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에 청약 가능’ 고령층 노린 문자·리딩방 기승…“의심 가는 즉시 ‘거래소 이름’ 검색해 확인을”
2023년 10월부터 공모주 관련 사기를 당한 지 아무개 씨가 받은 메시지다. 지 씨는 이 사기로 수억 원을 잃고 정신적인 충격에 빠지게 됐다. 지 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이들 일당을 고소한 상태다.
특히 2023년 6월 26일부터 신규 상장되는 기업 상장 당일 가격 제한폭을 기존보다 확대하는 시행세칙이 적용된 것도 결정적이다. 새 제도에 따르면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손실률은 기존 최대 37%에서 40%로 커지고, 수익률은 160%에서 300%로 확대됐다. 뜨거운 열기 속에 올해 첫 대어급 공모주로 꼽히는 에이피알(APR) 일반청약에는 약 14조 원 거금이 모이기도 했다.
공모주를 두고 열기가 다시 번지기 시작하면서 사기꾼들도 이를 소재로 사용하는 분위기다. 주로 무작위 문자와 함께 최근 들어 많이 사용되는 네이버 밴드,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등을 이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2024년 2월 주식에 관심이 많은 배 아무개 씨는 문자 한 통을 받게 됐다. 언론에서 조명하고 있어 관심이 뜨거웠던 한 공모주를 공모가보다 싸게 살 수 있다는 문자였다. 문자 내용으로는 공모가에 거의 반 가격에 비상장 시장에서 살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배 씨는 주식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있었다. 배 씨는 “공모주 1주 배정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서 무시했지만, 주식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속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설명했다.
2023년 10월 지 씨는 카카오톡을 통해 메시지를 받게 됐다. 자신을 한 증권사에서 근무한다고 소개한 김은혜(가명)는 “증권사 이 아무개 선생 비서로 일하고 있다”면서 “물린 종목 저한테 알려줄 수 있어요? 주식 종목을 보내주면 이 선생에게 분석을 요청 드려보겠다”고 말했다. 당시 주식으로 손실을 보고 있던 지 씨는 사진을 캡처해 김 씨에게 보내게 됐다.
김은혜는 이 선생이 추천해 준 종목이라고 하면서 한 화학 업체를 알려줬다. 김은혜는 “손실 만회를 위해서, 이 종목을 테스트해 보셔도 좋다”면서 매수를 추천했다. 김은혜는 “최적 매도 시기를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김은혜는 이후 2023년 11월 초 지 씨에게 ‘우리 밴드 단체방에 초대해 드리겠다’라면서 바람잡이 방으로 초대했다. 사기꾼들이 초대하는 이런 방은 자신 외에는 모두가 바람잡이이며, 사기 업체 직원들이 사기꾼에게 호응만 해주는 방이다. 이런 내용을 몰랐던 지 씨는 바람잡이들이 수익 인증을 하고 이 선생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자 신뢰감을 느끼게 됐다.
12월 말 김은혜는 지 씨에게 “요즘 이 선생은 세력 기관과 의논하고 있다. 작전주 선택, 작전 관련 종목당 참여 인원수와 투입될 총자금량이 얼마나 정도인지 모두 상세한 협의를 거쳤다”라며 “현재 진행 중인 첫 번째 작전주 결과를 종합해서 분석 중이고 추가 작전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러분께서 할 일은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라면서 이 선생의 두 배 수익이 되는 작전주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1월 초 김은혜는 지 씨에게 ‘선생님 오늘 두 번째 작전주 매수 진행을 하겠다’고 했고, 지 씨가 해당 프로젝트 참여 의사를 밝히자 ‘세력 기관 매매 진행하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니 TCGSVS라는 사기 거래소 앱을 다운 받으라고 말했다. 이어 ‘고객센터에 연락해 투자금 입금 계좌를 발급 받은 뒤, 입금하면 2배 수익 작전주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정윤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최근 허위 사기 거래소를 다운로드 받게 한 이후 공모주 투자를 도와주겠다는 신종 사기 유형이 매우 유행 중이다”라며 “경찰서에 피해자 진술을 하러 가서 담당 수사관에게 이런 유형의 사건이 얼마나 들어 오냐고 물으면 최소 하루에 한 건씩은 각 수사관에게 배당되고 있다고 대답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1월 말 김은혜는 ‘공모주 청약을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이에 참여하면 엄청난 수익을 볼 수 있다고 했고, 지 씨는 공모주 청약을 신청했다. 김은혜는 ‘(일반 계좌는 수십 대 1 경쟁률이지만) 기관 계좌로 청약하면 일반 청약과 달리 5~30% 정도 배당에 성공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지 씨는 ‘공모주에 당첨된 것을 축하한다’면서 공모주 청약금 2억 7000만 원을 납입하라고 요구했다. 이제 지 씨는 ‘추가 자금이 없다’면서 난색을 보였고, 이에 김은혜는 ‘그러면 안 된다. 최소 절반은 모아야 방법을 생각해 줄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어 김은혜는 “주식 매수 신청은 바꿀 수 없다. 운이 좋아서 이렇게 많이 당첨될 줄 몰랐다”고 설명했다.
지 씨는 재차 추가 납입만을 요구하는 김은혜가 의심스러워 공모주 관련 내용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고 이게 사기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야 추가 납입을 멈추고 인출을 시도했지만, 거래소에 수익률은 모두 거짓이었고, 입금한 돈 총 8000만 원은 인출할 수 없었다. 지 씨는 이에 곧바로 고소를 결심하고 변호사를 선임하게 됐다.
조정윤 변호사는 “피해자 1인이 25억 원 넘는 투자금을 편취당한 사례가 있다. 수익금 출금을 위해서는 수수료를 납부하라며 담보대출, 카드대출 등을 유도해 피해금을 증액시켰다”면서 “이유 없이 고수익을 약속하는 모든 투자상품을 의심해야 하고, 혹시라도 거래소를 다운 받으라고 안내하면 해당 거래소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만 하여도 사기 거래소인지 아닌지 게시 글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조 변호사는 사기 거래소에 가입하거나 돈을 넣은 것을 알았다면 형사 고소를 빨리 하는 게 방법이라고 당부했다. 조 변호사는 “명의도용 등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명의도용 방지를 위한 조치를 신속히 하고 가능한 한 빨리 형사 고소를 진행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