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NPI 홍콩’ 커피빈 손떼며 받은 212억 증발 미스터리…권 형제 “오래 전 끝난 일, 대한방직과도 멀어져”
#홍콩에서 무슨 일이…사건의 발단
권 의원 형제들과 관련한 이번 사건은 홍콩에서 비롯됐다. 귄 의원의 형과 동생은 2012년 2월 현지에서 '(주)TNPI HK(홍콩)'을 세워 카페 사업을 준비했다. TNPI 홍콩은 설립 3개월 만인 그해 5월 15일 카페 프랜차이즈 커피빈의 중국(상하이 제외) 사업권을 인수하고 같은 해 10월에는 홍콩 사업권도 취득했다.
사업이 번창하며 권 의원도 투자에 나섰다. 그는 TNPI 홍콩의 커피빈 사업권 인수 하루 뒤 미성년자였던 두 딸과 함께 이 회사 주식을 '주당 1000원'씩 주고 총 5000만 원어치를 사들였다. 또 권 의원의 처남인 유 아무개 씨도 비슷한 시기에 총 3억 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2012년 8월 특이한 상황이 발생했다. '가비합자조합' '가비2합자조합' '가비3합자조합'이라는 3곳의 투자조합이 주당 3만 8973원, 3만 8929원, 3만 8996원씩 주고 TNPI 홍콩 주식 총 51억 1700만 원 규모를 사들였다. 비슷한 시기 권 의원과 두 딸 및 처남이 투자한 값의 무려 약 39배 가격에 주식을 매입한 셈이다.
물론 TNPI 홍콩은 비상장사라 주가는 회사와 투자자가 합의하기 나름일 수 있지만 이 정도 급등은 흔치 않다. 게다가 특이한 현상은 계속 이어진다. 권 의원은 1년 뒤인 2013년 6월 주중대사에 임명되면서 본인과 딸의 주식을 전부 팔았다. 매도가격은 매입 때 그대로인 총 5000만 원으로 어째서인지 차익 실현을 포기했다.
여기까지는 2022년 5월 권 의원의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일부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문제가 제기됐던 사안이다. 당시 권 의원은 차익을 포기한 이유로 "주중대사로 발령 받으면서 이해충돌 여지가 있어 보였다"며 "그 밖에 TNPI 홍콩의 투자와 관련한 사안은 전혀 모른다"고 밝힌 바 있다.
이해충돌을 선제적으로 피했다면 비판의 소지가 없지만, 권 의원이 이같이 조치한 결과로 그의 형제들은 커다란 이익을 보게 됐다. 3만 8000원대에서 형성된 주식을 1000원에 돌려받은 격이기 때문이다. 세법에 따라 싸게 산 주식은 그 차익분을 증여로 보고 세금을 내야 하는데 권 의원 형제들이 이를 납부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논란은 권 의원과 대한방직의 각별한 관계로 더욱 주목됐다. TNPI 홍콩의 가치를 끌어올린 조합 3곳은 모두 대한방직이 최대주주다. 설범 대한방직 회장과 권 의원은 고교동창으로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설 회장은 2011년 권 의원의 고액후원자 명단에 올랐다. 2017년 배임 등으로 피소됐을 당시에는 권 의원이 속한 법무법인에 사건을 맡기기도 했다.
#검찰, 직접 수사 한다더니 '뭉그적'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대한방직이 TNPI 홍콩에 무리하게 투자해 손실을 입은 데다, 이를 만회하려는 노력마저 외면해 배임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뼈대다. TNPI 홍콩이 대한방직에 줘야 할 배당을 주지 않았거나, 오너일가에 뒷돈 형태로 건넸을 수 있다는 의심도 담겼다.
권 의원이 통일부 장관이던 2022년 8월 서울경찰청이 이 사건을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를 결정해 무혐의로 종결했지만 바로 고소인들이 이의신청을 했다. 고소인 측 로펌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서가 고소인 주장과 경찰의 판단 내용까지 삭제된 채 교부됐다"며 "법이 이 같은 행위를 허용하는지부터 매우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이의신청을 하면 사건은 검찰로 넘어간다. 특이한 부분은 이의신청 시점(2022년 9월) 이후 1년 7개월 지났으나 검찰이 사건을 손에만 쥔 채 별다른 전개는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담당 검사만 두 차례 바뀌었는데 고소인 쪽은 물론 피의자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검찰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그 외에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이의신청 접수 뒤 1∼3개월 사이에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아예 불기소를 내리는 게 일반적이다. 보완수사에서도 불송치가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사실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상황도 이례적이다. 주로 검찰 직접 수사는 불기소에서 기소로 바뀔 여지가 비교적 크거나 특별한 사정으로 수사 속력을 낮추고자 할 때 주로 이뤄진다고 알려졌다.
