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공은 닥공이되 타이밍이 관건…’
▲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한국-이란 경기 장면. 일요신문 DB |
▲ 이번 이란 원정은 박주영을 중심으로 새롭게 판이 짜인다. 연합뉴스 |
# 신뢰와 길들이기의 기로에서
이동국(전북 현대)의 이름은 이번 원정 명단에 없다. 조광래호가 최강희호로 탈바꿈하면서 항상 빠짐없이 등장했던 스트라이커다. 조 전 감독으로부터 사실상 ‘팽’ 당했던 이동국은 최강희호에서는 에이스였다. 따라서 이동국이 이란 원정에 나서지 못한 것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유가 있었다. 최 감독 특유의 ‘이기심’과 ‘고집’이 발동했다. 브라질월드컵까지는 대표팀을 이끌겠지만 정작 본선에는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였기에 항상 최상의 전력을 꾸릴 필요가 있었다. 승점 3을 확보하겠다고 목표했던 우즈베키스탄과의 9월 원정이 승점 1이라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면서 대표팀의 스케줄에 비상등이 들어왔고, 당시 또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이동국이 이번에 철퇴를 맞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동국이 설 자리는 대표팀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최 감독은 이동국을 발탁하지 않은 데 대해 이런 설명을 곁들였다.
“좋은 축구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뚜렷한 철학과 주관이 필요하다. 우유부단하거나 어설퍼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 싶으면 언제든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얼마 전까지는 클럽, 지금은 대표팀 감독으로서 항상 필요한 만큼의 고집을 부리고 있다. 비록 기간이 정해진 시한부(월드컵 예선까지) 감독일지언정, 색채를 잃고 싶지 않다. 성공 못하면 책임을 지는 건 누구도 아닌, 바로 나다. 내 생각과 목표가 있는데 일관되도록 전진해야 한다.”
사실 이동국이 가장 먼저 타깃이 된 건 아니다. 이전에 박주영(셀타비고)이 있었다. 최 감독이 대한축구협회의 뜻을 받아들여 병역 논란의 중심에 있던 박주영의 해명 기자회견을 촉구했을 때, 박주영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최 감독은 박주영을 대표팀에 승선시키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한동안 그의 이름은 잊혔다.
그라운드에서도 숱한 화제를 낳았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인 둘의 공존은 여전히 큰 화두다. 분명 가장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으나 플레이 스타일이 상당히 달라 최적의 조합과 선수 활용, 구성은 수많은 미디어들의 관심거리다. 다만 과거에는 이동국이 생존했다면, 이란 원정에서는 박주영이 생존한 셈이다.
최 감독은 “결국 둘 모두 끌고가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주변이 어떤 판단을 내리든 상관없다. 대표팀이 최상의 전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동국도, 박주영도 모두 필요하다는 판단을 갖고 있다.
사실 작년 카타르 아시안컵을 기점으로 한국 축구의 차세대 공격수로 높이 비상하고 있는 독일 분데스리거 손흥민(함부르크SV)도 선배들과 비슷한 성장통(?)을 겪었다. 대표팀 명단 발표가 이뤄지는 순간까지, 적어도 기자들 앞에서 최 감독은 ‘손흥민’의 이름 석 자를 거론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분명하게 많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항상 문제로 거론되곤 했던 수비 불안이 대두되면서 결국 ‘뽑지 않겠다’는 의미가 섞인 부정적인 뉘앙스로 비쳐졌다.
그런데 최 감독의 생각은 정 반대였다. 발탁이었다. 그 배경과 의도를 떠나 이미 여러 차례 최 감독으로부터 대표팀 탈락의 고배를 들었던 손흥민은 마음가짐을 더 단단히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 감독을 잘 알고 있는 한 축구 인은 이렇게 말했다.
“선수들의 심리를 정말 잘 파악하고 있다. 가깝다 싶으면 살짝 거리를 두고, 너무 멀어졌다고 생각되면 어느새 바로 곁에 와 있는 분이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다. 외부나 언론이 보기에는 최 감독이 특정 선수를 편애하는 사람으로 비쳐질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감독도 ‘필요하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 최강희 감독. 이종현 기자 |
9월 우즈베키스탄, 10월 이란으로 이어지는 2차례 원정 전을 시작하며 최 감독은 “위태위태한 경기를 하며 한 번씩 비겨 승점 2를 따느니, 1승1패를 해서 승점 3을 가져오고 싶다”고 했다. 간접적인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 의지가 내포돼 있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우즈베키스탄 원정 무승부로 인해 두 경기를 합쳐 승점 3이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게 됐다. 여론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내용적으로 워낙 졸전에 가까워 비난의 목소리가 컸다. 일각에서는 최 감독 특유의 플레이 스타일을 약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때론 수비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뜻.
최 감독이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공격과 수비를 놓고 항상 고민을 반복한다. 강하게 상대를 몰아붙여 골을 넣고 승리를 쟁취하는 게 목표다.
대표팀에서도 기본 마인드는 비슷하다. 어설픈 경기를 하다 승부를 가리지 못하는 건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란 원정도 마찬가지다. 축구 팬들이야 패배를 원치 않겠지만 그들이 늘 부르짖어온 화끈한 축구에는 분명 모험이 전제돼야 한다. 패하지 않기 위한 축구, 수비지향적인 축구는 선천적으로 그와 맞지 않는다. 단, 타이밍에 해법이 있다.
“이란전에서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무조건 이긴다. 다만 언제 맞불을 놓느냐가 중요하다. 초반부터 강하게 공격을 주고받느냐, 아니면 체력 상황을 지켜보고 후반부에 승부를 내느냐일 뿐이다. 혹여 일찍 승부가 나는 듯해도 끝까지 몰아친다. 축구에서는 2-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이 심리적으로 가장 흔들리기 쉽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