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재협상 및 각종 현장 민원 탓 난항…“60개월 공기 계획 관행 벗어나 현실에 맞게 설정해야”
'일요신문i'가 최근 추진된 수도권 지하철 건설 사업들의 진행 상황을 점검한 결과 10개 중 7개 노선의 착공·개통 일정이 최대 3년 연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교통부가 2021년 7월 말 언론에 제공한 ‘수도권 광역전철(경전철 등 도시철도 제외) 추진사업’ 총 14개 구간 가운데 당시 구체적 착공·개통 시점이 제시된 노선은 모두 10개. 지난 21일 국토부를 통해 이 10개 노선의 진행 상황을 다시 점검한 결과 총 6개 노선의 개통 시점이 당초 예고 시점에서 1~3년, 1개 노선의 착공이 1년 밀린 것으로 나타났다.
경강선의 일부인 ‘월곶~판교선’ 개통이 2025년 하반기에서 2028년 하반기로 3년 밀렸고, ‘인덕원~동탄선’ 개통이 2026년 하반기에서 2028년 하반기로 2년 밀렸다. 서울 지하철 8호선 연장선인 별내선(2023년 하반기→2024년 7월), 서울 지하철 7호선 도봉산~옥정 연장선(2025년 하반기→2026년 하반기), 전철 1호선 동두천~연천 연장선(2022년 12월→2023년 12월) 등은 개통이 약 1년씩 미뤄졌다. 신안산선의 경우 실제 착공이 이뤄진 시기를 2019년 8월에서 2020년 4월로 ‘정정’하면서 개통 시점도 당초 2024년에서 2025년 4월로 수정 표기됐다.
착공이 밀린 노선으로는 7호선 옥정~포천 연장선이 2023년 하반기에서 2024년 12월로 1년 6개월가량 연기됐다. 개통이 연기되면서 3개 노선은 전체 공사 소요 기간이 총 7년으로, 2개 노선은 총 9년으로 늘어나게 됐다.
국토부는 공사 지연이 가장 많이 된 월곶판교선과 인덕원동탄선의 경우 건설 물가 상승으로 사업계획 적정성을 재검토하고, 시공사업자와 총사업비를 재협의하느라 추가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고 그 이유를 제시했다. 별내선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화물연대 파업 등에 따른 건설자재 수급 지연을 주요 원인으로, 7호선 도봉산~옥정 연장선은 사유지 보상과 땅속 지장물 이설을 위한 협의에 시간이 많이 든 것을 공사 지연 이유로 제시했다.
주무 지방자치단체나 산하 연구기관들은 최근 치솟은 건설 물가, 이에 더해 갈수록 늘어나는 공사 현장의 민원 처리 등을 사업 진행의 ‘최대 브레이크’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폭등한 건설 원자재 가격의 충격이 크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건설공사비지수는 2020년 12월 121.80에서 2023년 12월 153.26으로 무려 26%나 뛰었다. 이는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12.3%)의 2배를 웃돈다.
민간투자철도의 경우 총사업비가 협상 단계에서 당초 액수의 20% 이상 증액되면 정부의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를 받아야 한다. 인덕원~동탄선의 경우 당초 1조 6800억 원 규모였던 노반신설 사업비가 사업계획 재검토를 통해 2조 6246억 원으로 약 56%나 폭등한 바 있다. 박경철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철도사업이 초기에는 예비타당성 조사 등을 통과하기 위해 사업비 규모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는데, 실제 진행 과정에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어나면 기재부의 협의를 거쳐야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사업타당성 재조사를 받아야 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재조사를 하는 동안에는 사업 진척이 안 돼 개통 시점도 함께 밀린다”고 설명했다.