이번 검찰 수사에서 주로 들여다볼 지점은 2013년부터다. TNPI 홍콩은 대한방직이 만든 조합의 과감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2013년 9월 미국 커피빈 본사로부터 개점 점포수가 부족하다는 등 '자본력 부족'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TNPI 홍콩은 애초 30개 이상의 매장을 내기로 했으나 당시 점포는 2곳에 불과했다고 한다.
단 TNPI 홍콩은 권 의원이 주중대사로 재임하던 2014년 커피빈 본사를 인수한 미래에셋자산운용과 각종 소송 및 협의에 나섰다. 결국 2014년 12월 사업권을 '깔끔히' 포기하는 조건으로 1800만 달러를 받기로 약정했고 2015년 8월 수령했다. 당시 한화 기준으로 약 212억 원이다.
문제는 이 돈의 행방이다. 권 의원의 형제들은 아무 사업도 벌이지 않으면서 지분 투자자인 대한방직에 이 돈을 배당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TNPI 홍콩은 2018년 자본잠식 처리됐고 2021년에 해산등기까지 마쳤다. 와중에 대한방직은 이를 회수하려는 별다른 시도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2017년도 결산에서 TNPI 홍콩에 투자한 돈을 '전액손실'로 기재했다.
#홍콩투자 '전액손실'…오너 딸은 현지 사업가로
고소인들은 TNPI 홍콩의 이 자금이 다른 경로를 통해 대한방직 쪽에 전해졌을 가능성을 검찰이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한테 돈을 받기로 약정한 직후 설 회장 딸의 석연치 않은 행보 때문이다. 대한방직 법인이 막대한 손실을 입은 와중에 설 회장 딸은 홍콩에서 돌연 커피 사업가로 변신했다.
설 회장 딸은 2015년 2월 만 25세에 주당 1달러로 총 4만 달러를 출자해 '울트라베라 홍콩'을 세웠다. 성장 방식은 TNPI 홍콩과 유사했다. 설립 3개월 뒤 설 회장의 80대 노모가 최대주주인 회사가 주당 20달러로 투자해 총 자본 132만 달러(약 15억 원) 회사가 됐다. 설 회장 딸은 이를 토대로 2016년 홍콩에 카페 'Diemme'를 개점했다.
즉, 권 의원 형제들이 돈을 대한방직 법인이 아닌 설 회장 일가에 건넸을 가능성을 들여다 봐달라는 게 수사를 의뢰한 이들의 뜻이다. 실제 설 회장 딸도 TNPI 홍콩과 특수한 관계성이 있다. 2017년 설 전 회장 딸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4년 전 커피빈 지점을 관리하기 위해 홍콩에 처음 왔다"고 밝혔다.
2013년은 TNPI 홍콩이 커피빈 사업권을 독점했던 시기다. 인터뷰가 사실이라면, 대한방직이 거액의 '회사 돈'을 투자한 사업에 설 회장 딸이 참여한 셈이다. 그녀는 대한방직 지분은 물론 아무런 직책도 없었다.
일요신문은 권 의원과 형제들에 연락해 입장을 물었으나 구체적인 대답은 듣지 못했다. 권 의원의 동생은 "오래 전 이미 끝난 사안으로 여러 차례 입장을 밝힌 적 있다"며 "목이 안 좋아 대답을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메시지로 보낸 질의에도 대답을 피했다.
다만 권 의원은 "저와 직접 연관된 일이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받은 자금의 일부를 대한방직에 줬다고 안다"고 전했다. 이어 "제 형제들은 채무상환 등 때문에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해 파산했고 대한방직과도 멀어졌다"며 "대한방직 관련 사안이니 더는 저희가 거론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대한방직은 워낙 오래된 일인 데다 오너 일가의 사안인 탓에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한방직 관계자는 "서울경찰청 수사 당시 조사에 성실하게 임했고, 필요한 모든 자료 등을 제출하였으며 그에 따른 적법한 처분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