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경호처, R&D 예산 삭감 항의 졸업생 끌어내…‘강제 퇴장’ 신민기 씨 “대통령은 비판 목소리도 들어야”
#사전 검열·‘입틀막’ 대응 적절했나
졸업생들은 졸업식장에 입장하기 전 보안검색을 받았다. 이들은 먼저 졸업식장 인근에 있는 정문술빌딩에 모였다. 그다음 줄을 지어 야외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고, 경찰 안내에 따라 보안검색장에 들어갔다. 졸업식장 1층 농구장 바로 앞에 보안검색대가 있었다. 금속탐지기와 엑스레이 검사기가 배치돼 있었다.
양 씨는 가방을 검색대에 넣은 다음 금속탐지기를 통과했다. 경호처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가방 내용물을 꺼내 확인했다. 경호원이 양 씨를 제지했다. 가방에 있던 성소수자 관련 책이 문제가 됐다. 양 씨는 “(경호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이 내용의 책을 반입해도 되는지 토의했다. 그러더니 안에서 꺼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돌려줬다”며 “졸업식 끝나고 친구에게 돌려주려던 책이었다. 엑스레이로 위험 물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거다. 굳이 내용을 확인해 본 게 불쾌했다”고 말했다.
이날 약 5000명(졸업생 1800여 명)이 졸업식에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혹 탄 브로드컴 회장, 성악가 조수미 등이 단상에 자리했다. 단상 앞에는 박사 졸업생들이 자리했다. 중간에는 석사 졸업생들이 있었고, 그 뒤에는 학부 졸업생 앉아 있었다.
오후 1시 58분 이광형 총장이 “오늘 여러분들의 학위 수여식을 축하해 주시기 위하여 특별히 대통령님께서 참석해 주셨습니다. 모두 큰 박수로 맞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손을 흔들며 입장했다. 윤 대통령은 귀빈들과 악수하고 환담하며 단상에 올랐다.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양 씨는 “술렁거림도 있었고, (혼잣말로)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박수 안 치는 사람도 있었고 반응이 다양했다”고 전했다.
오후 2시 5분 윤 대통령이 연설을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자랑 카이스티안 여러분, 여러분이 이뤄낸 값진 성취와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며 운을 뗐다. 이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십시오.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제가 여러분의 손을 굳게 잡겠습니다”며 “마음껏 도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저와 정부가 힘껏 지원하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때 연단에서 약 30석 떨어진 석사 졸업생 구역에서 한 졸업생이 일어났다.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신민기 씨였다. 양 씨의 기억에 따르면 신 씨가 피켓을 들었을 때 참석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경호원이 피켓을 낚아챘다. 동시에 입을 막았다. 주변에 있던 졸업생 몇 명이 일어나 신 씨를 제압했다. 신 씨는 약 20초 만에 끌려 나갔다. 2층에 있던 일부 학부모들이 하지 말라고 소리를 쳤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윤 대통령은 멈춤 없이 축사를 진행했다. 양 씨는 “왜 졸업생들이 끌고 나가나 싶었다. 알고 보니 경호원이었다”며 “학부모 자리에서 소란이 있었는데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경호원들이 제지했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학부 졸업생인 최 아무개 씨(24)는 “일어나자마자 바로 제지를 당하더라. 팔다리가 들려서 퇴장당했다. (신 씨가) 끌려 나가면서 ‘이것은 폭력이다’고 외쳤던 것 같다. 놀라서 사진 찍는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축사가 진행됐다”고 기억했다. 최 씨는 “당황스러웠고 참담했고 화가 났다. 내용이 부당한 것도 아니고, 부당했더라도 이런 처사를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경호원들이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점에 대해 분노했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 사태는 사진과 동영상 등으로 빠르게 퍼졌다. 박사 졸업생 윤 아무개 씨(30)는 “원래 (대통령) 입장에 맞춰서 스마트폰 LED 앱으로 ‘R&D 예산 삭감 규탄’을 적고 대기하려고 했다. 사전에 적발됐다. (졸업생 복장을 한 경호원이) 손짓으로 내리라고 요청했다. 많이 당황했고 떨렸다”며 “(나중에)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금방 조용해졌다. 나중에 학생이 끌려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리를 들은 지) 10분 정도 뒤에 옆자리 사람이 자신의 카카오톡 대화방에 올라온 끌려 나가는 사진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과잉 경호 논란이 불거졌다. 앞서 유사한 사건이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1월 18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장에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윤 대통령과 악수하며 “국정 기조를 전환하라”고 촉구하다 경호처 직원들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팔다리를 들려 행사장 밖으로 끌려 나갔다.
