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 출신 ‘시리즈 최강 빌런’ 활약…“장이수 보면서 죽지 않을 만큼만 웃었죠”
“백창기의 첫 등장 시퀀스와 함께 영화가 시작하는데 관객분들이 ‘이 장면만으로 백창기에 대한 설명이 끝났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캐릭터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또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이미 첫 장면부터 구축됐다는 거죠. 사실 촬영 전엔 어떤 대사를 해야 하고 또 칼을 쓸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백창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외형도 평범해지고 대사도 거의 다 걷어냈어요. 표정이나 불필요한 행동도 없어지고 원래 있던 대사 중에서 백창기의 상태를 정확히 전달하는 대사 외엔 모두 빠지게 됐죠. 백창기가 한 방에 사람 둘을 푹푹 찔러 죽이는 그 간결한 모습은 이렇게 만들어진 거예요(웃음).”
김무열이 연기한 백창기는 필리핀 현지에서 불법 도박장을 직접 운영하며 작게는 돈세탁부터 크게는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는 특수부대 용병 출신의 ‘해결사’다. 그의 위에는 한국의 IT 천재로 인정받으면서 동시에 음지에서는 온갖 사기 행각과 초대형 도박판을 운영하며 검은돈을 긁어모으는 투자사 대표 장동철(이동휘 분)이 있다. 얼핏 보기엔 조직의 보스와 행동대장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관계성은 조금 더 복잡하다는 게 김무열의 해석이다. 그는 “백창기가 장동철을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인간으로서, 친구로서 정도 분명히 있는 애증의 관계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창기는 용병 출신이다 보니 약속, 특히 성공 보수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건 창기의 자존심을 건드는 것과도 같죠. 그래서 그런 직업적 특성을 중심으로 장동철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백창기가 과연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동철이가 약속을 어겨도 곧바로 해치우지 않으면서 오히려 부탁을 한 번 더 들어주잖아요? 그 신은 이 둘의 관계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해요. 보시면 백창기가 장동철한테 정말 많이 참고 있거든요. 인간으로서 정이 있었기 때문이겠죠(웃음).”
1편의 장첸, 2편의 강해상, 그리고 3편의 리키-주성철에 이르기까지 범죄가 교묘해질수록 빌런의 존재감도 커지기 마련이다. 이들이 마석도에게 어떻게 대적하는지가 ‘범죄도시’ 시리즈의 주된 관전 포인트다. 김무열 역시 새로운 빌런으로서 어떤 차별점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했다고 귀띔했다.
“전작에서 활약한 빌런들에 대한 부담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데이터도 쌓였다고 생각했어요. 앞선 힌트를 가져가면서 동시에 차별성을 준비하려고 했죠. 이전의 빌런이 악이나 깡, 때론 분노로 행동하는 원동력을 가졌다면 백창기는 그걸 가지면서도 억누르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순간적으로 생존하고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백창기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로 무표정하게 액션을 해야 하는데 저는 저도 모르게 입을 막 이렇게 ‘꽉’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액션 신을 여러 번 다시 갔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새 시리즈가 공개될 때마다 나오는 단골 질문, ‘마동석과의 대결은 어땠는지’도 당연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무열은 이미 2019년 영화 ‘악인전’으로 마동석의 액션 신을 1열에서 직관한 경험자였고, 이번엔 그와 일대일로 붙을 수 있는 행운 아닌 행운까지 거머쥐었으니 그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 터다.
“마지막 액션 신을 촬영할 때 제가 원래 (마)동석이 형을 때리면 안 되는데 때린 거예요. 끝나고 나서 형한테 ‘형 죄송해요, 괜찮아요?’하고 물어봤더니 형은 맞은 줄도 모르고 계시더라고요(웃음). 저는 형을 때릴 때 오히려 제 주먹이 너무 아팠거든요. 창기가 맨주먹으로 싸우다가 칼 비슷한 것을 쥐고 다시 마석도와 맞붙어야 하는데 그걸 쥘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인대를 다친 것처럼 힘이 안 들어가더라니까요(웃음). 그 신 보시면 마석도가 백창기와 그 수하를 막 던지는데 그것도 와이어 없이 실제로 던지신 거예요. 놀이기구 타는 것 같았죠(웃음).”
‘범죄도시4’의 액션을 여전히 마석도가 책임지고 있다면, 코믹함은 온전히 전 조선족 폭력조직 두목 장이수(박지환 분)에게 옮겨졌다. 김무열은 ‘범죄도시4’의 정체성이야말로 마석도와 장이수, 이 두 명의 캐릭터에서 나온다는 데 대중들과 의견을 함께했다. 촬영 현장에서는 아쉽게 장이수와 겹치지 않아 박지환의 연기를 볼 기회가 없었지만, 시사회 때 처음으로 장이수의 활약상을 보며 죽지 않을 만큼 웃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인터뷰 자리에서도 그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마석도의 꾐에 넘어가는 순간에 장이수가 정말 미묘한 표정을 짓잖아요. 여기에 속고 싶지 않은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거짓말이 너무 좋아서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이런 연기를 할 때 배우들은 보통 ‘여기서 웃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박)지환이 형은 안 그래요. 진짜 그 순간에 사로잡혀 연기하는 건데, 저는 정말로 기술시사회 때 그 장면 보고 웃겨서 죽는 줄 알았어요(웃음). 바로 형한테 전화해서 너무 웃겼다고 말해줬죠. ‘범죄도시4’에서 장이수가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캐릭터라는 걸, 단순히 웃기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연기’를 해주는 배우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걸 그 장면을 보고 다시 깨닫게 되더라고요.”
등장하는 빌런과 범죄 양상에 변주를 주고 있긴 하지만 ‘범죄도시’ 시리즈의 틀 자체는 늘 같다. 그러다 보니 천만 관객을 당연스럽게 기대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심드렁한 평도 원 플러스 원처럼 주어지게 된다. 이는 주인공을 맡아 8편까지 변함없이 관객 앞에 서야 하는 주인공 마동석, 한 편에만 등장해 강렬하지만 짧은 존재감을 비춰야 하는 빌런 김무열의 숙명이기도하다. ‘범죄도시’ 속 배우들이라면 작품을 거듭할 때마다 마주해야 하는 이 질문에 김무열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든 평은 애정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매력은 아는 맛이자 검증된 맛이고, 내가 먹어봤는데 맛있는 맛이라는 거죠(웃음). 마석도라는 매력적인 인물이 주는 익숙함이란 게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시리즈를 거듭하다 보면 관객들이 식상해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듣는데 저는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아마 전 4편이 끝이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만(웃음), 장점도 단점도 다 듣고 그걸 힘으로 만들어야 시리즈가 더 오래오래 이어질 수 있는 거겠죠. 4편에서 저에 대한 이미지도 관객분들이 판단해 주실 거라고 믿어요. 사실 백창기같이 나쁜 사람 기억해서 뭐합니까(웃음). 이번 영화에서도 그냥 다른 생각 안 하고 다들 재미있게만 봐주시면 좋겠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