공사 현장에서 시설물이나 역사 설치에 필요한 부지 매입에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도 큰 장애 요인이다. 최근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가 있는 도심 지역에서 주민들이 지하 굴착 공사를 원천 반대해 공사 일정이 지연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선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GTX-A노선 지하 통과에 거세게 반발한 데 이어 청담동 주민들은 GTX-C노선의 지하 통과를 반대하며 국토부를 상대로 노선 실시계획 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일반적인 공사 지연 사유로는 굴착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연약지반을 만나 지하수 유출에 대처하느라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땅 속에 묻힌 상·하수도관이나 전기선로, 열난방배관 등 지장물을 옮기거나 위치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도 많다. 경기도 철도건설과 관계자는 “실제 지하철 공사를 하다 보면 처음에 보이지 않던 지장물이 많이 나오는데 옛날에 주먹구구식으로 설치되고 관리도 잘 안 된 시설이 많다”며 “지금은 GIS(지리정보시스템) 등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예전에 설치해 놓은 시설들의 경우 설계도와 실제도가 다른 경우가 많아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 노선에서 착공 단계부터 진행이 더딘 경우가 많아지자 실제로 착공을 한 것은 맞는지 사실 여부를 두고 지역 내 논란이 확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나 정치권, 지자체 등이 착공 소식을 알렸는데 실제 공사가 진행되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며 ‘허위 공고’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다.
최근 경기도 의왕시의 경우 인덕원동탄선, 월곶판교선 등 2개 노선의 착공 시점을 두고 지역구 국회의원은 “지난해 12월 착공했다”, 지자체장은 “빠르면 올해 3~4월 예정”이라고 서로 달리 설명해 논란이 증폭됐다. 한 시민은 국회의원이 허위 사실을 공표한 것이라며 고발 조치에 나서자 해당 의원이 국가철도공단의 실제 공사계약문서를 근거로 이를 즉시 반박·해명하기도 했다.
‘착공 시점’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한 지역 내 논란은 앞으로도 곳곳에서 목격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철도공단과 같은 공사 발주자가 시공사업자와 체결한 계약서에 담긴 ‘공사착수일’을 착공 기준으로 보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사업시행자가 노선 사업에 대한 실시계획 승인을 받은 시점을 착공 시점으로 보는 해석도 있어 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 철도정책과는 ‘일요신문i’에 보낸 설명자료에서 “철도 건설사업을 위해서는 사업시행자가 실시계획 승인을 받아야 하고 이를 통상 사업의 시작으로 본다”면서 “다만 실제 공사 진행을 위해서는 용지보상, 공사를 위한 굴착 허가 등 지자체의 인·허가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실시계획 승인과 실제 착공까지 상당한 시간 격차가 있음을 뜻한다.
‘허위 착공’ 논란은 단일 노선을 최대 10개 이상의 공구로 나눠 시공사업자를 달리 선정하는 최근 추세와도 일부 관련이 있다. 정부가 노선 착공 소식을 알린 뒤에도 일부 공구만 공사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사업자 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있다보니 이런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시민들 시각에서는 오해의 여지가 발생한다.
국가철도공단 설명자료를 보면 2021년 4월 공식 착공한 인덕원~동탄선의 경우 2년 6개월이 지난 2023년 10월 말을 기준으로 총 12개 공구 가운데 2개 공구만 공사 진행 중, 월곶~판교선은 총 10개 공구 중 3개 공구만 실제 착공된 상태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단일 노선을 여러 공구로 잘게 잘라 진행하는 방식에는 전체 공사 소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전략이 담겨 있지만 공구별 진행 상황에 큰 격차가 발생하는 것도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일각에선 대부분 철도 공사 계약에 으레 담기는 ‘60개월(5년)’ 공기 계획이 현실에 맞게 설정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달리 표현하면,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시민들을 ‘희망고문’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박민규 동양대 철도경영학과 교수는 “노선마다 그에 적합한 공사 방법과 기술을 쓰다 보면 공기가 달라질 수 있어 그런 부분들이 검토돼야 하는데 지하철 공사 기간을 일괄적으로 ‘60개월’로 정의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를 반영하듯 GTX 노선의 경우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인 A노선과 C노선은 기존 관행대로 ‘60개월 공기’가 제시된 반면 올해 착공 예정인 B노선은 ‘72개월(6년)’로 공사계약이 체결돼 이목을 끈 바 있다.
이강훈 기자 yg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