과거 사례와 비교했을 때 경호처 대처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7년 청와대에서 장애인 차별 금지법 행사가 열렸을 때 박경석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추진연대(지금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플래카드를 들고 기습시위를 벌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 대표에게 발언 시간을 주는 대신 시위는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박 대표는 시위를 계속했고, 결국 퇴장 조치 됐다.
해외 사례도 거론됐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민 개혁안에 대해 연설하고 있었다. 연설 도중 한 참석자가 이민자 추방을 멈추라는 구호를 외쳤다. 경호원들이 제지하려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막고 해당 참석자 주장의 문제점을 짚으며 설득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 견해는 엇갈렸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호법상 경호 행위는 최소한에 그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법의 기본 원칙이 국가가 국민의 신체나 자유를 제한할 때는 최소 범위에서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고 지적했다.
플래카드나 책 내용을 검사한 일에 대해서는 “잘못된 거다. 그것은 검열이다. 헌법 21조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다. 경호원들이 검사 할 수 있는 것은 플래카드 내용이 아니라 플래카드에 붙어 있는 각목이다. 각목은 흉기로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가방 검사나 책 검사를 하더라도 그게 흉기로 전용될 수 있는 것인지만 판단해야지, 내용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헌법 21조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수행경호과장 출신인 김환목 신안산대학교 경호경찰행정학과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김 교수는 “인원, 물품, 설비, 등 경호구역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물건은 예외 없이 검색한다는 게 원칙”이라며 “(플래카드와 책 내용을 검사한 것은) 경호원 입장에서 의심을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김 교수는 “경호 자체는 통제를 전제로 한다. 너무 심하게 보이더라도 경호를 위임했으면 신뢰해 줘야 한다”며 “충분히 불만스러울 수 있는데,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1%의 의심스러운 행동이나 문제점을 차단해야 한다. (경호원) 입장에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졸업식 당일 대통령실은 “대통령 경호처는 경호구역 내에서의 경호 안전 확보 및 행사장 질서 확립을 위해 소란 행위자를 분리 조치했다”고 밝혔다.
#과잉 경호 논란 거센 후폭풍
졸업생들에 따르면 경호원들이 신민기 씨를 끌어낼 때 단상에 있었던 이광형 총장과 교수들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연설이 끝난 다음 마이크를 잡은 교수들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승래 민주당 의원만 사과의 말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박사 졸업생 구역에 있었던 윤 씨는 “교수들이 아무것도 안 한 것이 굉장히 불만스럽다. 학생을 보호하는 것보다 이 사건을 빨리 넘기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창옥 카이스트 교수 협의회 회장(수리과학과)은 “제재할 상황이 안 됐다. 교수들이 있어도 행사장에 있는 게 아니라 단상 위에 있었다. 단상에 있는데 단하에서 벌어지는 일에 어떻게 개입이 되겠나”고 말했다.
모든 교수가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신민기 씨에 따르면 일면식 없는 교수 한 사람이 따라 나왔다. 졸업식장 밖으로 끌려 나간 신 씨는 같은 건물에 있는 방으로 안내됐다. 신 씨는 “처음에는 다용도실 같은 방 두 곳으로 갔는데 첫 방은 VIP와 동선이 겹쳐서 안 된다고 했고, 두 번째 방은 내빈이 머물 곳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해서 (세 번째) 다용도실 같은 방으로 갔다”며 “(따라온) 교수님은 (경호 책임자에게) 경호원들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라고 이야기했다. 10분 남짓 있으면서 제 상태가 어떤지 확인했다”고 했다.
교수가 떠난 다음 경호 책임자가 왔다. 신 씨는 “(책임자가) ‘지금 하신 행동은 잘못됐다. 다른 학생들의 단체 행동을 끌어낼 수 있었던 위험한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에 가서 진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기억했다. 약 30분 뒤 경찰이 와서 업무방해 혐의로 신 씨를 체포한 다음 대전 유성경찰서로 데려갔다.
