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 추세 증시 하락 요인…수출 경쟁력 강화 기대도 중국 저가 공세로 난망
‘강달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 물가 압력과 대외채무 부담을 높인다. 수출이 주력인 우리 경제에는 수요 위축 요인이다. 수출이 부진하면 무역수지가 악화돼 원화가치에 부정적이다. 반전 모멘텀이 없다면 신흥국 경제가 상당 기간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4월 16일 달러당 원화가치가 장중 1400원을 돌파했다. 미국이 가파르게 기준금리를 올리던 2022년 11월 이후 17개월 만이다. 2022년 2월말 1200원이던 환율은 미국의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같은 해 10월 1444원까지 올랐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긴축을 멈추면서 환율은 2023년 2월 다시 1200원 초반까지 낮아졌지만 금리 인하 시점이 모호해지면서 줄곧 1250~1350원 범위 내에서 움직였다.
환율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지난 3월 하순이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연내에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달러화 강세가 재개됐고 원화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문제는 원화가치 하락폭이다. 올해 들어 4월 17일까지 하락폭은 7.5%로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크다. 일본 엔화의 낙폭(9.6%)이 더 크지만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어 기준금리를 올린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환율 상승은 주가 하락 요인이다. 통화가치 하락폭이 크면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차손이 발생한다. 가치 하락이 계속된다면 주식이나 채권을 사기 어렵다. 과거 기록을 봐도 환율이 급등하면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면서 주가가 하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환율이 1500원을 넘으면서 1900을 넘던 코스피는 1000선까지 밀렸었다. 환율이 1400원을 넘었던 2022년 2월 이후 그 해 10월까지 코스피는 2700에서 2150선까지 20% 넘게 폭락했다. 올해에도 한국 주식을 사들이던 외국인들은 달러당 원화 가치가 1400원을 돌파한 이후 순매도로 돌아섰다. 3월 하순 2800선에 근접했던 코스피는 4월 들어 연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됐고 4월 17일 2600선까지 무너졌다.
결국 증시의 향방은 환율에 달렸다. 이를 결정하는 것은 달러의 가치와 미국 경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7%로 높였다. 한국(2.3%)보다 높고 G7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준이다. G7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높은 곳이 캐나다인데 1.2%다. 미국 경제가 강할수록 달러 강세 가능성이 커진다.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 통화가치는 약화될 확률이 높아진다.
지난해 12월, 올해 3차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밝혔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최근 인하 시점이 더 늦춰질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달러 강세로 비달러 사용국가들의 환율이 높아지면 국제시장에서 원자재 등을 살 때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물가가 상승하고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낮추기 어렵게 된다.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이자 부담이 커지고 그만큼 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가계의 소비 여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의 소비가 줄면 우리 수출기업들이 돈을 벌기 어려워진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출제품 가격 경쟁력이 개선되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은 그 효과를 누리기도 어렵다. 최근 중국은 저가 공산품의 수출을 늘리고 있다. 생산능력이 과잉인 중국 기업들 입장에서는 싼값에라도 물건을 수출해야 가동률을 높여 고정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중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치(4.6%)를 뛰어넘는 5.3%를 기록한 것도 이른바 ‘디플레이션(Deflation) 수출’ 덕분이다. 중국산 제품의 품질은 예전보다 크게 나아졌다. 가격과 품질 모두에서 우리 기업들이 중국과 경쟁하기 쉽지 않다.
이는 기업 실적 전망에서도 확인된다. 국내 주요 상장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1년 전과 비교해 50% 넘게 뛰는 것으로 나타났다. 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 가격 안정화로 한국전력이 흑자로 전환된 데다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이 개선된 데 따른 영향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을 제외한 2차전지·석유화학·철강 업종 기업은 부진한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의 간판 기업들의 실적 전망은 ‘제자리 걸음’이다. 실적이 오히려 전년보다 나빠질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설상가상으로 중동 정세 불안에 국제 유가까지 상승세다. 무역수지 압박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무역수지가 악화되면 대외결제 능력이 약화되며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물가는 오르며 외국인 투자는 이탈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일본, 영국, 유럽연합(EU), 캐나다 등은 미국과 무제한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고 있다. 자국 화폐를 달러로 무한대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환율 불안과 함께 고금리가 지속되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가계 부채 등 한국 경제의 곪은 상처들이 터질 가능성도 커진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연구원은 "증시에서 투매 양상이 나오는 등 위험회피 심리가 굉장히 강해졌다"며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으면 그 다음 고점은 1420원과 1450원인데 일단 상단은 1450원까지 열어둬야 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중동 사태에 따라 증시가 오르내릴 수 있지만 미국 중앙은행의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증시가 반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원화 가치 회복이 어렵다면 선택지는 어디일까. 미국 달러 자산이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 달러 자산에서 환차손이 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국내 자산을 보유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달러화 가치가 높아지면 수입물가 부담이 낮아진다. 에너지 자급이 가능한 미국은 중동발 불안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해외기업의 미국 내 제조설비 투자가 잇따르고 안전자산 선호로 달러 자산에 전세계의 자금이 몰리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미국의 주식 기대수익률과 채권 이자율 모두 우리보다 훨씬 높다.
파월 의장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 연기 발언에도 지난 4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증시는 소폭 내리는 데에 그쳤다. 투자자들은 실망보다는 그만큼 미국 경제가 강하다는 확신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같은 달 17일 한국, 대만, 일본 증시가 1~2%대의 낙폭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 연기로 국채 수익률 역시 상승세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기존에 채권을 보유한 이는 평가 손실을 보지만, 새롭게 투자하는 이들에게는 기회일 수 있다. 10년짜리 미국 국채를 지금 사면 매년 4.5%가 넘는 이자를 받을 수 있다. 한국 국채 10년물 이자율 3.6%보다 훨씬 높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