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시세보다 저렴, 개소식 때 주민센터 집기 빌린 정황…한정애 “임대 나온 금액, 집기류 안 쓰고 돌려줘”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명 횡사’ 국면에서 생환한 비명계 현역의원이다.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한강 벨트’ 거점 중 하나인 서울 강서병 공천을 획득했다. 한 의원은 제21대 국회 전반기 보건복지위원장을 맡았고, 문재인 정부 후반기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한 의원은 ‘텃밭’으로 일궈놓은 자신의 지역구를 기반으로 4선을 노리고 있다.
서울 강서병은 마곡지구 개발 이후 제20대 총선부터 신설됐다. 등촌1동, 등촌2동, 화곡본동, 화곡4동, 화곡6동, 가양3동, 염창동 일원을 아우른다. 선거구 구획 당시부터 주요 동 일부를 쪼개 지역구에 편입해 ‘게리맨더링 논란’ 중심에 서기도 한 지역구다. 강서병 지역구가 신설된 뒤 치러진 두 차례 총선에서 당선증을 거머쥔 인물은 한정애 민주당 의원이다. ‘민주당 양지’로 분류되는 지역이다.
한 의원 지역구 사무실은 서울시 강서구 공항대로(등촌동)에 위치해 있다. 엘앤피코스메틱(메디힐) 본사 옆 부속건물 1~2층이 한 의원 사무실로 등록돼 있다. 부속건물 3~4층은 엘앤피코스메틱 자회사인 트리셀이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화장품 회사들이 활용하는 상가 건물 1층에 국회의원 지역구 사무소가 들어서 있는 구조다. 한 의원 사무실에서 등촌역까지는 65m 거리다. 도보로는 1분이 소요되는, 초역세권이다.
2022년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10월 11일 한 의원 측은 보증금 2000만 원을 지출하고 같은 해 10월 31일 임대료 130만 원, 부가세 13만 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리비로는 11만 원가량이 지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사무실 면적은 156.03㎡(약 47.2평)이었다. 등촌역 초역세권 단독건물 1층이라는 프리미엄을 감안했을 때 한 의원 사무실이 주변 시세보다 지나치게 낮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강서구 공항대로 일대 부동산을 찾아 문의한 결과 한 의원 사무실과 가장 비슷한 매물을 찾아볼 수 있었다. 등촌역 역세권 40평 규모 상가 중 2층에 위치한 매물이었다. 이 매물은 보증금 1억 원, 월 임대료는 600만 원이었다. 관리비는 40만 원 정도가 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의원 사무실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차이가 나는 금액이었다.
한 의원이 지역 사무실을 새로 얻은 것은 2022년 가을 무렵이다. 그 전까지 한 의원은 공항대로(화곡동)에 위치한 지역구 사무실을 쓰고 있었다. 강서구청 입구 교차로 인근 건물 4층이었다. 이 건물은 109.44㎡(33평) 넓이였다. 한 의원은 보증금 2000만 원에 임대료 150만 원, 부가세 15만 원, 관리비 50만 원대를 지출했다.
이 건물은 역세권이라고 하긴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가양역까지 746m, 증미역까지 892m, 발산역까지 1.6km, 등촌역까지 1.6km, 화곡역까지 2km 거리에 있었다. 여기다 사무실이 4층에 있어 접근성은 지금의 사무실보다 떨어졌다. 전통적 상권이 존재하는 지역이라 역세권 지역과 비교했을 때 상가 임대료가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한 의원 사무실 위치는 전통 상가 중심 비역세권에서 초역세권으로 바뀌었고, 사무실 면적은 14평이 늘어났다. 층고도 기존 4층에서 ‘상가 로열층’으로 불리는 1층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사무실 임대료는 20만 원이 저렴해졌다.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관리비 지출 규모도 확연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요신문은 서울시 강서구 등촌동 소재 공인중개사들을 만나 등촌역 초역세권 상가 시세를 물었다. 공인중개사 A 씨에게 “등촌역 역세권 인근에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130만 원으로 40평 중반대 1층 상가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A 씨는 “우리 사무실이 8평인데, 월세가 얼마인지 아느냐”면서 “150만 원”이라고 했다.
