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정수인·기생생물 하이디로 ‘1인 2역’ 서늘한 매력…“시즌2에서 이즈미 신이치와 만날 수 있길”
“저와 함께 출연을 결정하시는 분들이 가장 걱정하셨던 부분 중 하나가 작품 속 캐릭터의 비주얼적 인상이 강렬하다는 거였어요. ‘그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기억돼도 괜찮겠어?’라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그런데 저는 무딘 편이라 그런지 작품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오든 다 재미있거든요(웃음). 이 작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모습을 해보겠어요! 그게 너무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지금도 100% 만족해요. 제가 연기한 하이디도 너무 좋아하고요(웃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일본 만화가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를 원작으로 한다. 일본에서도 애니메이션과 영화화로 큰 인기를 끌었던 이 작품을 토대로 ‘기생수: 더 그레이’는 완전한 오리지널 스토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청층뿐 아니라 원작 팬들의 관심도 집중시켰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인간이라는 종을 잡아먹어 없애야 한다’는 명령 같은 본능을 타고난 기생생물과 특수수사팀 ‘더 그레이’를 꾸려 이들을 막아내려 하는 인간의 생존 전쟁이 ‘기생수: 더 그레이’의 메인 스토리다.
이 작품에서 전소니는 우연한 일로 자신의 몸에 들어온 기생생물 ‘하이디’와 불완전하고 기묘한 공생을 하게 된 정수인 역을 맡았다. 온갖 불행은 다 가진 채 태어나 생에 딱히 미련을 가질 수 없는 인간 정수인과, 인간이라는 종의 천적이면서도 그들에게 기생해야만 살 수 있어 반대로 생존에 집착해야 하는 기생생물 하이디의 1인 2역을 소화해야 한다는 것은 이 작품을 선택하기에 앞서 전소니를 가장 고민하게 만든 지점이었다고 했다.
“사실 1인 2역을 해야 한다는 걸 처음엔 몰랐어요. 그런 한편으론 기대도 들었죠. 저도 원작 ‘기생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이디가 과연 저희 작품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어요. 하이디를 연기하실 성우 분과 어떤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연상호 감독님께서 ‘하이디가 (수인이의) 머리를 먹다가 멈춘 것이니까 소니 씨가 연기하게 될 거야’ 그러시더라고요(웃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두려움이 먼저 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고민을 거듭해 나가다가 수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잘 연기한다면 자연스럽게 하이디와의 모습이 분리돼 보일 거라는 걸 깨닫게 됐죠.”
하이디가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인간과는 다른 종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전소니는 특히 목소리의 톤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높낮이의 차이가 적고 여성의 성대라기엔 너무 낮은 목소리, 다소 딱딱한 문어체 대사가 초반 시청자들의 진입 장벽을 높이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과 전소니의 치밀한 계산 끝에 완성된 설정이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처음엔 하이디의 목소리가 듣기에 불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과하게 친절한 안내용 멘트 톤이라든지, 수인이가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아무 것도 모르는 하이디의 어린아이 같은 부분을 부각시켜서 비주얼적으로 봤을 때 어색하고 불편한 톤이 되도록 한다든지요. 그렇게 몇 가지 생각해서 감독님께 들려드렸더니 감독님께서 ‘기생생물로 등장하는 게 하이디 하나만이 아니니까 기생생물의 공통적인 톤을 가져가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주셨어요. 그렇게 마지막에 정리된 톤이 바로 그거였죠(웃음).”
외모와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면 그다음 넘어야 할 언덕은 ‘액션’이었다. 인간의 머리를 먹어 치운 뒤 그 자리를 채우는 기생생물의 특성상 전투 액션 신은 등장인물들의 목 윗부분 움직임에 고정될 수밖에 없었다. 촬영 현장에서 다들 열연을 펼쳤지만 아무래도 ‘상모돌리기’가 자꾸 떠오르는 건 불가항력이었다고. 특히 목 위가 아니라 얼굴의 반쪽이 하이디에게 먹힌 상태인 수인의 경우는 그 반쪽 얼굴이 액션의 중심이 돼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부끄러운’ 현장이었다는 게 전소니의 이야기다. 전소니는 “액션 연기 때 너무 크게 부끄러워하다 보니까 오히려 그 감정이 금방 사라진 것 같기도 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 번 대차게 찍고 나니까 그다음부턴 재미있어지더라고요. 저와 같이 부끄러워하시던 액션 배우님들도 나중엔 누가 더 잘하나 경쟁하면서 하게 됐고요(웃음). 연기 자체가 어렵다기보단 이 신이 나중에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어려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나의 연기와 CG가 하나가 됐을 때의 결과물이 어떨지 두렵기도 했는데 그것도 부끄러움처럼 크게 왔다가 금방 지워졌고 나중엔 오히려 궁금해지고 기대까지 되더라고요(웃음).”
그런 수인과 하이디를 만들어나갈 때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것은 현장에서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 배우 구교환이었다. 수인의 조력자이면서 기생생물인 하이디와 그의 연결고리가 돼 주는 설강우 역을 맡은 그는 작품 안팎으로 전소니에게 많은 용기를 주는 사람이었다고. 특히 현장에서 적재적소에 툭툭 던지는 그의 애드리브를 직접 경험한 입장으로, 전소니는 “구교환 선배님께 정말 지고 싶지 않더라”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친구들이 보면서 교환 선배님의 어디가 진짜 대사고 어디는 애드리브인지 전혀 눈치를 못 챘대요(웃음). 선배님은 성공할 수 있는 애드리브를 언제 써야 할지 알고 계시고, 또 주저하지 않고 많은 시도를 해 나가는 대담함을 갖춘 분이세요. 저도 이번 작품을 하면서 그런 부분을 많이 배웠죠. 그런데 촬영이 시작됐을 때 애드리브를 치시면 제가 웃을 수 없잖아요(웃음). 저 역시 거기선 수인으로서 할 수 있는 (애드리브) 대답을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선배님이 애드리브를 치셨을 때 컷 되지 않게 버텨야겠다는 생각에 ‘선배님께 지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 같아요(웃음).”
한편으로 공개 첫 주에 넷플릭스 시청 순위 비영어권 1위, 영어권 2위를 차지하며 국내외 평론가는 물론 원작자인 이와아키 히토시로부터도 극찬을 받아낸 ‘기생수: 더 그레이’는 특히 결말에서 원작의 주인공 이즈미 신이치(스다 마사키 분)가 등장해 원작 팬들을 열광시켰다. 시즌2로 향하는 열린 결말로 끝난 만큼 원작 만화의 주인공과 ‘기생수: 더 그레이’의 주역들이 함께 힘을 모아 기생생물에게 대적한다는, ‘기생수: 올스타전’도 기대해볼 법하지 않을까.
“대본에 적힌 마지막 화에는 그냥 신이치의 이름이 등장하고 그가 오른손을 보여주며 끝나는데 원작을 본 저는 그것만으로도 너무 짜릿했어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지(웃음)?’ 그랬는데 스다 마사키 배우님이 직접 등장한다는 걸 알고 시청자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더욱 기대가 되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이 작품이 엄청 잘 되면 시즌2를 만들 수도 있을 거라고 말씀하시긴 했는데요(웃음), 만일 이대로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제가 제일 기대하는 것도 수인이가 신이치를 만날 수 있을지예요. 저는 본편에서 신이치와 오른쪽이(신이치의 기생수)를 만난 적이 없는데 시즌2에선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정말 기대돼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