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하 ‘발목’, 부동산 PF 부실 악화…글로벌 경제 여건까지 ‘먹구름’
통계청이 2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3.94(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8%로 낮아졌다가 2월에 3.1%로 올라선 뒤 2개월째 3%대를 이어갔다. 농축수산물이 11.7% 급등하며 전체 물가 오름세를 이끌었다. 기후변화로 작황이 나빴던 데다 복잡한 유통구조로 인한 가격상승 요인도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올해 농산물 작황이 크게 나아지기 전까지는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셈이다.
올해 한국은행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1%다. 3%대 물가상승률이 지속되면 소득증가 폭을 상회하면서 소비를 위축시키게 된다. 최근 30년 동안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밑돈 것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의 -9.1%포인트(p) 이후 2022년과 지난해가 해당된다. 2년 연속 1인당 GDP보다 물가가 더 오른 것인 사상 초유다. 이대로라면 3년 연속도 가능하다. 외환위기 때와 달리 가계부채가 많아 이자 부담까지 커진 점을 감안하면 실제 국내 가구의 가처분소득 감소폭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물가 상승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어려워져 실질소득 감소와 소비 위축을 피하기 어려우면 내수에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가장 약한 고리로 부상한 부동산 PF 부실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의 ‘2023년 12월 말 기준 금융권 부동산PF 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 금융권의 PF 대출 잔액은 135조 6000억 원이다. 전년 대비 5조 3000억 원 늘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과 증권사를 중심으로 만기연장과 추가대출 등으로 연명하는 곳이 많았다는 뜻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여신 여력이 제한적인 저축은행, 상호금융은 부실만 급증했다. 이들 2금융권은 상대적으로 중순위나 후순위 등 불안정한 대출이 많다.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기준 2.7%로 1년 전(1.19%)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다. 특히 증권 13.73%, 저축은행 6.94%, 여신전문사 4.65%, 상호금융 3.12% 등 2금융권이 높다.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시중은행에서도 불안한 조짐이 나타날 정도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2024년 1월 말 국내은행 원화 대출 연체율은 0.45%로 전월 말(0.38%) 대비 0.07%p 상승했다. 전년 동월 말(0.31%)과 비교하면 0.14%p나 치솟았다. 은행 연체율은 2022년 6월 0.2%까지 내려갔다가 이후 계속 상승세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시기를 거치며 대출이 급증했는데 경기부진과 고금리로 연체율만 높아지는 모양새다. 당장 은행 경영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향후 2금융권의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을 높이는 지표다.
나라 밖 사정도 우울하다. 이스라엘의 시리아 이란 영사관 폭격으로 중동정세 불안이 커지면서 국제유가가 5개월래 최고로 올랐다. 그동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도 국제유가가 비교적 안정적 흐름을 보인 것은 이란이 본격적으로 개입하지 않아서다. 이번 이스라엘의 폭격은 이란의 참전을 자극해 중동의 글로벌 원유공급에 차질을 초래할 만한 재료다. 유가 100달러 전망도 다시 등장했다.
원·달러 환율도 1350원을 돌파하며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좋아 기준금리 인하가 지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달러 강세가 이어지고 원화 약세 압력이 높아졌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 상승 부담이 더 높아진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제품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최근에는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디플레이션 늪에 빠진 중국이 초저가로 공산품 수출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도 원화와 같은 약세인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은 도저히 불가능한 수준의 가격의 중국 제품이 세계시장에 쏟아지는 상황이다. 수출이 원활하지 않으면 기업실적이 나아지기 어렵고 이는 가계소득 증가세를 제한하게 된다.
최근 들어 수출 실적이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반도체로 인한 착시 때문이다. 3월 15대 주요 품목 수출액 증가율은 3.1%로 6개월째 증가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는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액이 가격상승으로 35.7%나 급증한 덕분이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자동차, 석유화학, 일반기계 등 주요 품목은 하락세를 보였다.
글로벌 자산가격 흐름이 주춤하다. 코스닥은 900선 아래로 내려섰고 3000선 도달 기대까지 등장했던 코스피는 2700선도 위협받고 있다. 독주하던 미국 증시조차 4월 들어서는 조정을 받은 모양새다.
유럽과 중국 등 주요 수출시장의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유일하게 강한 흐름을 보였던 미국의 경우, 인공지능 특수로 증시는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좀처럼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으면서 다시 국채금리가 다시 오르고 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최근 다시 4.4%대에 근접했다. 지난 2월 3.8%까지 떨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가파른 상승세다. 연준이 3차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지난 연말 이전 수준이다. 10년 국채 금리가 오르면 미국 경제의 양대 아킬레스건인 재정 부담과 상업용 부동산 부실 가능성이 동시에 높아진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올해 27조 달러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 된다. 평균 연 4% 이자율만 잡아도 이자가 1조 달러를 넘는다. 올해 11월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친환경 전환 등에 따른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울 수 있다. 부자 증세도 의회의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공화당의 전통적인 감세정책을 택할 확률이 아주 높다. 기업 이익이 늘어 세수가 늘더라도 고금리가 지속되는 한 미국의 재정은 좀처럼 개선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심지어 재정 문제는 미국뿐만이 아니다. 유럽과 중국도 고령화와 친환경 전환에 따른 사회보장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의 국방비 부담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나라 역시 소비위축과 기업들의 실적 부진에 따른 세수 부족에 국민연금, 건강보험 재정부담까지 겹쳐 나라 살림이 어렵다.
한편 위험자산 투자심리를 가장 잘 반영하는 가상자산(암호화폐) 가격도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비트코인 가격은 미국 증시와 상당히 유사한 흐름을 보여왔다. 3월 말 7만 달러를 넘었던 비트코인 가격은 4월 3일 6만 4000달러선까지 하락했다. 거래량도 눈에 띄게 줄었다. 반감기에 대한 기대가 이미 반영됐고 1년 새 135%나 가격이 급등한 데 따른 차익실현 매물이 나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비트코인 현물 ETF(상장지수펀드) 승인에도 불구하고 이더리움은 현물 ETF 상품이 출시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3월 중순 한때 4000달러를 넘었던 이더리움 가격은 3300달러선까지 밀리며 15% 이상의 조정을 받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