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감독 선정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감독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영화에 관계한 많은 전문가가 수많은 검증단계를 걸쳐 신중하게 감독을 선정한다. 그리고 감독으로 선정한 이상 그에게 작품에 대한 전권을 위임하면서 그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감독을 지원한다.
혹자는 한 사람에게 너무나 많은 권한을 부여한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한다. 그러나 100년이 넘는 영화산업에서 이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판단 아래 할리우드도 유럽도 한국도 세계 어느 나라의 영화산업도 공히 같은 방식으로 감독의 권위를 인정한다.
신인 감독이 있었다. 그 감독은 무려 10년이 넘는 조감독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기량을 연마했고 게다가 작가 생활도 같이 하면서 감독으로의 지난한 훈련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기대하고 고대하던 감독으로 데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 상업영화의 평균 감독 데뷔 연령이 만 40을 넘는다고 한다.
그 신인 감독이 촬영을 하던 중 배우의 연기가 맘에 안 든다고 계속해서 엔지(NG·No Good, 재촬영을 의미) 사인을 냈다. 모니터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감독이 계속 NG사인을 내는 이유를 모르겠으나 현장에서 감독에게 왜 OK를 안 하냐고 할 수는 없기에 그저 묵묵히 지켜만 보았다.
감독은 무려 8번 정도 한 장면을 계속 촬영한 뒤에야 겨우 OK 사인을 내고 촬영을 마쳤다. 모든 스태프들도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 장면을 재촬영을 한 배우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촬영 후엔 쏜살같이 인사도 없이 촬영장을 빠져나갔다.
촬영이 끝나고 감독과 함께 늦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재촬영을 8번이나 한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감독은 “미세한 감정 변화가 가짜같이 느껴져서 재촬영을 했다”고 답했다. 재촬영 이유가 미세한 감정 변화이고, 그 장면에서 감정 변화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에 감독의 재촬영의 이유를 납득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식사가 끝나고 감독과 함께 촬영한 장면을 복기했다. 그 장면을 8번이나 찍었고 감독은 8번째 촬영 분량에 만족했다는 걸 상기하고 촬영한 장면 8개를 다 섞었다. 즉 1~8번까지의 촬영장면을 마구 섞어버렸다. 그리고 감독에게 당신이 그 미세한 감정 변화가 좋아서 OK를 낸 장면을 찾아내라고 했다.
감독은 4번이나 선택을 한 뒤에야 OK 장면을 찾았다. 즉 자신도 그 장면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알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재촬영 이유가 미세한 감정 변화가 아니라는 걸 확인한 셈이었다.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 왜 그런 거야? 나에게 솔직히 말해줘. 그래야 내가 감독이 지금 어떤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 거고 그걸 알아야 도와주든지 개선하든지 할 거 아니야?”
감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솔직한 대답이었다.
“제가 신인 감독이라고 배우들이 저의 연출의도를 동의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제가 현장에서 최종책임자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사실 NG가 아님에도 재촬영을 지시했습니다.”
나는 감독에게 간곡히 말했다.
“감독의 권위는 일방적인 지시가 아니라 당신이 판단하는 것을 이 영화에 참여하는 배우, 스태프들이 납득할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야. 물론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당신의 판단을 따르겠지만 납득하지 못하는 당신의 판단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그리고 당신이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설명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면 당신의 권위는 그저 허울뿐인, 그저 명목상의 권위가 될 것이야. 그러니 당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당신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이용해서는 안 돼.”
지금 나도 영화를 찍고 있다. 우리 감독은 현장에서 주연배우와 책임스태프들은 물론 단역배우와 막내 스태프들에게까지 자기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를 자세히 그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설명을 한다.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은 그 영화를 찍고 있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함께하는 배우와 스태프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는 영화가 관객을 납득시킬 수 없기에.
200여 명이 모여서 촬영하는 영화현장도 이럴진데 5000만이 넘는 다양한 국민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 리더의 권위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는 권위는 권위가 아니라는 것을 정치인들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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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