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영배 경감 “당직 시간 일부 ‘휴게’로 간주, 경찰만 초과근무수당 제대로 못 받아…4월 초 소장 제출”
#'대기'와 '휴게'
밤사이 거센 태풍이 올 수 있다는 예보에 공무원들이 일과 후 집 대신 관사로 향했다. 혹시 태풍뿐 아니라 산사태라도 나면 안내방송을 하고 주민 대피 등을 돕기 위해서다. 다행히 태풍이 오지 않았다. 덕분에 공무원들도 관사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이 경우 공무원들은 '휴게'를 취한 걸까 '대기'를 한 걸까. 당연히 대기로 '근로'에 해당한다. 그에 따른 수당 등도 받아야 한다.
이런 원칙이 경찰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36년 차 경찰인 음영배 인천 중부경찰서 직장협의회 회장(경감)은 3월 13일 현장활력소에 "유독 경찰공무원만 시간 외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이라며 "법원에 판결을 구해 차별받지 않는 경찰공무원을 구현해야 한다"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더 묵인하면 악습이 관행으로 고착화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음 경감은 일요신문과 만나 "늦어도 4월 초순에는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경찰직장협의회(전국 직협)와 협의를 마쳤고, 변호사 등과 진행한 법리 검토도 마무리 수순이라고 한다. 그는 이미 2023년 7월부터 여러 경찰관들과 모여 미지급 초과수당의 부당성을 공론화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왔다. 그러다 같은 해 8월 행정소송 돌입을 위한 로펌과의 업무협약까지 이어졌다.
그가 이같이 나서게 된 계기는 2022년 2월 인천 섬 지역인 인천 옹진군 북도면 시도리 북도파출소로 발령이 나면서다. 1989년 입직해 서울경찰청 기동대와 인천경찰청 외사과 등에 몸 담아온 음 경감은 평소 드론(무인 비행장치)을 활용한 실종자 수색에도 관심이 컸던 덕분에 섬 지역 생활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드론 수색 관련한 실증 및 연구를 해나가기에는 도심 지역보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북도파출소에서 보낸 18개월은 뜻 깊었다. 그토록 바라온 드론 연구에도 몰입할 수 있었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주민들과의 끈끈한 유대감 역시 도시와 비교 불가였다. 다만 주민과의 유대감은 종종 난처함을 일으킬 때도 있었다. 노인이 많은 지역 특성상 경찰관의 크고 작은 도움이 자주 필요했는데, 음 경감은 퇴근 후 관사에 머무르다가도 민원 해결을 위해 출동을 하곤 했다.
섬 지역 경찰관의 근무패턴은 도시와 크게 다르다. 파출소·지구대 기준으로 도시는 주간-야간-비번-휴무 등이 일반적이지만, 음 경감은 배를 타고 북도에 들어서면 주 5일 동안은 섬에 머물러야 했다. 혹 날씨가 안 좋아 배가 안 뜨면 출근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이 같은 업무 구조가 불가피했다. 섬 안에 들어온 이상 그는 파출소에 있든 관사에 있든 24시간 경찰관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보니 늦은 밤 관사에서 잠을 자다가도 주민이 요청하면 출동해야만 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야 나이가 있으니 지역 어르신들과 어울리며 웬만한 민원도 무리 없이 해결해준다지만, 젊은 후배들이 이런 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또 울릉도·독도 등을 지키는 이들 및 해안경비대나 특공대 등 '24시간 대기' 체제를 갖춰야 하는 수많은 경찰관들은 매우 고단하겠다는 심경이었다.
경제적 보상이라도 확실하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아 더욱 착잡했다. 음 경감은 북도파출소 관사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사실상 '휴게'로 간주돼 제대로 된 수당을 받지 못했다. 섬 지역 경찰관이나 해안경비대 및 특공대 등이 제복을 벗더라도 관내 이탈이 제한되는 등 사실상 '대기' 상태인데도 그에 따른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경찰관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소방은 초과근무수당 지급 소송 승소
음 경감 생각에는 소송만이 답이었다. 따져보니 경찰은 일직·숙직 등을 비롯한 24시간 당직 체계에서 섬 지역 경찰은 17시간, 특공대 20시간, 항공대 20시간, 울릉도 등 해양경비대 20시간만 근무로 보고 나머지 시간은 휴게로 취급해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왔다. '경찰기관 상시근무 공무원의 근무시간 등에 관한 규칙'은 중대한 상황에 '대비'하는 형태도 상시근무로 명시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이처럼 경찰이 당직의 일부 시간을 휴게로 간주한 데에는 제도가 빌미를 제공한 탓도 있다. '공무원 수당규칙 등에 관한 규정'은 제15조에서 "시간외근무수당은 '예산의 범위'에서 지급한다"고 명시했다. 여느 공무원보다 당직 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경찰에서는 '예산의 범위'라는 표현에 주목했는지, 전체 예산이 부족하다며 수당을 일부만 지급해오는 관행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소방의 경우 이와 비슷한 문제를 진즉에 정리했다. 소방관들이 지방자치단체 등을 상대로 초과근무수당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자 대법원이 2019년 소방관의 손을 들어줬다. 이때도 지자체 등은 '예산의 범위'라는 규정을 들어 책정된 예산 범위 안에서만 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고 맞섰으나, 대법원은 공무원 수당 지급은 '법령'에 따른 의무라는 취지로 이같이 판단했다.
음 경위는 2020년 경찰청에 직접 전화를 걸어 '코로나 대기 근무로 소방은 수당이 나오는데 경찰은 왜 안 나오는지'를 문의한 적도 있다. 그러자 "직협에서 그 부분의 문제점을 공론화해서 나아질 수 있도록 힘을 써주십시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수당 미지급 관련한 문제의식과 개선 희망을 대부분의 경찰관들이 내심 공유하고 있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음 경위는 승소를 자신하고 있다. 이 경우 경찰관들에 줘야 할 수당은 수백억 원대로 추산된다. 음 경위가 속한 인천경찰청의 섬 지역 경찰관만 약 30명이다. 이들은 당직 때 7시간이 휴게로 간주되는데, 일반적인 업무 패턴을 바탕으로 추정한 이들의 1년 치 미지급 수당은 3000만 원 정도다. 행정소송의 통상적 처분에 따라 소급기한을 5년으로 보면 인천 섬 지역 경찰관에만 45억 원이 지급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특공대와 해안경비대 등까지 포함하면 추가로 경찰에 지급해야 할 수당은 훨씬 커진다. 경찰 내부에서는 응원의 목소리가 잇따른다. 음 경위가 현장활력소에 올린 글에는 50여 개의 댓글이 달려 있다. 이 가운데에는 "누군가가 언제든 꼭 나섰어야 할 일을 앞장서 추진하는 데 대해 감사드린다"는 내용도 있다. 그 외 대부분의 댓글이 "응원하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음 경위는 "저도 어느덧 2년여 남은 퇴직 일자만 바라보는 시간이 됐는데, 동료와 후배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지 늘 고민이었다"며 "마침내 무언가 전해줄 수 있는 게 생긴 듯해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이 소송이 분명히 승소해서 우리 경찰도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정상화의 길을 가게 될 줄 믿고 있다"면서 "전국 동료들의 커다란 응원과 지지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