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모친 찾아온 이유와 구체적 범행 동기 미궁…화성 서부서 “연인 관계라서 가해자 공개 검토 안해”
#“피가 흥건” 다툼 끝에 파국
경기도 화성시 위치한 한 대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은 주변이 아파트와 빌라 등으로 둘러 쌓여 있다. 다소 외진 곳이지만 100세대가 넘는 이 오피스텔 곳곳에 CC(폐쇄회로)TV가 자리 잡고 있다. 초록색 우레탄으로 포장된 1층 주차장에는 차는 거의 없고 박스와 운동기구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건물 중앙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보니 깔끔한 내부가 인상 깊었다. 여느 오피스텔에서 볼 수 있는 복도 적치물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복도 구석에 위치한 한 세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테이프가 붙었다 떨어진 흔적, 크지는 않지만 도어록 옆 문틈 사이로 혈흔도 짙게 남아있었다. 옆집은 방해하지 말라는 듯 현관문 가운데 외시경을 A4 용지로 막아 놓았다.
이곳은 3월 25일 오전 9시 40분, 20대 남성 A 씨가 다툼 끝에 동거 중이던 여자친구 B 씨와 그녀의 어머니 C 씨에게 흉기를 휘둘렀던 사건의 장소다. A 씨는 자택에 있던 흉기를 이용해 B 씨의 배와 가슴, C 씨의 옆구리를 각각 찌른 것으로 조사됐다. 피범벅이 된 A 씨는 범행 직후 오피스텔 1층을 맨발로 내려왔다. 이후 그가 향한 곳은 건물 외곽 컨테이너 박스, 경비실이었다. A 씨는 경비원에게 “112에 신고해달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와 관련,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람을 살해하면 보통 도주하거나 자수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A 씨는 제3자를 통해 자수했다. 이런 경우 보통 직접 자수하는 것에 심적 부담을 느끼는 것”이라면서 “쉽게 말해 경찰에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말할 용기가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찰은 곧바로 출동해 A 씨를 체포했는데, 검거 과정에서 별다른 저항이나 도주 시도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과 함께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심정지 상태였던 B 씨를 병원에 후송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C 씨 역시 의식은 있지만 위중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해당 오피스텔에서 만난 한 주민은 “복도에 피가 흥건해 너무 충격적이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C 씨가 해당 오피스텔에 찾아온 이유와, 구체적인 범행동기 등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C 씨의 진술 일부를 확보했지만 추가 조사를 위해 C 씨의 치료 경과를 살피는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여자친구 모녀와 무슨 이유로 다툼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현재 조사 중이며 개인적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범행 과정에서 손을 다쳐 치료 중인 A 씨는 충격으로 인해 진술을 제대로 못하는 상태라고 알려졌다.
A 씨는 심신미약 상태와도 거리가 멀었다. 마약 간이 시약 검사에서 음성 반응이 나왔고, 술도 마시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3월 27일 A 씨는 살인 및 살인미수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송치됐다. 법원은 26일 “소명된 범죄사실이 중대하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연인’이라 신상공개 안 된다?
일각에서는 A 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만약 C 씨가 사망할 경우 이러한 여론이 더 커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다만 경찰은 A 씨의 신상공개를 공개하지 않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화성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묻지마 범죄도 아니고 가해자가 피해자와 ‘연인관계’였기 때문에 고인과의 관계를 고려해 신상공개를 검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연인 간 폭력의 경우 연인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폭력이고, 다른 사람이 같은 피해를 입을 확률이 낮다. 그래서 신상공개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이라면서 “신상이 공개되는 흉악범들의 경우 징역 20~30년 또는 무기징역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만약 A 씨의 신상을 공개됐다면 유사한 범죄를 막으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살인 및 살인미수인데 만약 살인 피해자가 두 명이었다면 신상공개가 이뤄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기 위해서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심의 개최를 결정해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는 총 7명으로 구성되며 4명 이상은 경찰 외부 인원인 경찰 소속 의사, 교수, 변호사 등이 포함된다. 신상정보 공개의 요건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이며 ‘죄를 범했다고 믿을 충분한 증거’가 있고 ‘국민 알권리,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며 ‘피의자가 청소년(만 19세 미만)에 해당하지 않아’야 한다.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가 객관적인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오윤성 교수는 “신상정보 공개 심의 자체가 상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같은 사안이라도 다른 결정이 나올 수 있다. 객관적인 수치를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법 감정 등을 고려하기 때문”이라면서 “무죄 추정의 원칙을 따르기 위해서는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리거나, 아예 신상공개 자체를 하면 안 된다. 피의자가 자백을 하더라도 재판 전까지는 무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논리로 보면 공개수배 역시 불가능해진다”라고 말했다.
신상정보 공개 자체의 위헌성을 두고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신상정보는 한번 공개되면 돌이킬 수 없는데, 만약 재판에서 무죄가 입증된다면 피의자의 인권을 현저히 침해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또한 피의자의 가족 등에 2차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2021년 용인 조카 학대 사망사건의 피의자 부부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된 이유도 그들의 친자녀 등 친인척 신원이 노출돼 2차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한편 1월 25일부터는 일명 ‘머그샷(범죄자 구금 과정에서 찍는 신원 식별용 얼굴 사진) 공개법’으로 불리는 ‘중대범죄신상공개법’이 시행됨에 따라 피의자에 동의와 상관없이 중범죄자의 신상이 30일 동안 공개된다. 사진 등의 정보가 오래되면 피의자를 식별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기존의 신상정보 공개와 달라진 점은 살인 외에 성범죄 등의 범죄로 대상이 확대되고, 재판 중인 피고인에게도 적용된다. 다만 공공의 이익 부합 등 신상정보 공개 요건이 변하지 않았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