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PF 부실, 2010년 ‘저축은행’보다 치명적일 수 있단 전망…금융권 ‘부실 방파제’ 균열 우려도
최근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은 현재의 부동산 PF 위기가 2010년 저축은행 사태 때보다 훨씬 더 크고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규모가 200조 원 이상으로 당시의 2배가 넘는 데다, 증권사를 비롯한 2금융권 전반이 깊이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와 여전사(여신전문금융회사)는 자금시장에서 돈을 구한다. 부동산 PF 위기가 자금시장의 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준공을 통해 중소형 건설사들의 부동산 PF 진출이 크게 늘어난 점도 다르다. 2010년에는 중대형 건설사가 많았다. 건설사 연쇄도산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최근 시공능력 30위권인 HL D&I은 1년 만기로 700억 원을 조달하기 위한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했다. 국내 최대 부동산신탁사인 한국토지신탁도 2월 1000억 원 규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380억 원의 주문을 받는데 그쳤다. 소득 대비 집값이 크게 높아졌는데 공사비와 금융비용도 더 늘어 수요기반, 구매력도 14년 전보다 취약하다는 게 건산연의 지적이다.
지난해 9월 나이스신용평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3년 상반기 중 증권사들이 투자한 브릿지론 단계 사업장 중 만기연장된 건들의 비중(금액기준)은 80%에 달한다. 브릿지론 사업장의 대다수가 본 PF 전환이 어렵다는 뜻이다. 코로나 사태와 물가상승에 따른 원가부담 가중 등으로 3~4년 전에 착공돼 최근 준공을 앞둔 본PF 사업들의 상당수도 부실 상태에 놓여 있을 가능성도 높다.
김정주 건산연 연구위원은 “대출규제는 강해지고 이자부담도 높아졌는데 공사원가가 더 올라가면서 수요자를 찾기 어려워졌다. 미분양 사업장 정리는 물론 정상사업장도 할인분양으로 정상화를 꾀하기 쉽지 않아졌다”고 진단했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에 적극적인 손실 인식을 강조하고 있어 이들 부실 사업장에는 대출 만기연장이나 추가 자금지원이 어렵다. 금융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부실 사업장이 쓰러지면 보증을 선 건설사와 신탁사가 잇따라 타격을 받게 된다. 부실로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등 수신으로 대출금을 마련한 금융회사에서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라도 빚어지면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질 수 있다.
안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은 최근 저축은행과 상호금융회사 새마을금고 등에도 국채 등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유동성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국채처럼 현금화가 쉬운 자산을 가진 금융회사만 가능하다. 건설사나 시행사가 주로 가진 비유동자산은 대상이 아니어서 급전을 구할 때는 무용지물이다. 금융회사들이 돈을 빌려주거나 채무상환을 유예해주지 않으면 부도 위험에 몰리게 된다.
지난 2월 22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상반기에는 금리인하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빨라야 6월에나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는 관측이지만 여전히 뜨거운 경기를 감안할 때 그 시기가 더 늦춰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리가 하락해 부동산 PF의 이자부담이 낮아지고 수요자들의 구매력도 회복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근본적 해결은 구조조정이다. 부실 사업장은 매각 등으로 추가 손실을 제한하고 사업성을 기대할 수 있는 곳에는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부실 사업장의 손실을 줄이고 사업성 있는 곳의 회생 확률을 높이려면 수요기반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공기업과 민관합동 펀드 등을 통해 부실 자산을 매입하고 미분양 부동산에 세제혜택 등을 부여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조세 및 지방세특례법을 개정해 미분양주택 매입에 한시적인 세제혜택을 부여했었다. 법 개정을 위해서는 국회가 열려야 하는데 4월 총선 이후 원 구성이 이뤄질 때까지는 2~3개월이 걸린다. 원 구성이 되더라도 여야 합의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수요기반을 위한 제도 마련이 지연되면 건설사와 협력사의 줄도산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