 매입의 부재인 것으로 판단된다”며 “공격적인 가이던스, 자사주 매입으로 적극적인 주가 부양 의지를 나타낸 기아와 상반된 모습으로 비친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