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특수성 고려” “사생활 침해” 의견 분분…대법선 인정 판례 없어 “전원합의체까지 갈 듯”
장애아동이라는 특수성을 존중해서 증거로 받아줘야 한다는 입장과, 특수성을 한 번 인정해 주면 모든 사건에서 ‘몰래 녹취’가 등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공존한다. 아직까지 대법원은 제3자의 녹취를 증거로 인정해 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는 상황. 이번 사건이 2심을 거쳐, 대법원 판단까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검찰과 특수교사 모두 항소
수원지방법원이 주호민 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에게 벌금형 200만 원과 함께, 선고유예 판단을 내리자 검찰은 항소를 결정했다. 2월 7일 검찰은 “벌금형은 형이 약하다. 집행유예는 나와야 한다”며 항소했다고 밝혔다. 다만, 여론을 고려해 검찰시민위원회도 소집했다.
수원지검은 2월 6일 검찰시민위원회를 소집해 논의했는데 수원지검 관내에 거주하는 시민위원 11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검찰시민위원회에서는 참석자의 3분의 2 이상은 ‘검찰이 항소하는 게 적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반적인 경과 및 증거관계, 1심 판결 요지 등을 논의한 결과 “아동학대 사건의 특수성에 비추어 녹취파일 증거능력의 인정, 장애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 기준 정립 등의 필요성이 있다”고 다수의 의견이 모인 것이다.
검찰보다 하루 앞선 6일, 특수교사 윤 씨 역시 항소장을 제출했다. 윤 씨는 기자회견을 자청한 자리에서 “녹음기를 넣기 전 학부모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고려하고, 녹음만이 최후의 자구책이었는지 확인한 뒤 판결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항변했다.
#‘유죄 판단’은 가능해 보이지만…
윤 씨는 2022년 9월 13일 경기도 용인의 한 초등학교 맞춤 학습반 교실에서 주호민 씨 아들(당시 9세)에게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아휴 싫어. 싫어죽겠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고 발언한 혐의(정서적 학대)로 기소됐다. 이 사건은 주 씨 측이 아들에게 녹음기를 들려 학교에 보낸 뒤 녹음된 내용 등을 기반으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법조계에서는 ‘유죄 판단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구체적인 자료를 보지 못했음을 전제로 한 현직 판사는 “반복적으로 싫다는 말을 했고, 이 발언에 감정이 담겨져 있었다면 충분히 유죄로 볼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형사 재판 경험이 많은 판사 출신 변호사 역시 “정서적 학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고의성’”이라며 “고의적으로 아동에게 학대를 하려 했다고 본다면 유죄 판단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고의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교사와 아동의 관계, 교사의 구체적 행동의 문제성, 아동의 연령·성별·성향, 행위의 장소·시기·반복성, 그런 행동이 나오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고 이를 토대로 볼 때 ‘고의성’이 있다면 유죄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호민 사건 1심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고 봤다.
#증거 능력 놓고는 의견 분분
하지만 유죄의 증거가 된 몰래 녹음 파일의 증거능력을 놓고는 의견이 5 대 5로 정확하게 나뉜다.
아직까지 대법원은 한 번도 ‘제3자 몰래 녹음’에 대해 증거 능력을 인정한 적이 없다. 최근에도 학부모가 자녀에게 녹음기를 들려 보내 수업 내용을 녹음한 내용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제3자 몰래 녹음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주면 생길 수 있는 사생활 침해 여파를 고려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이런 판례에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주 씨 부부가 수업 내용을 몰래 녹음한 것에 대해서는 ‘문제없다’며 증거 능력을 인정한 것. 법원은 “피해자에 대한 아동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 대화를 녹음한 것이라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며 “자폐성 장애나 지적장애를 가진 소수의 학생만이 수업을 듣고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침해되는 사생활의 비밀보다는 수업 녹음으로 보호할 수 있는 이익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물론, 법조계 전체가 ‘법리적’인 고민에 빠진 대목이다. ‘증거 능력을 인정해주면 안 된다’고 의견을 밝힌 한 현직 판사는 “이번 사건의 경우 장애아동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인데, 이럴 경우 ‘누군가의 특수성’을 모두 개별적으로 법원이 판단해야만 한다”며 “문제는 법원이 공개재판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증거 인정 여부 과정에서 녹음 파일이 재생되는 것은 대화에 참여한 제3자들의 사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고 몰래 녹취가 만연해질 수 있는 우려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역시 반대 입장을 밝힌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런 사건은 안타깝지만 증거 인정은 불허해야 한다”며 “법원이 아니라 국회에서 장애아동 학생 교실 등에 대해서는 녹음이 가능한 CCTV 설치 의무화 등을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몫”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헌재 파견 경험이 있는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헌법에서 신체장애자 등에 대한 보호 의무를 적어놨다”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장애아동의 인권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보기에 증거로 받아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헌법 34조 5항에는 ‘신체장애자 및 질병, 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적시돼 있다. ‘법률에 정하는 바’라는 문구를 놓고 해석이 나뉠 수 있지만,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의 경우 국가 보호 의무를 폭넓게 볼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고등법원의 한 판사 역시 “녹음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방어권이 없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을 방어하는 CCTV 등 법적 장치가 부족하다면 이들을 방어하기 위한 가족의 시도까지 마냥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며 “사법부가 약자를 보듬는 법적 해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현재 교육계는 몰래 녹음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 2심을 넘어, 대법원 판례까지 나와야만 한다는 전망이 힘을 받는 대목이다. 앞선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관들의 의견도 나뉠 수 있는 사건이기에 전원합의체까지 사건이 올라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에서 ‘몰래 녹음의 특수성이 인정될 것인지’가 판가름 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