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계열·지방 의대생 이탈 N수생 증가 가능성…비수도권 집중 증원 ‘지역인재전형’ 수험생 늘 수도
#19년 만에 역대 최대 증원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공개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고 의대 정원을 3058명에서 5058명으로 2000명 늘리기로 결정했다. 복지부가 2023년 11월 전국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진행한 의대 증원 수요 조사 결과(2151명~2847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기존 인원의 65.4%에 달하는 사실상 적지 않은 수치다. 전국 의대 정원이 2006년부터 3058명으로 동결 상태임을 감안하면 19년 만에 증원이 이뤄지는 셈이다.
시행 시기는 올해 고3 학생이 치르는 수능부터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6일 오후 열린 브리핑에서 “1만 5000명의 수요 가운데 2035년까지 1만 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고자 한다”며 “2025학년도부터 2000명이 추가로 입학하게 되면 2031년부터 배출돼 2035년까지 최대 1만 명의 의사 인력이 확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대 입학부터 전문의가 되기까지는 통상 10년이 소요되므로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필수·지역의료인력 부족에 대한 방침으로 마련된 정책인 만큼 증원분은 비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배정된다. 복지부는 “비수도권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증원분을) 집중 배정한다”며 “추후 의사 인력 수급 현황을 주기적으로 검토·조정해 합리적으로 수급 관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즉각 반발했다. 의협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의료계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할 경우 총파업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전공의와 개원의가 총파업에 돌입할 시 즉시 업무복귀 명령을 내리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복지부 역시 의사들이 집단 휴진에 들어가면 휴진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개시명령서를 전달하고 위반자에 대해 행정처분과 필요 시 형사고발 조치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혀 양측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대 열풍 계속될 것”
강대강 대치 속 가장 큰 변화를 맞게 될 곳은 입시 시장이다. 늘어난 의대 정원은 2024학년도 기준 의약학계열을 제외한 서울대 자연계(이공계 포함) 정원 1775명보다 많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5개 이공계 특수대 정원 1600명을 상회한다.
의대 진학 문호가 넓어지면서 업계는 상위권 학생들이 진로를 바꾸거나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N수생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의대 정원이 늘어남에 따라 합격 점수가 일정부분 하락하면서 과거에는 점수가 부족해 의예과 대신 일반 학과에 진학한 학생 중 상당수가 재도전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 까닭이다. 종로학원 분석에 따르면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총 91개 자연계 일반 학과(의약학 계열 제외) 가운데 의대 지원이 가능한 점수대의 학과는 26개(28.6%)인데, 의대 정원이 2000명 늘어날 경우 그 수는 62개(68.1%)까지 확대된다.
이에 따라 의약계열 학생들의 대거 이탈도 예상된다. 치과대·한의대·약대를 준비하거나 이미 재학 중인 학생들이 낮아진 의대 문턱에 진로를 변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2년 기준 약대 중도탈락생은 206명으로 이 가운데 절반이 신입생이었다. 종로학원은 입학성적이 높은 약대 특성상 의대 입시에서 아쉽게 탈락한 신입생들이 의대 진학에 재도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 의대생의 경우 수도권 의대 진학을 위해 N수를 택할 수도 있다. 증원 소식을 접한 지방 의대 출신의 현직 의사는 “수도권 의대 진학을 위해 N수를 할 지방 의대생도 있을 것이다. 10년 전에도 상위권 의대에 가기 위해 수능을 다시 응시하는 동기들이 적지 않았다. 이미 의대 진학을 위해 여러 차례 수능을 보고 입학한 친구들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복지부 발표와 같이 지방 의대의 지역인재 선발전형이 확대된다면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수험생들은 일찍부터 지방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역인재 전형은 비수도권 지역 소재 중학교에 입학해 졸업하고 그 의대가 소재한 지역의 고등학교를 졸업해야만 지원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경쟁률이 전국단위 선발전형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실제로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4학년도 입시에서 지방권 27개 의대의 수시전형 중 지역인재전형의 경쟁률은 10.5 대 1로 전국단위 선발전형(29.5 대 1)의 3분의 1 정도로 낮았다. 진학사 어플라이 통계를 봐도 2023년 경남 인제대학교 의예과 지역인재전형 경쟁률은 8.14 대 1, 전북 원광대학교의 경우 7.33 대 1로 인천 인하대학교 학생부종합 전형 경쟁률(30.25 대 1)보다 낮았다. 의대 진학이 목표라면 지방이 유리한 셈이다.
한편 서울 대치동의 한 입시전문학원 관계자는 6일 “정부 발표 뒤 오후 내내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졸업생 가운데 성적이 좋았던 학생들 위주로 반수 상담 전화가 들어왔고 문과에서 이과로 진로 변경을 고민하는 예비 고1 학부모들의 전화도 꽤 받았다. 또 지방 의대 정원이 늘어남에 따라 지역인재전형을 노리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중학생도 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당장 오는 3월 입학을 앞둔 신입생 가운데 입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에, 어느 학교에, 몇 명이 늘어나는지 발표가 나오면 본격적으로 동요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정확한 데이터는 올해 수능을 치러봐야 나오겠지만 향후 몇 년 동안은 의대 열풍이 계속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