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석동현 ‘컷오프’ 시스템 공천 자평…대구·경북 중진 재배치 등 놓고 마찰 예상
윤석열 대통령 아바타라는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듯 ‘찐윤’으로 불리는 윤 대통령 측근들을 우대하지 않는 모습도 눈길을 끈다. 용산과의 차별화 전략 일환으로 읽힌다. 이러한 한 위원장 스탠스가 결국 여권 내홍의 불씨를 지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구·경북(TK) 등 여권의 텃밭, 이른바 ‘양지 공천’을 둘러싼 갈등 가능성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호떡 공천’은 없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2월 6일 4·10 총선 공천 신청자 중 29명을 부적격 기준에 따라 공천 심사에서 원천 배제했다. 이 명단에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가 포함돼 있었다. 김 전 의원은 강력 반발했다. 그는 2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참담한 결과는 우리 당과 대통령 주변에 암처럼 퍼져있는 소위 ‘핵관(핵심 관계자)’들이 만들어낸 결과”라면서 용산을 겨냥했다.
뇌물수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가 사면·복권된 김 전 의원은 ‘뇌물 관련 범죄로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사면·복권이 되었더라도 공천을 배제한다’는 공관위 방침에 따라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공천관리위원회는 설명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이런 공관위 방침을 ‘핵관’들이 설계했다고 주장하면서 박성민 의원과 공관위원인 이철규 의원을 공개 지목했다. 김 전 의원은 회견에서 “박성민 의원을 비롯한 흔히 말해 대통령 측근이라고 자처하는 인사들이 이미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총선 구도를 만들고, 지역 공천까지 자신들이 설계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 내 야당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까지 김성태 전 의원 엄호에 나서면서 당 안팎은 시끄러워졌다. 홍 시장은 2월 13일 페이스북에 “굴러온 돌이 완장 차고 박힌 돌을 빼내는 공천은 당의 결속력을 잃어버리게 해 힘든 선거를 더 어렵게 할 것”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이 원내대표까지 지낸 김 전 의원을 공천 배제한 것을 두고 굴러온 돌과 박힌 돌 비유를 쓴 것이다.
홍 시장은 “이 당은 당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존중해주지 않는 나쁜 전통이 있다. 김성태를 저런 식으로 내버리면 앞으로 이 당을 위해 헌신과 희생할 사람은 없어진다”고 쏘아붙였다. 홍 시장은 “지금 지도부에 이 당을 위해 김성태만큼 헌신과 희생을 한 사람 있느냐”며 “황교안 때도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다가 참패당한 경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태 전 의원을 둘러싼 공천 갈등이 불거지자 국민의힘 내에서는 4년 전 2020년 총선 당시 ‘호떡 공천’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김 전 의원 반발에 밀려 부적격 판정이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황교안 대표가 이끌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공천 과정에서 최고위원회 결정을 공천관리위원회가 뒤집고, 그 것을 또다시 최고위원회의가 뒤집었다. 이른바 호떡 공천이었다.
인천에서 민경욱 의원이 공천됐다가 민현주 전 의원으로 바뀌었고, 다시 민경욱 의원으로 공천자가 변경되는 사태가 대표적인 ‘호떡 공천’이었다. 당시 공관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세연 의원은 개인 입장문을 통해 “최고위는 당헌·당규를 깨뜨리며 직접 공천안에 손을 댔다”며 황교안 지도부를 정면으로 때렸다. 호떡 공천 혼란 속에서 총선을 치른 미래통합당은 예상대로 더불어민주당에 참패했다.
4년 전과 달리 한동훈 지도부는 공천 파동을 정면 돌파했다. 시스템 공천을 강조하면서 한 위원장은 규칙 적용에서는 예외가 없음을 내세웠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불복 의사가 명확했고 홍준표 시장 엄호까지 나왔지만 김성태 전 의원의 승복 발표가 나왔다. 김성태 전 의원은 2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관위 결정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당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기여로 답해주신 한동훈 위원장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도 전한다”고까지 했다.
한 위원장 측은 전력을 기울여 김 전 의원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위원장은 김 전 의원의 승복 선언이 나온 직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성태 전 의원께서 큰 정치인답게 필요한 결정을 해준 것이다. 우리는 함께 가겠다”라면서 김 전 의원을 치켜세웠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한동훈 위원장 스스로 총선 출마 포기를 한 덕분에 잘려나가는 사람들을 설득할 명분을 얻었다”며 “첫 번째 고비를 잘 넘은 만큼 한 위원장의 권위가 더 커졌다”고 말했다.
