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 측의 신주 무효 소송 제기 뒤늦게 공시…고려아연 “사전 투표로 결과 나온 상황, 다른 의도 없어”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지난 21일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 제33조에 따라 고려아연을 불성실공시 법인 지정을 예고했다. 고려아연이 투자판단과 관련한 중요사항에 대한 정보를 규정보다 늦게 공시했다고 판단한 것. 심의를 거쳐 불성실공시 법인으로 지정되면 벌점 및 공시위반제재금 등을 받을 수 있다.
상장사는 증권에 관한 중대한 소송 제기 등과 같이 투자자에게 알려야 할 주요 정보가 있으면 그 사유가 발생한 다음 날까지 공시해야 하는데 고려아연은 3월 18일에 사실을 확인하고 이틀 뒤인 3월 20일 공시했다. 더욱이 그 사이인 3월 19일 정기주주총회가 있었다. 일반 주주들은 알아야 할 정보를 모른 채 주총장에 들어간 셈이다. 지연된 공시의 내용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 영풍이 고려아연이 지난해 진행한 신주 발행에 대해 무효를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현재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와 장씨 일가가 경영권 분쟁을 하고 있다. 양측은 지난 수십 년간 동업관계였다. 장씨 일가는 영풍을 통해 최대주주 역할을 하고, 최씨 일가는 경영을 담당하는 구도였다. 양측 간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분 격차가 상당해 표면적으로는 별다른 잡음 없이 동업관계를 이어온 것으로 인식됐다. 장씨 측 지분은 30%대, 최씨 측은 10%대에 그쳤다. 하지만 계열분리, 경영권 분쟁 소문도 꾸준히 나돌았다.
상황이 급변한 건 최씨 일가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외부투자자 현대차그룹, 한화그룹, LG그룹 등이 고려아연의 지분을 확보하면서다. 양측 우호지분 격차가 1% 내로 좁혀지자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됐다. 이번에 장씨 측이 문제 삼은 신주 발행 지분은 고려아연이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넘긴 것이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8월 30일 신주 104만 5430주를 발행해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HMG Global LLC’에 배정했다. 신주를 확보한 ‘HMG Global LLC’는 고려아연 지분 5%를 가진 주요주주로 올라섰다. 고려아연은 현대차그룹에 신주를 넘기면서 “사업 및 경영상 목적 달성을 위한 결정”이라며 “투자자와의 사업제휴 및 기술제휴를 통한 시너지효과 등을 고려해 (투자자로 현대차그룹 계열사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최씨 일가가 우호지분 역할을 해줄 백기사를 주요주주로 합류시킨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고 있다. 기존 주주의 경우 신주 발행으로 기존 지분 가치가 희석되는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수 있어 적잖은 반발도 있었다. 장씨 일가의 영풍은 이점을 파고들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고려아연은 민감할 수 있는 이 정보를 주총 전에 인지했지만 공시를 규정보다 늦게 한 것이다. 특히 고려아연이 “영풍은 더 이상 동반자가 아니라 시장의 경쟁자”라며 결별 선언을 한 터라 공시 지연은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고려아연 측은 대부분 전자투표를 통해 사전투표를 한 터라 현장 투표의 비율은 미미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공시를 숨길 이유가 없다며 “내부 절차상 공시가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기업 지배구조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감독당국이 기업에 사유 발생 다음 날 공시하도록 정한 것은 그만큼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라며 “특히 해당 공시 내용이 주총 안건 표결에 영향이 없다고 볼 수 없는 만큼 공시가 지연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