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지휘·명령 아닌 도급인 지시권 행사”…하청업체 프리죤도 셀트리온 지원사격 나서
셀트리온 측은 51쪽 분량 항소이유서를 지난 2월 2일 항소심 재판부에 냈다. 1심 판결문 29쪽과 비교하면 1.7배에 달하는 분량이다. 셀트리온 측 소송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화우는 항소이유서에서 “1심 판결이 증거를 편파적이고 의도적으로 취사선택함에 따라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관련 법리를 오해하는 등 오류가 있다. 근로자 파견 관계가 인정됨을 전제한 후 그 결론에 꿰맞추는 식으로 이유를 구성한 것 아닌지 강하게 추정된다”며 “항소심에서 이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청업체 프리죤도 셀트리온 지원사격에 나섰다. 프리죤 측은 피고(셀트리온) 보조참가신청서를 지난 2월 19일 항소심 재판부에 냈다. 보조참가는 민사소송 결과에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가 원고와 피고 중 한쪽을 돕기 위해 재판에 참가하는 것을 뜻한다. 프리죤은 1심에선 재판에 보조참가하지 않았다.
프리죤 측은 보조참가신청서에서 “원고(프리죤 직원 2명)들은 극히 일부 예외적인 사항을 마치 전체적이고 원칙적인 모습인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근로관계 실질을 호도했다”며 “그 결과 원심(1심)은 잘못된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셀트리온 측 항소이유서와 프리죤 측 보조참가신청서엔 1심 판결을 향한 날 선 표현이 가득했다. 셀트리온이 1심에서 사실상 완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심 재판부는 2023년 9월 21일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한 원고(프리죤 직원 2명) 승소 판결을 하면서 고용노동부 근로자 파견 기준 5가지를 모두 충족한다고 조목조목 판시했다.
셀트리온 측은 “1심 판결은 사실상 도급인(셀트리온) 지시권에 불과한 내용을 자의적으로 사용사업주(셀트리온) 지휘·명령권 행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13개 판례를 소개하면서 “다수의 판례 역시 도급인이 수급인(프리죤)에게 도급 등 업무 범위나 내용을 지시하거나 업무 이행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지휘·명령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13개 판례 중엔 셀트리온 항소심 변호인단을 이끄는 법무법인 화우 양시훈 변호사가 서울고등법원 고법판사 시절 판결한 사건도 포함됐다. 항소이유서 다른 부분에 인용된 판례 중에도 양 변호사가 판사 시절 판결한 사건이 여러 개였다. 2023년 1월 판사에서 퇴임한 양 변호사는 서울고법 노동전담부에 장기간 근무하면서 불법파견 소송 항소심을 여러 건 맡았다.
이메일과 카카오톡 등을 통한 업무 지시 증거와 관련해서도 셀트리온 측은 도급인 지시권 행사라는 주장을 펼쳤다. 1심에선 셀트리온 측이 프리죤 직원에게 방역 작업 날짜, 범위, 별도 요청사항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업무를 지시한 이메일과 카카오톡 등 내역이 증거로 제출됐다. 이 증거들은 셀트리온이 프리죤 직원을 지휘·명령했다는 판단 근거가 됐다.
이메일 등을 통한 업무 지시에 대해 셀트리온 측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이뤄지는 비정기 클리닝(방역)에 대한 것”이라며 “주된 정기 클리닝과 관련해서는 이메일을 통한 업무 지시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비정기 클리닝과 같이 별도 클리닝이 필요한 경우 업무 대상과 시기 등 목적을 특정해주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프리죤 측 관리자가 아닌 프리죤 직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계정으로 이메일 업무 지시가 이뤄진 점에 대해선 “프리죤 관리자 부재 시 하급관리자가 업무 요청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셀트리온 측은 근로자 파견 관계 성립을 인정하려면 계쟁기간(근로자 파견 관계를 놓고 법적으로 다투는 기간)에 따른 구체적인 근로자 파견 징표가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일례로 1심은 셀트리온 로고가 표시된 ‘야간클리닝 현장 관리감독 리스트’를 셀트리온 측이 프리죤 직원을 세세하게 관리감독했다는 근거 중 하나로 삼았다.