A 씨는 “역세권도 어느 블록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시세가 천차만별”이라면서도 “40평 중반대 기준으로 월 임대료 300만~400만 원 수준이면 보증금을 5000만 원 정도로 예상하면 된다”고 했다. A 씨는 “상가가 1층일 경우엔 보증금이 1억 정도까지도 형성될 수 있다”면서 “앞서 말한 금액(한정애 의원 사무소 임대료)으론 그런 조건 상가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공인중개사 B 씨는 “1층 상가 기준 월 임대료는 1평(3.3㎡)당 15만~20만 원 정도로 보면 된다”면서 “강서구청 입구 교차로와 등촌역 역세권 상가 임대료 가격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해충돌 논란 여지도 있다. 한 의원은 2020년 6월부터 9월까지 제21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22년 7월부터는 국회보건복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화장품 관련 업무 소관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인데, 식약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관부처다.
한 의원은 2019년 4월 24일 엘앤피코스메틱 창립 10주년 행사에 축사를 하기도 했다. 축사 이후 3년 뒤 한 의원은 엘앤피코스메틱을 지역구 사무실 건물주로 만났다.
선관위 선거사무소 등록 현황에 따르면 한 의원 선거사무실은 엘앤피코스메틱 부속건물 1~2층인 것으로 확인됐다. 3월 16일 이곳에선 선거사무소 개소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를 두고도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이 제기된다. 개소식에 활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접이식 책상 및 의자 등 집기류가 행사 이후 등촌2동 주민센터로 옮겨진 까닭이다.
취재에 따르면, 한정애 의원 선거사무소 개소식이 끝난 뒤 민주당 소속 강서구의원과 선거캠프 관계자들이 ‘공무수행’이라고 적힌 트럭에 책상, 의자 등 집기류를 실었다. 해당 트럭은 등촌2동 주민센터에 도착했다. 선거 기간 투표소로 활용되는 등촌2동 주민센터가 특정 후보에게 집기류를 대여해준 것으로 파악된다.
선관위가 배포한 ‘제22대 총선 정치관계법 사례예시집’에 따르면 정당 선거사무소가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로부터 선거운동 기타 정치활동을 위해 차량·장비·물품을 무상으로 제공, 대여받는 행위는 ‘할 수 없는 사례’로 명시돼 있다.
공직선거법 제85조(공무원 등의 선거 관여 금지)에 따르면 공무원 등 법령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직무와 관련해 또는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에 영향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집기류를 대여해준 것으로 파악된 등촌2동 주민센터를 둘러싼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제기된다.
한정애 의원은 3월 25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사무실이 상권이 발달해 있는 지역은 아니라, 싸게 (임대를) 얻은 것은 아니”라면서 “구청에서 임대를 얻는 것보다 더 싸게 얻었다 그러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도 않고, 임대 나온 금액대로 임대한 것이라 특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의원은 “이전 사무소는 정방형이었고, 지금 사무소는 조금 길쭉하게 돼 있다”면서 “크게 평수가 넓어진 줄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화장품 기업 건물주와 국회 보건복지위 위원 임차인 사이 이해충돌 논란과 관련해 한 의원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라면서 “저는 주로 동물 실험, 동물 대체 시험 등과 관련한 의정활동을 했기 때문에 화장품 회사와 이해충돌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동사무소 집기류를 대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한 의원은 “확인을 해보니 개소식에 저희가 따로 빌린 의자하고 책상 이런 것들이 있었다”면서 “그 사실은 전혀 몰랐었고 보니까 우리 구의원님 중 한 분이 혹시나 (집기류가) 모자랄까봐 그렇게 했는데 쓰지는 않고 있다가 바로 줬다고 하더라”고 했다.
한 의원은 “약간 뜬금없는 얘기여서 아까 한번 물어보니 준비를 했다가 쓰지 않고 돌려줬다고 했다”면서 “제가 만약 그런 걸 확인했다면, 그런 걸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했다. 한 의원은 “제가 의정활동을 하거나 살아 온 궤적을 조금 보면, 꼼수를 부리는 게 사실 제겐 더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