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갑 하헌식 “희생 번트 아니고, 희생 삼진”…선거비용 보전 언감생심 “10%만 나와도 승리”
광주 서구갑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진보당, 소나무당 후보들의 4파전이 열린다. 조인철 민주당 후보, 송영길 소나무당 후보, 강승철 진보당 후보와 경쟁을 펼치는 국민의힘 주자는 하헌식 후보다. 3월 14일 방문한 하 후보 선거 사무실은 총선을 한 달도 남기지 않았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하헌식 후보에게 ‘험지에서 필승 전략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하 후보는 “국민의힘에게 광주는 험지가 아니”라면서 “광주는 불모지와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하 후보는 “험지는 어려운 승부가 예상돼 당선 가능성이 낮은 지역구를 일컫는데, 광주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밝혔다.
‘그러면 왜 선거에 출마한 것이냐’는 질문에 하 후보는 “먼 미래 호남 지역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것은 균형감 있는 정치 지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보수 정당 입장에서 지금은 완전한 불모지인 호남을 험지로 바꾸기 위해 희생을 불사할 것”이라고 했다. 하 후보는 “이건 희생 번트도 아니고, 희생 삼진”이라면서 “호남 정치 지형이 바뀐다면, 대한민국 판도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보수 불모지를 험지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갖고 있다. 불모지가 험지가 되면 언젠가는 경합지가 되고, 경합지를 우세 지역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노려볼 수도 있는 그런 정치 환경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하 후보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옥중 출마를 선언한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하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송영길 후보는 철저히 배제하고 가려고 한다”면서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광주 시민들에게 평가를 받으러 나온다는 것 자체가 광주 시민들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2014년 재보궐 선거 전남 순천·곡성, 2016년 제20대 총선 전남 순천에서 각각 재선과 3선을 이뤄낸 이정현 국민의힘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을 후보는 4선에 도전하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넓은 지역구를 이곳저곳 옮겨 가며 자전거 유세를 이어가고 있다. 제21대 총선 때 이 지역구에선 서동용 민주당 의원이 69.12%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 의원으로선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전망이다.
일요신문은 호남 지역에서 몇 안 되는 국민의힘 핵심 지지자를 수소문해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60대 배 아무개 씨는 “많은 호남 지역 시민이 민주당 견제 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공감한다”면서도 “그런데 그 견제세력으로 거론되는 이들이 민주당에서 탈당한 세력이라든지 진보당 등의 세력”이라고 말했다. 배 씨는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강도로 풀어내는 세력은 민주당 견제론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배 씨는 “호남 지역에서 거대 양당 중 하나인 국민의힘 지지율이 낮으면, 보수 정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상대적으로 호남에 공을 덜 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 “그런데 호남 지역 주민들은 국민의힘이 아무것도 안 해줬으니, 민주당을 뽑을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투표를 하는 부분이 있다. 분명 아쉬운 부분”이라고 했다.
자신을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소개한 70대 장 아무개 씨는 “감정에 치우친 선택보다 지역 발전에 실질적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문재인 정부, 노무현 정부 그리고 이재명 민주당 지도부가 호남 발전에 큰 기여를 했는지 반문하고 싶다”고 했다.
장 씨는 “보수 정당 간판을 단 이정현 전 의원이 순천에서 당선된 뒤 정부 예산을 받아와 순천만정원박람회를 유치해 순천 인프라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면서 “계속 똑같은 선택을 해온 광주시 예산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대로라면 광주뿐 아니라 호남이 발전할 만한 활로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호남 정치권에서 수십 년 간 활동한 원로급 재야인사는 “지금은 그래도 상황이 많이 나아진 것”이라면서 “예전엔 사무실을 내는 것도, 유세에 나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금은 국민의힘 옷을 입고 선거운동을 해도 응원해주는 시민이 나타날 때도 있을 정도”라면서도 “그런 응원도 결국엔 국민의힘은 어차피 이곳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동정이 깔려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광주에서 만난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호남 지역에서 득표율이 10%만 나와도 승리한 것과 다름 없는 수치”라고 입을 모았다.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다. 호남 지역에서 선거에 나서는 국민의힘 후보에겐 ‘득표율 15%’가 마의 고지에 가깝다. 득표율 15%는 선거 보전금 전액 지급 기준점이다. 국민의힘 후보들에게 선거 보전금 전액 지급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한 국민의힘 후보는 중앙당으로부터 “선거 비용과 관련해 부가세를 내야 득표율 10%가 넘었을 때부터 선거 보전금을 지급받을 수 있고, 15%가 넘었을 때 선거 보전금을 전액 지급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고 한다. 이 후보는 “솔직히 그 안내를 받았을 때 선거 보전금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한데, 부가세를 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웃었다.
호남 지역 국민의힘 후보 캠프 관계자는 “호남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은 질 게 빤한 싸움을 이어가면서 득표율을 높이는 데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면서 “국민의힘이 호남 공략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호남에 선거전에 나서는 주자들의 체급을 향상시키며 장기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광주=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