이에 대해 셀트리온 측은 항소이유서에서 “2018년 1월경 미국 식품의약국(FDA) 경고 서한에 따라 실시한 내부 감사에 따른 후속 조치로 작성된 것”이라며 “이 사건 계쟁기간에 이와 같은 체크리스트가 유사한 방식으로 사용됐을 것이라는 가정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셀트리온은 2017년 5~6월 FDA 정기 감사를 받은 결과 약병 일부에서 이물질이 검출되는 등 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 중 12가지를 충족하지 못했다. 셀트리온은 같은 해 11월 지적사항을 개선해 FDA에 보고했다. 하지만 2018년 1월 FDA로부터 추가 보완이 필요하다는 경고 서한을 받았다. 이후 셀트리온은 2018년 9월에서야 FDA로부터 공정에 이상이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
소송을 제기한 프리죤 직원 2명은 각각 2009년, 2011년 입사해 현재도 근무 중이다. 근로자 파견 관계가 인정되면 파견 기간 제한에 따라 입사일 2년 후부터 원청업체의 직접고용의무가 생긴다. 이 때문에 1심은 두 사람 입사일을 고려해 계쟁기간을 2009년부터 2013년으로 잡았다. 이 기간이 아닌 2018년 문건은 불법파견 징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셀트리온 측 주장이다.
또 셀트리온 측은 “1심 판결은 계쟁기간과 무관한 다수 증거는 근로자 파견 관계 인정 근거로 사용하면서도 피고(셀트리온)가 제출한 증거는 계쟁기간과 무관하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며 “전체 증거들을 동일한 선상에서 계쟁기간과 연관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셀트리온 측은 프리죤 측이 작성한 야간클리닝 계획표와 표준작업지침서(SOP) 요약 자료가 계쟁기간 이후 작성된 것이라 배척됐다고 손꼽았다. 그런데 1심 판결문을 보면 해당 증거들은 계쟁기간 이후 작성됐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된 게 아니었다. 1심은 해당 증거들에 대해 “프리죤 상호나 로고, 결재란 등이 없어 프리죤이 공식적으로 작성한 문서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항소심에선 셀트리온이 작성한 SOP의 근로자 지휘·명령 징표 여부 또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앞서 1심은 “원고들(프리죤 직원 2명)을 비롯한 야간클리닝팀은 작업을 함에 있어서 작업 내용, 순서, 방법 등에 관한 재량을 갖지 못한 채 SOP에서 정해놓은 내용, 순서, 방법 등에 구속되어 그에 따라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판단했다.
또 1심은 “피고(셀트리온)는 프리죤이 별도 업무매뉴얼 등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노하우나 전문성을 갖고 작업을 수행했다고 주장하나 SOP 등을 단순 요약해 작성된 업무매뉴얼”이라고 일축했다.
이와 관련해 셀트리온 측은 항소이유서에서 “SOP는 셀트리온과 프리죤이 협의해 작성했다. 셀트리온이 SOP를 프리죤 소속 근로자에게 일방적으로 강제한 것이 전혀 아니고 오히려 프리죤 업무 방식에 따라 SOP가 변경됐다”며 “1심 판결은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셀트리온 측은 SOP는 원청의 근로자 지휘·명령 징표가 될 수 없다며 5개 판례를 근거로 제시했다. 제조업 불법파견 소송에서 생산관리시스템(MES)을 통한 업무 지시를 원청의 근로자 지휘·명령 징표로 인정하지 않은 판례였다. 셀트리온 측은 항소이유서에서 “종래 대법원은 MES를 원청의 지휘·명령 징표로 인정한 바 있었으나 최근에는 객관적 정보일 뿐 원청의 지휘·명령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선고됐다”고 강조했다.
프리죤 측도 항소심에서 셀트리온과 비슷한 주장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프리죤 측은 보조참가신청서에서 “참가인(프리죤)은 야간클리닝에 관해 피고(셀트리온)보다 월등한 전문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용역 도급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체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다”며 “근로관계의 실질을 명명백백히 밝힐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부디 보조참가를 허가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프리죤 측이 항소심에서 어떤 증거를 제시할지는 미지수다. 프리죤은 1심 법원의 사실조회에서 이 사건 계쟁기간 셀트리온 외에 GMP 생산시설 야간클리닝 업무를 도급받은 업체가 있는지, GMP 생산시설 야간클리닝 업무와 관련해 국내외 규제기관으로부터 취득한 면허나 인허가 또는 인증을 받은 적이 있는지 등에 대해 모두 ‘해당없음’으로 회신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