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제조사에서 국내 최대 특허수익화전문사 자회사로 변신…표준특허 등 활용 공격적 IP 분쟁 이어가
#팬텍이 미국에서 특허 소송을?
지난 3월 14일(현지시간) 국내 특허수익화전문회사(NPE) 팬텍이 8건의 특허를 침해한 혐의로 중국의 통신기업인 원플러스 테크놀로지(OnePlus Technology)를 미국 텍사스 동부 지방법원에 제소했다. 소장에 따르면 특허 위반 혐의가 적용되는 제품은 26가지로 팬텍 측은 라이선싱(특허 사용을 허가하는 대신 로열티를 받는 사업)에 대해 2020년 중순 이후로 10차례가량 소통을 시도했으나 원플러스 측에서 응답하지 않아 소송에 돌입했다.
특히 이번 분쟁에는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의 표준을 따르는 표준특허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표준특허란 국제기구에서 정한 표준규격을 구현할 때 반드시 쓰이게 되는 특허를 일컫는 말로 해당 특허 기술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규격에 맞는 제품을 생산할 수 없다. 표준특허가 일반특허와 구별되는 점은 특허 침해 사례가 발생했을 경우 침해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산업분야에서든 표준특허를 획득하면 안정적인 로열티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팬텍이 이번 소송으로 상당한 로열티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이미 2022년 5월에도 팬텍은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쿨패드(Coolpad)와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특허 침해 소송 패소로 인한 징벌적 손해배상금과 북미 판매 금지 등을 우려한 쿨패드가 로열티를 지급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팬텍은 2022년 2월 미국 스마트폰 제조사 셀알루어(CellAllure)와 2021년 10월 비엘유(BLU) 등 다른 제조사들과도 합의를 통해 로열티를 받고 있다.
팬텍은 2022년 9월 특허 침해 혐의로 LG전자를 미국 텍사스 동부 지방법원에 제소하기도 했다. 팬텍은 LG전자가 이미 철수한 스마트폰과 패드 100여 종에 사용된 무선 통신 시스템 등을 걸고넘어지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LG전자가 2023년 9월 미국 법원에 낸 서면 보고에서 합의를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면서 분쟁이 길어지고 있다. 팬텍이 상당수 표준 특허를 포함해 무선 통신 분야에서만 200개가 넘는 미국 특허를 보유한 만큼 추가 분쟁의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팬텍은 국내에서도 활발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팬텍은 최근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GO)'를 개발한 미국 나이언틱과의 국내 특허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양사가 복수의 특허 침해·무효 맞소송을 제기하며 대립 중인 가운데 대법원이 지난 2월 29일 나이언틱이 제기한 특허무효 소송 중 한 건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앞서 특허심판원이 팬텍이 보유한 특허가 유효하다고 선언하자 나이언틱이 특허법원에 심결취소소송을,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으나 결국 특허 무력화에 실패했다.
#‘팬택’이 ‘팬텍’ 된 까닭
팬택(Pantech Co., Ltd.,)은 1991년 출범한 국내 IT기업이다. 1997년부터 휴대전화 생산을 시작한 팬택은 베가(VEGA), 스카이(SKY), 큐리텔(Curitel) 등의 브랜드를 통해 국내 2위의 휴대폰 제조사로 부상했다.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베트남 등에서도 매출을 올리며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팬택은 2005년 무리한 SK텔레텍 인수합병 추진과 이후 이어진 판매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 휴대폰 제조 사업을 접어야 했다.
현재의 팬텍(Pantech Corp.)은 팬택의 후신이다. 팬텍은 국내 최대 NPE인 아이디어허브의 100% 자회사로 지난 2020년 1000여 건이 넘는 기존 팬택의 모든 특허를 인수했다. 2021년 9월에는 롱텀에볼루션(LTE) 관련 표준특허 600여 건을 매입하고 미국 자회사인 팬텍 와이어리스를 통해 무선 통신 기술 관련 특허관리 전문기업으로 유명한 인터디지털 소유 특허 250여 건을 매입해 포트폴리오를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팬텍의 모회사인 아이디어허브의 임경수 CEO(최고경영자)는 국내 최초 NPE인 인텔렉추얼디스커버리 출신이다. 인텔렉추얼디스커버리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 NPE였으나 정권이 바뀌고 지원이 끊기면서 민간에 인수됐다. 박민흥 와이즈업 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는 “당시 해외에서처럼 국내에서도 지식재산권을 수익화하려는 정부 방침에 따라 NPE가 만들어지면서 특허를 매입한 결과물이 이제야 나오고 있는 것 같다”며 “인텔렉추얼디스커버리나 아이디어허브 모두 상당히 수익 구조가 좋은 회사로 탈바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NPE들은 특허, 상표, 저작물, 영업비밀 등 지식재산권을 거래하거나 매입한 IP의 라이선싱 등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 국내에서 글로벌 산업이 성장하면서 IP 관련 분쟁과 금융투자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IP 거래 및 IP라이선싱 시장은 약 300조 원 이상 규모로 추정된다.
‘특허 괴물 아닙니다’ 보폭 넓히는 국내 NPE
3월 14일 미국에서 특허침해소송을 시작한 국내 NPE는 팬텍뿐만이 아니다. 국내 NPE인 밸류8(VALUE8 CO., LTD.) 역시 같은날 텍사스 동부 지방법원에 스웨덴의 자동차 제조사 볼보와 미국과 중국에 있는 볼보의 해외 법인들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밸류8은 블루투스를 사용해 차량 내부 모바일 장치를 감지해 연결하고 통신 및 미디어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게 하는 볼보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특허 위반 혐의 제품에는 볼보의 유명 제품인 XC40, XC60, XC90, S90, S60, V90, V60 등이 모두 포함됐다. 소장에 따르면 밸류8 측은 추가 특허 침해를 영구적으로 금지하는 가처분과 금전적 손해배상, 이자 비용, 변호사 비용 등을 요구했다.
공우상 특허사무소 공앤유 대표변리사는 “예전엔 해외의 NPE들만 이슈가 됐는데 2~3년 사이에 국내 NPE의 움직임도 드러나고 있다. 특허권만 갖고 제조사들을 공격하는 게 NPE들의 주된 활동이기 때문에 원래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지만 점차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흥 와이즈업 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도 “국내 출원인들이 갖고 있는 특허를 수익화할 수 있는 점에서 유용하고 무엇보다도 NPE들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국내에서도 특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있다”며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자기 권리를 행사하는 일이고 전세계적으로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이런 움직임이 보이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