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절반 이상 13세 이하, 고백에만 10년 이상 걸려…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대표적 암수범죄
#‘인면수심’ 삼형제
청소년들을 납치·성폭행하던 전남 지역의 삼형제가 이번엔 딸이자 조카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러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사건이 알려져 화제다. 3월 10일 JTBC ‘뉴스룸’ 보도에 따르면 삼형제의 범죄는 교사가 피해자를 다른 일로 상담하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돼 경찰에 신고하며 세상에 드러났다.
2년을 감옥에서 지내던 피해자의 아버지 A 씨가 출소한 건 2020년. 당시 피해자는 13세였다. 출소 당일 A 씨는 거실에서 TV를 보던 딸을 성폭행했다. 같이 출소한 둘째 삼촌 B 씨는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조카에게 범행을 저질렀다. 또 막내 삼촌 C 씨는 아예 5년 전부터 성범죄를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함께 사는 친할머니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지만,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범죄자인 A 씨와 B 씨는 범행 당시 전자발찌를 찬 상태로 법무부 보호관찰소 감시대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C 씨 역시 아동 성범죄 전과자였다.
문제는 오랜 기간 이 집에서 수십 차례 성폭행이 이어지는 동안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관계 기관인 법무부는 책임을 법원에게 돌렸다. 성범죄자들에 대한 관리 소홀 관련 질문에 법무부는 “(삼형제의 앞선 범죄는) 딸이 아닌 불특정 피해자를 대상으로 했던 데다 법원의 결정 없이 임의로 가족과 분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10년여 전 범죄에 대해 선고할 당시 법원이 딸에 대한 보호조치를 내리지 않아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뜻이다.
한편, 검찰은 삼형제에 대해 전문의 감정 결과 ‘성충동 조절 능력이 낮다’며 이례적으로 삼형제 모두에게 ‘화학적 거세’로 알려진 약물치료를 법원에 요청했다. A 씨와 C 씨는 정신지체 3급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형이 길고 출소 후 보호 관찰도 받는다는 이유 등으로 기각했다. 앞선 1심 재판부도 범죄가 불특정 다수가 아닌 딸에게만 이뤄진 만큼 딸과 분리되면 재범 위험성이 줄어들 여지가 있다며 역시 이를 기각했다.
A 씨는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22년이 확정됐고, B 씨와 C 씨는 각각 징역 20년과 15년을 받았다. 피해 지원을 담당했던 지자체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전했다. 현재 피해자는 할머니와 떨어져 보호기관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친족 성폭력 피해자 쉼터)의 조은희 원장은 ‘전자발찌 삼형제’ 사건에 대해 “통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과거에는 이런 일이 다반사였다. 동네에서 취약한 가정에서 자랐거나 장애가 있는 아이를 타깃으로 삼아 집단으로 성폭행하는 식”이라며 “가해자들은 본능적으로 피해자가 약자라는 점을 잘 파악하는데, 피해자는 점점 위축되고 가해자는 죄의식을 갖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뤄진다. 이번 사건도 지적장애를 가진 가해자들이 독립적으로 범행했다기보다 서로를 모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친족 성폭력의 딜레마
친족 성폭력은 대표적인 암수범죄에 해당한다. 사건은 많이 발생하고 있지만 수사기관이 이를 인지하지 못해 공식적인 범죄 통계가 집계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성폭력 피해 상담 가운데 친족에 의한 성폭력 상담 비율은 2020년 8.3%에서 2021년 14.2%로 증가했다. 하지만 친족 성폭력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거나 피해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하는 등 가장 가까운 친족이 가해자이자 공범이 되는 일이 잦다.
실제로 피해자에게 호의적인 가족은 굉장히 드물다고 한다. 심지어 피해자에게 처벌불원서를 써달라고 하는 등 2차 가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서혜진 변호사는 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2’에 출연해 “친족 성폭력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가해자들의 사돈과 팔촌까지 온갖 데서 전화가 왔다. 끊임없이 회유와 협박을 하더라. 변호사한테도 이러는데 피해자에게는 얼마나 더 했을까”면서 “친족 성폭력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가족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피해자들이 느끼는 가정 파괴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은 생각보다 크다고 한다. 조 원장은 “피해자들은 내가 이 얘기를 밖으로 꺼냈을 때 가족이 받을 피해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당한 피해에 대해 털어놓지 못한다. 또한 엄마나 다른 자매 등에게 피해가 옮겨갈까봐 감내하는 경우도 있다. 온 가족이 분리가 돼야 하는 결과에 대한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족 성폭력이 암수범죄로 남는 또 다른 이유는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이다. 가해자들은 보통 경제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피해자가 어릴 경우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생사여탈권을 쥔 상태다. 또한 가해자가 평소에는 정상적인 부모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거나, 자신의 피해를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조은희 원장은 친족 성폭력의 특징에 대해 “피해자 절반 이상이 8~13세의 어린이이며, 그 다음 많은 연령층이 7세 이하 유아다. 가해자들이 통제하기 쉬운 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면서 “또 피해자들의 절반 이상이 신고하기까지 보통 10년 이상 걸린다. 친족 성폭력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이를 깨닫더라도 가정이 파괴될까봐 신고하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들 중에는 40·50대, 많게는 70대 할머니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조 원장은 “친족 성폭력의 경우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보통 경제권을 쥐고 있는데, 가해자들은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이러한 권력 관계가 학대나 성폭행 등으로 나타난 것”이라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피해자의 다른 가족도 불가항력에 놓이긴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친족 성폭력은 13세 미만 미성년자일 경우만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13세 이상 청소년은 그들이 성년이 된 날로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된다. 각종 여성단체와 시민단체 등은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전면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조은희 원장은 “피해자들은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는 데 10년 이상이 걸린다.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이들의 힘든 결정이 지지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방안에 대해 조은희 원장은 “어린 시절 성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들은 트라우마로 인해 학업이나 인간관계 등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경제적으로도 자립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성인이 돼 시설을 퇴소하는 피해자들에게 기본적인 주거 지원이 절실하다”면서 “또한 요즘 어린 피해자들이 시설 입소를 기피하고 있다. 규제를 싫어하는 자유로운 성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 방에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등 시설 자체가 예전 기준에 맞춰져 있다.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설 퇴소자들은 자신들을 또우리(또 만나 우리)라고 칭하며 소모임을 갖는 등 서로를 돕는 치유의 과정을 견뎌내고 있다. 이들은 “안전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그런 공간만 있어도 좋겠다”고 말한다고 한다.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열악한 거주지에 살며 혼자 있는 것 자체에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국민임대주택 신청분이 있지만 많지 않아 선정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조 원장은 “친족 성폭력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국가적으로 안전한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