#‘찐윤’ 우대도 없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2월 14일 단수 공천 명단을 처음으로 내놨다. 여기엔 용산 출신이 단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서울의 경우, 이승환(중랑을) 여명(동대문갑) 김성용(송파병) 권오현(중·성동갑) 등 대통령실 출신들이 단수 공천을 받지 못했다. 당초 정가에선 이들의 공천 신청 지역구가 민주당 의원들이 현역으로 있는 소위 ‘험지’라는 점 때문에 단수 공천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윤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은 ‘텃밭’으로 여겨지는 서울 강남을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경기 지역으로 차출될 것으로 전해졌다. ‘용산 출신이 양지만 찾는다’는 비판이 작용했다고 한다.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 ‘40년 지기’로 알려진 석동현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이었다. 그는 서울 송파갑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경선 기회도 얻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 1기 내각 출신 가운데 권영세 전 통일부 장관(용산)을 제외하고 이영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중·성동을)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서울 영등포을) 박진 전 외교부 장관(강남을) 모두 단수 공천 대상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들은 경선을 거치거나 험지로 내몰릴 것으로 보인다.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은 2월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 브리핑에서 대통령실 출신 전원이 단수 공천에 이름이 오르지 않은 데 대해 “헌법 가치에 충실한 분들, 경쟁력 있는 분들이 (공천) 기준이지, 용산에서 왔는지 당에서 왔는지는 관계없다”고 잘라 말했다. 공관위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는 국민의힘 한 인사는 “대통령실 출신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전혀 (대통령실 출신임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2월 15일 나온 단수 추천자 명단에도 ‘찐윤’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경기 성남분당을에선 김은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단수 추천자가 되지 못했다. 김 전 수석은 김민수 당 대변인, 이상옥 예비후보와 경선을 치를 전망이다. 용산 출신은 전희경 전 대통령 정무1비서관 혼자만 2월 15일 발표된 단수 공천 대상에 올랐다.
용산 입김이 먹히지 않는, ‘시스템 공천’이 이뤄지고 있다는 정황이 확인되자 공천 내홍 조짐은 잦아들고 있다. 민주당이 친명과 비명 간 갈등으로 뒤숭숭한 것과 달리 국민의힘은 차분한 양상이다. 역대 공천 정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석동현 전 사무처장은 컷오프 발표 직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우리 당의 결정에 겸허히 승복한다. 당의 총선 승리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언급하면서 당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도 2월 15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민의힘 총선 공천 신청을 철회했다. 그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공천이 계파 공천, 전략공천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는 여론이 팽배한 모습에 선거 패배의 가능성을 봤다”며 자신의 출마 배경을 설명한 뒤 “공관위에서 시스템 공천을 정착시켜 잘 진행되고 있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상향식 공천’을 지론으로 삼아온 김 전 대표는 국민의힘 공천이 ‘윤심’에 휩싸일 것을 우려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공천 신청 철회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텃밭에서 큰불 날 수도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공천 국면 초반전은 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다는 자평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높은 산은 이제부터가 입구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우선 전략공천을 둘러싼 반발이다. 정영환 위원장은 2월 13일 서울 공천 신청자 면접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원칙은 경선”이라고 했지만, 당에선 전략 공천이 불가피한 지역구도 많다고 본다.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들의 불만을 어떻게 진화할지가 한 위원장의 최대 과제 중 하나다.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텃밭 공천 과정에서 큰불이 날 수도 있다. 특히 텃밭에서의 공천 불복은 본선에서 내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민주당이나 제3지대 정당에 ‘어부지리’ 혜택을 준다. TK에서는 중진 재배치를 두고도 적잖은 마찰이 예상된다. TK 중진은 주호영(5선) 윤재옥 김상훈 의원(3선) 등이 있는데 부산·경남과 달리 TK에는 험지가 없다. 중진들의 이동 명분이 없다는 뜻이다.
결국 이들에 대해서는 지역구 재배치 요청이 어려워 컷오프 또는 불출마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현역 컷오프 기준인 하위 10%뿐만 아니라 당 지지율보다 의원 개인의 지지율이 낮으면 공관위원 3분의 2 의결로 전략공천 지역구로 지정할 수 있는 규정을 공관위는 내밀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TK 중진들에게 불출마 의사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특히 6선 달성을 통해 차기 국회의장을 노리는 주호영 의원은 출마 의지가 매우 강하다. 그는 2월 17일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서 예비후보자 선거 사무실 개소식까지 연다.
헌신과 희생을 강조하면서 이를 시스템 공천에 반영하고 있는 한동훈 지도부로선 TK 다선 의원들에게 공천장을 또다시 주기가 어려운 입장이다. ‘고인물 논란’에 빠지면 중도·무당층 표심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는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선거에서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TK에는 용산 출신 인사들까지 다수 출마, 이 역시 내부 교통정리가 쉽지 않다. 이들 중에는 윤 대통령이 아끼는 참모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내다봤다.
“대통령실 출신들이 TK 후보로 많이 나왔는데 용산 입장에서는 이들이 국회에 진출해 지원 세력이 돼줬으면 하는 마음이 클 것이다. 그러나 한동훈 지도부로서는 자기 색깔이 드러나는 공천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마찰이 생길 것이고, 3지대 세력이 국민의힘 공천 탈락자들을 상대로 이삭줍기에 나설 게 뻔해 여러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