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위원장 ‘MB 지우기’ 달라진 한나라당 각인…한동훈 위원장 ‘김건희 리스크’ 선제적 관리 숙제
#걱정 쏟아내는 여당
국민의힘은 물론, 국민의힘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보수언론조차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정치적 위험’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위험 관리를 하지 않으면 총선에서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이유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주재한 1월 9일 비공개 중진연석회의에서도 이와 비슷한 목소리가 쏟아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의에는 3선 이상 의원 2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 전언에 따르면 회의에서는 “여론 동향이 안 좋고 정무적으로 잘 대응해야 한다”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2부속실이나 특별감찰관을 언급해야 한다”와 같은 적극적인 주문이 나왔다. 특검법의 부당성과는 별개로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고가 명품백 수수 의혹 등이 민심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판단을 여권 대다수 구성원들이 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공개적으로 김 여사 위험을 경고하는 의견도 나오기 시작했다. 김경율 비대위원은 1월 8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가 당내 인사 가운데 처음으로 김건희 리스크를 거론했다. 그는 “특검의 실체와 상관없는 김 여사 리스크를 어떤 식으로 제어할지, 국민들의 반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라며 “제2부속실과 특별감찰관은 당연하고 플러스알파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힘에 입당한 이상민 의원은 1월 9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김 여사와 관련한 각종 의혹에 대해 “사실이든 아니든, 부풀려졌든 간에 그런 것들이 나오게 된 것은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면서 “자꾸 의혹을 증폭시키면 대통령의 국정 리더십에 상당한 타격이 되지 않겠나. 결국 국민의힘에도 타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4월 총선 출사표를 던진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도 1월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왜 국민들이 (김건희 특검법에) 이렇게 찬성하실까, 거부권 행사에 반대하실까 그런 부분은 우리도 반성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나 전 의원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 “총선용 특검”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대통령의 친·인척에 대한 우려들은 정리하는 절차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당내에선 이를 언급하길 꺼려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이는 용산이 워낙에 강경한 스탠스를 고수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 위원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뜨거운 것도, 한 위원장이 ‘총대’를 메고 직언을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윤 대통령도 더 이상 여론을 거스르긴 힘들 것이다. 윤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한 위원장이 출구전략을 마련해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소환되는 2011년
이명박 대통령(MB) 레임덕에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여당이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은 투표방해 사건 등의 악재까지 터졌던 2011년 연말,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갔다. 총선을 앞두고 벼랑 끝에 몰린 당을 구하기 위해 당내 최고 실세였던 박근혜 의원이 위원장으로 나섰고 2011년 12월19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출범했다.
박근혜 위원장은 ‘이명박 체제’를 지우고 당을 환골탈태시키는 대수술에 들어갔다. 박 위원장은 취임 일주일 만인 그해 12월 26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고위 당정청 회의에 전격 불참통보를 했다. 박 위원장 기세에 눌린 청와대는 회의를 아예 취소해버렸다.
박 위원장이 회의 참가를 취소한 표면적인 이유는 “비대위원장이 당의 새 지도부인 비대위원 인선을 매듭짓지 못한 상황에서 당정청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청와대가 주도하던 기존 회의 운영 방식을 당 위주로 돌려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청와대와 정부에 대한 군기 잡기로 읽혔다.
당시를 기억하는 대구·경북 전직 국회의원은 “한나라당이 큰 위기에 몰리면서 대선 주자 박근혜 의원의 대선후보 지지율까지 위협받는 순간이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MB와의 단절, 그리고 청와대 받아쓰기와의 절연을 선택했다”며 “그 첫 시발점이 당정청 회의 전격 취소였고 이후 박 위원장은 새로운 당 이미지, 달라진 한나라당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회고했다.
박 위원장은 청와대와 정부가 짜던 재정 계획 주도권까지 당으로 옮겨왔고 1조 5000억 원 상당의 민생 예산 편성 요구까지 했다. 학자금 대출금리 인하, 취업활동수당 지급 등 자유주의적 정부, 작은 정부였던 MB정부 체제를 국민 생활에 적극 개입하는 정부로 바꾸려는 노력부터 기울였다.
그때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비상대책위원으로 들어왔다. 26세 나이의 이 위원을 영입하는가 하면 이상돈 중앙대 교수 등도 비대위원으로 들어오면서 새 바람에 대한 국민적 기대치가 만들어졌다. 결국, 박 위원장은 짧은 시간 안에 여당 장악에 성공했다. 분위기를 반전시킨 박 위원장은 과거와의 완전한 절연을 선언하면서 간판까지 바꿔버렸다. 여러 반대에 휩싸였지만 15년 만에 보수정당 당명까지 변경했다. 새누리당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여세를 몰아 박 위원장은 사상 최대치인 50%에 육박하는 현역 의원 교체를 이뤄냈다. 당시도 지금 이준석 신당처럼 보수의 분열이 나타나면서 여권에서는 위기감이 감돌기도 했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보수의 변절을 강력 비판하면서 ‘국민생각’을 창당, 총선에 출전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의원은 “정말 달라졌다는 메시지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때 박근혜 위원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라졌다는 메시지를 심어내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2012년 봄 총선에서 과반을 달성하는 기적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며 “지금 한동훈 위원장이 젊은 정당으로 당을 변화시키고 있는데 이 바람을 더 큰 태풍으로 만들어 용산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총선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했다.
#숙제 풀어낼까
국민의힘은 1월 11일 4·10 총선 후보자 공천 작업을 총괄할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을 끝냈다. 인선을 본 정치권에선 한 위원장이 여전히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의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현장 비대위 회의에서 10명의 공관위원 인선을 의결했는데 현역 의원 중에 친윤(친윤석열) 핵심 인사로 통하는 당 인재영입위원장 이철규 의원이 포함됐다.
이철규 의원 외에 비례대표이자 당 중앙장애인위원장인 이종성 의원, 장동혁 사무총장이 위원 명단에 들어갔다. 외부 인사로는 문혜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내고 직전 총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공관위원을 지낸 유일준 변호사가 임명됐다. 윤승주 고려대 의대 교수, 전종학 세계한인지식재산전문가협회 회장, 전혜진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이사, 황형준 보스턴컨설팅그룹코리아 대표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철규 의원 인선 배경에 대해 “인재영입위원장이 공관위원 중 한 명으로 포함돼 축적된 자료를 잘 활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친윤 핵심인 이 의원이 포함된 건 윤심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 지금 당을 이끄는 것은 나다. 그리고 공관위원장도 있다”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한 수도권 출마 예정자는 “한 위원장이 김 여사 관련 문제에 대해 대통령실 눈치를 보지 않고 선제적으로 치고 나갈 필요가 있다”며 “2011년 박근혜 위원장처럼 과거와 확실히 선을 긋고 용산의 변화를 직접 촉구하는 킬러문항 풀이력을 보여줘야 숙제검사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