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터’ 넓히기…성공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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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송유진 기자 eujin0117@ilyo.co.kr |
얼핏 보기엔 투자자문사나 자산운용사가 뭐가 다를까 싶지만, 차이가 크다. 자문사는 말 그대로 투자에 대한 ‘자문’을 해주는 게 주된 역할이다. 투자자는 자문을 받아 직접 투자를 결정한다. 반면 자산운용사는 투자자에게 자산을 아예 넘겨받아 ‘대신’ 투자를 한다. 자산운용사는 펀드매니저가 투자자들의 자산을 집단적으로 운용하기 때문에 쉬운 말로는 펀드, 법적 용어로는 집합투자업자라고 한다.
투자자문과 펀드 사이에 투자일임이 있는데, 투자를 대신해주는 것은 펀드와 같지만 투자자들의 자산을 한데 묶어 집단적으로 운용하는 게 아니라 투자자별로 각기 따로 운용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투자자별 맞춤형 서비스인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투자자문업, 투자일임업, 집합투자업 인가를 각기 따로 발급하고 있는데,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유명 자산운용사는 거의 모두 투자자문과 투자일임업까지 영위하고 있다. 자문사들이 자산운용사로 바뀐다는 것은 투자자문업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펀드운용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한다는 뜻이다.
자문형랩이 돌풍을 일으키던 2010~2011년 당시 투자자문사들의 가장 큰 고민 중에 하나는 특정 증권사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이었다. 특히 당시 자문형랩 시장의 ‘절대지존’으로 군림하던 삼성증권은 자문사들에게 ‘슈퍼 갑(甲)’의 지위를 누렸다. 거의 모든 종류의 금융기관에서 판매되는 펀드와 달리 투자자문 상품인 랩어카운트는 증권사만의 고유상품이었다. 따라서 증권사 가운데 고액 자산가가 가장 많은 삼성증권이 랩어카운트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익명의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시 웬만한 투자자문사들은 삼성증권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는데, 잘못 보이면 수천억 원, 경우에 따라 조 단위의 자금을 경쟁사로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털어놨다.
결국 특정 기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 사업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산운용업으로의 진출이 필요했던 셈이다. 펀드는 증권사뿐 아니라 은행, 보험사에서도 판매된다.
그러면 수익성은 어떨까? 표면적으로는 자문형랩이 일반 펀드보다 수익성이 좋다. 상품별로 편차는 있지만 주식형 기준으로 펀드수수료는 보통 2% 안팎, 자문형랩 수수료는 3% 미만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자문형랩은 자문수수료에 목표수익률 초과분의 일정 비율을 성과보수로 받는다. 시장수익률을 이길 수만 있다면 펀드보다 더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반대로 시장수익률을 밑돌면 성과보수는 없다. 또 자문형랩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수익이 워낙 높기 때문에 투자성과가 저조하면 자금을 쉽게 회수한다. 번거로운 절차 없이 그저 자문계약만 해지하면 된다. 즉 성과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문형랩은 수익률 변동폭이 크다. 일반 펀드는 펀드 순자산의 10분의 1 이상을 한 종목에 넣지 못한다. 하지만 자문형랩은 이 같은 동일종목 투자한도 제한이 없다. 극단적으로 한 종목에 모두 ‘베팅’을 해도 된다. 대박 아니면 쪽박이다. 한 자문사 관계자는 “상품 자체의 수익은 자문형랩이 많아 보이지만, 전체 관리자산의 규모를 키워 이익의 절대 크기를 늘리기 위해서는 범용투자상품인 펀드시장으로의 진출이 불가피하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금융당국이 사실상 가입자들의 투자금을 한데 묶어 운용하던 자문형랩의 편법적 운용행태에 단속에 나선 것도 변신의 이유다.
초기 자문형랩은 자문사의 투자조언을 가입자별로 차이가 없이 일괄적으로 반영해 법규상 금지된 집합운용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자문사의 투자조언을 가입자별로 차별화하도록 했는데, 이로 인해 자문사의 역할보다는 자문사의 조언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증권사의 역할이 더 커지게 됐다. 이는 자문형랩의 수수료 분배에 있어 자문사가 증권사 대비 점점 더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는 뜻이다.
사모형펀드에 대한 접근도 자문사 변신의 이유 가운데 하나다. 자산운용사는 비슷한 투자목적이나 투자성향을 가진 소수의 투자자들을 모아 사모펀드를 설정할 수 있는데, 공모펀드와 같은 투자제한이 거의 없고, 성과보수까지 받을 수 있다. 증권가의 화두가 되고 있는 헤지펀드도 형태상으로는 사모펀드의 일종이다. 헤지펀드의 장점은 위험관리를 위해 다양한 투자자산과 투자기법을 사용하는 데 있다. 주식과 채권 외에 파생상품에 대해서도 투자할 수 있고, 매매뿐 아니라 공매도 등의 기법도 사용할 수 있다. 투자역량의 총집결체인 셈이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사모펀드는 향후 자본시장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현재 자문사의 규모와 운용역량으로 사모펀드 시장에서 자산운용사와의 경쟁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규모와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외형 확장이 쉬운 자산운용사를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다양한 이유로 자문사의 자산운용사 전환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기존 자산운용사들마저도 중·소형사들의 경우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고, 예전처럼 공모펀드에 대한 투자자들의 열기도 뜨겁지 않다.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업계를 떠난 한 전직 자산운용사 대표는 “금융위기로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자산운용 산업의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다. 자산운용사마다 천편일률적인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다 보니 결국 경쟁만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 향후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규제는 점점 강해지고 있어 자산운용업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고 지적했다.
물론 대부분 스타 펀드매니저 출신인 자문사 대표들은 새로운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한다. 실제 자문사 출신 자산운용사 가운데 가장 성공한 트러스톤자산운용이 롤 모델. 트러스톤은 IMM투자자문 시절 연기금 자금을 중심으로 성과를 인정받았고, 자산운용사 전환 후에도 독특한 투자전략과 틈새 상품전략으로 불과 4년여 만에 주식형펀드 시장의 강자로 발돋움 했다. 특히 헤지펀드 스타일의 공모형 펀드는 타 운용사 대비 탁월한 성과를 자랑할 정도다.
한 증권사 투자상품담당 임원은 “자산운용사는 자문사보다 규모가 더 커지기 마련이고, 이전처럼 한두 가지 투자스타일로는 다양한 고객 니즈(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며 “스타 매니저 출신의 자문사 대표들이 자신의 색깔은 살리되 새로운 운용 역량도 키워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 의한 자산관리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어야만 투자자들의 낙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