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다쳐야 한다면… 넘버2?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
여론을 달궈온 이 회장 소환 문제는 이제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이제 정·관·재계의 호사가들은 이번 사건의 마무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벌 총수 관련 사건 때마다 처벌받는 사람과 처벌받지 않는 사람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는 한편 특혜시비 논란이 불거졌던 것을 보면 이번 사건의 마무리 또한 그다지 간단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검찰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이미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 회장 아들 이재용 상무에게 서면질의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학수 부회장 재소환도 이미 이뤄졌고 이건희 회장 공개소환 또한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정·관·재계 인사들은 이 회장 측과 검찰 간 물밑조율이 이뤄졌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검찰의 몇몇 고위간부는 사석에서 에버랜드 사건에 대해 “이건희 회장 말대로 순리대로 가면 그만”이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당국이 얼마 전 이 회장의 미국 출국에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았던 점이나 이 회장이 미국 현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순리대로 갈 것”이라 말한 점, 해외일정이 장기화될 것이란 일각의 예상을 깨고 이 회장이 조기에 귀국한 점 등이 위의 가설을 뒷받침한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 회장 소환시점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몇몇 법조계 인사들은 “이 회장 소환시점은 오는 12월 혹은 늦어도 내년 1월 중에 이뤄질 것”이라 밝힌다. 12월 소환설은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의 공판 일정과 함수관계를 갖고 있다. 정 회장 구속수감 당시 이 회장에 대해선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는 검찰에 대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 바 있으며 이것이 결국 이 회장 소환을 불러왔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어느새 정·관·재계 인사들 사이에서 ‘정몽구 구속=이건희 소환’ 등식이 각인돼 온 셈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 내부에서도 정 회장 구속사태와 보조를 맞추려면 이 회장은 적어도 소환조사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젊은 검사들이 이 회장 소환을 꾸준히 주장해왔다”고 밝힌다.
법조계에선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정 회장에 대한 1심 구형이 오는 12월 중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회장에 대한 구형 혹은 선고 직후 이 회장을 전격 공개소환해 안으로는 소장파 검사들의 불만을 누르고 밖으로는 형평성 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검찰조직 내부에 깔려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 이학수 부회장 | ||
지난 11월 3일 현대차 비자금 사건 관련 피고인 8명이 전원 보석으로 나온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재판부는 “검찰 주신문을 다 마쳤고 구속기간도 거의 만료돼 피고인들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도 된다고 판단해 보석을 허가했다”고 사유를 밝혔다.
법조계 한 인사는 “피고인들 간 진술 공모가 가능한 상황에서 보석을 허가한 것만 봐도 현대차 사건을 수사당국과 사법부가 어떻게 마무리할지 짐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로비를 담당한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가 뇌물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한편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는 변양호 전 재경부 국장과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 등 주요 피고인들은 혐의를 부인해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까닭에서다. 몇몇 검찰 관계자는 “삼성 사건과 비교 잣대가 돼 온 현대차 사건에 대한 관대한 처분을 통해 향후 이건희 회장에 대한 재판부의 처분 수위 또한 예측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 회장과 삼성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경우 여론이 이를 가만둘 리 만무하다. 검찰이나 재판부 또한 ‘재벌 관련 사건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왔다’는 여론의 부정적 시각을 해소하고 장시간 끌어온 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측면에서 핵심인사에 대한 처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십자가를 짊어지게 될까. 최근 공판과정에서 검찰이 주요 인사들 조사과정에서 나온 진술들을 공개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1월 2일 이원석 주임검사는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송필호 중앙일보 대표, 홍석현 전 주미대사 등의 진술을 토대로 “그룹 비서실로부터 보고를 받는 이건희 회장은 전환사채 배정과정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 밝혔다. 이 검사는 특히 현 전 회장 진술을 근거로 “재무팀이 일련의 과정을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공판 내용만 놓고 보면 재무팀 수장이었던 이학수 부회장의 역할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셈이다.
공판에 앞서 검찰은 지난 11월 1일 이학수 부회장에 대한 재소환 조사가 이뤄졌음을 밝힌 바 있다. 지난 9월 28일 이후 두 번째 소환조사였으며 이날 이 부회장은 10시간 정도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은 이에 대해 “이전에는 삼성의 반응을 듣기 위해 불렀지만 이번엔 검찰이 알고 싶은 것 중심으로 조사했다”고 밝혀 이 부회장 역할에 주목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일부 인사들은 “이 회장 대신 이 부회장이 불구속 기소되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물론 ‘상상력에 근거한 추측일 뿐’이며 검찰이나 재판부에서 이 부회장과 관련한 어떠한 언급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검찰과 이건희 회장, 그리고 삼성 내 2인자로 평가받는 이학수 부회장 간의 3각관계가 앞으로 더 주목받을 것임은 분명하다. 총수일가 처벌에 대한 부담과 비판적 여론을 동시에 감수해야 하는 검찰, 총수일가 처벌만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할 이 회장, 그리고 삼성 조직과 정보력을 장악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학수 부회장 사이에 어떤 교감과 역학관계가 오가는가에 따라 에버랜드 사건 종지부의 빛깔이 결정될 것이란 관측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