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소학교 등 들어서며 파괴…시민 건의로 복원사업 시작해 35년 만에 마무리
화성행궁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부 읍치 자리(화성시 융릉)로 이장하고, 신읍치를 팔달산 기슭으로 옮기면서 1789년 건립됐다. 평상시에는 관청으로 사용하다가 임금이 수원에 행차할 때 임금과 수행 관원들이 머무는 궁실로 이용됐다.
그러나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되거나 훼손됐다. 1905년 우화관에 수원공립소학교가 들어서면서 파괴되기 시작했다. 1911년 중심 건물인 봉수당이 자혜의원으로, 낙남헌이 수원군청으로, 북군영이 경찰서로 사용됐다. 1923년 일제가 화성행궁 일부를 허물고 경기도립병원을 신축하면서 화성행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급기야 1989년 경기도립병원(현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부지에 현대식 건물로 신축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됐다. 그러자 시민들이 화성행궁 복원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당시 수원문화원장이었던 심재덕 전 수원시장, 서지학자 사운 이종학 선생 등 42명으로 구성된 수원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가 경기도지사를 만나 화성행궁 복원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경기도립병원 이전을 건의했다. 경기도지사가 건의를 받아들이면서 35년에 걸친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수원시는 우선 경기도립병원을 철거하고 화성행궁 1단계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화성행궁의 중심 건물인 봉수당을 시작으로 482칸을 복원하는 등 2002년 1단계 복원사업을 완료했다. 2003년 10월 화성행궁 개관식을 열고 중심 건축물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이어 우화관, 별주 등 목조 및 부대시설을 복원하는 화성행궁 2단계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2013년 우화관 자리에 있던 신풍초등학교가 이전하고, 2016년 신풍초등학교 분교장이 폐지된 후 본격적으로 복원사업을 시작해 우화관과 낙남헌 동행각, 별주를 복원했다.
우화관은 1789년 가장 먼저 건립된 건물로 원래 이름은 팔달관이었지만 1795년 정조대왕의 명령으로 우화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임금을 상징하는 '전'이라는 글자를 새긴 나무패를 모신 객사로 임금과 수행 관원들이 머무는 곳이다. 수원시는 2016~2019년 발굴 조사에 나서 우화관 건물터를 찾아 냈고, 2020~2021년 화성성역의궤와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고증해 복원설계를 완성했다.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2017년 7월 복원공사를 시작해 2023년 준공했다.
낙남헌 동행각은 낙남헌과 우화관의 경계를 이루는 행각이다. 1794년 처음 지어졌으며, 우화관 담장과 연결된 11칸은 행궁과 화성을 지키는 별무사와 수첩군관의 숙소로 사용됐다. 별주는 임금이 행차할 때 음식을 준비하고, 임금이 머물 때 대전할 음식의 예법을 기록한 문서를 보관하는 장소다.
수원시 관계자는 "화성행궁처럼 다양한 역사와 기능이 있는 행궁은 어디에도 없다"며 "이번 복원사업으로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화성행궁의 온전한 모습을 회복해 화성행궁만의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손시권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