신 씨는 경찰서에서 신원 확인만 받았다고 했다.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당직자가 와서 면담을 요구지만, 허용되지 않았다. 신 씨는 경찰이 변호사 접견만 허용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다 조승래 의원이 와서 면담이 이뤄졌다. 신 씨는 “조 의원이 ‘일단 나와 다음에 조사를 받으시라’고 이야기했다”며 “녹색정의당은 면담이 안 되고, 조 의원은 면담이 된 점은 의아하다”고 했다. 신 씨는 경찰 조사는 2주 안에 시작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졸업식이 끝난 다음에도 후폭풍은 끝나지 않고 있다. 학부 졸업생 양 씨는 “학생들이 생각 이상으로 두려워하고 있고, 화내고 있다. 보통 (카이스트 학생들은) 이런 떡밥(이슈)이 돌아봤자 (잠깐) 화내고 말지 토론하는 스타일은 아니다”며 “지금은 총장은 뭐 하냐, 대통령은 뭐 하냐, 빨리 사과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계속 나올 정도로 (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남겼다”고 전했다.
졸업식 당일 카이스트 대학인권센터는 성명문을 내고 “이번 학위수여식에서 발생한 과잉대응과 폭력적 행위를 규탄하며 대통령실에 이번 사태의 잘못에 대한 인정과 공식적인 사과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카이스트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와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는 2월 19일 성명문에서 “당사자 학우분의 행동이 학위수여식의 진행에 방해될 수 있고, 다른 학우분들께 피해를 끼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학위수여식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학위복을 입은 위장 경호원들에게 불과 찰나의 사이에 팔다리가 들린 채로 입을 틀어 막히며 밖으로 끌려 나가는 장면을 본 학생들은 불편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부 카이스트 동문은 2월 20일 대통령 경호처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이들은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과 직원 등을 대통령경호법상 직권남용, 폭행·감금죄 등으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고발인은 2004년도 카이스트 총학생회장이자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인 김혜민 씨, 카이스트 산업경영학과 96학번 주시형 전남대 산업공학과 교수 등 26명이다.
2월 23일에는 신민기 씨 등 카이스트 구성원(동문, 재학생, 교수, 직원 등) 1134명이 공동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어떠한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대통령의 생명과 재산,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위력으로 제압했다”고 주장했다.
이광형 총장은 2월 20일 열린 입학식 축사에서 윤 대통령이 카이스트를 방문한 점을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같은 날 카이스트 에브리타임(대학 커뮤니티)에는 이 총장이 이 같은 내용의 축사를 하자 장내에 웅성거림이 있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2월 23일 기준 카이스트 측은 별다른 입장문을 내고 있지 않다. 카이스트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조만간 입장을 낼 것"이라고만 했다.
#시위 사전 예고 논란
2월 20일 매일경제는 신민기 씨가 사전에 시위를 계획했고, 이를 미리 대전지역 언론에 알렸다고 보도했다. 신 씨는 사전에 시위를 준비했고, 이를 언론에 알린 것은 맞지만 언론에 알릴 당시 윤 대통령이 졸업식에 참석한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했다. 신 씨가 일요신문에 제공한 메일에는 “오늘 KAIST 학위수여식장(류근철 스포츠컴플렉스)에서 한덕수 총리 내빈발언 도중 ‘부자 감세 중단하고 R&D 예산 복원하라’는 1인 피케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나와 있다. 메일을 보낸 시각은 오후 1시 10분으로 나와 있다.
신 씨 설명에 따르면 졸업식 3일 전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식을 듣고 인쇄소에 가서 천에 ‘R&D 예산을 늘리고 부자 감세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적었다. 그는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그대로 적었다. 저는 졸업하는 입장이지만, (학교에 남아 있는) 선후배들은 (예산 삭감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다만 단순히 R&D 예산만 늘려달라고 하면 이기적인 목소리로 비칠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예산을 삭감하고 R&D 예산을 메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부자 감세 중단 메시지를 함께 넣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시위를) 해봤자 (플래카드를) 뺏기고 ‘앉으세요 아니면 나가주세요’ 같은 이야기를 듣겠다 싶었다. 졸업식장이기도 하고 위해를 가려는 의도도 없었고, 졸업식장에서 허용이 안 되는 행위인 것이 아니기도 했다”며 “(언론사에 보낸 메일은) 무작위로 보냈다. (졸업식장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작성해서 보냈다”고 해명했다.
신 씨는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R&D 예산을 복원하고, 미래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박사 졸업생 윤 씨는 “R&D 예산 삭감 규탄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낼 수 있는 의견이라 생각한다. 그 의견에 동감한다. 그리고 과도한 보안 조치 때문에 졸업식의 주인공인 참석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게다가 졸업생이 의견 표현을 하다 끌려 나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윤 대통령은 말뿐인) 격려가 아닌, 실질적인 정책변화가 있을 수 있도록 제발 현장의 목소리를 더 들어 달라. 그 전에 목소리를 낼 권리를 침해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