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3대표 아시아 8강 머무르며 황선홍 감독 앞길 먹구름…일각 “감독 선임 절차부터 잘못돼” 지적
올림픽 본선 연속 진출 기록은 대한축구협회가 자랑하는 것 중 하나였다. 한국축구는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대회 본선에 진출해왔다. 2016 리우 올림픽까지 8회 연속 진출하며 세계 기록을 세우던 중이었다. 이번 패배로 이 기록 역시 멈췄다.
#충격의 아시아 8강
대표팀의 올림픽 진출을 좌절시킨 상대는 인도네시아였다. 피파랭킹에서 한참 뒤처진 팀이다. 세계 23위 한국에 100계단 이상(인도네시아는 134위) 벌어져 있다. 이들의 마지막 올림픽 참가는 1956 멜버른 올림픽이었다.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중국, 아랍에미리트, 일본을 상대로 3승을 기록해 B조 1위에 오르며 A조 2위 인도네시아를 만났다. 인도네시아는 이번 대회 개최국 카타르에 패했으나 호주와 요르단을 잡아내며 8강에 올랐다. 대표팀은 역대 전적에서 인도네시아를 압도해왔다. A대표팀이 36경기에서 30승 4무 2패를 기록했고 U-23 대표팀 간 전적은 5전 전승이었다.
하지만 이날 경기만큼은 피파랭킹, 역대 전적 등 객관적인 지표가 무색했다. 인도네시아는 경기를 시종일관 주도했다. 특히 전반전에는 일곱 차례 슈팅으로 대표팀 골문을 위협했고 2골을 기록했다. 그사이 기록상 대표팀의 슈팅은 단 1개였다.
후반전에도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공격수들이 더 나은 결정력을 보였다면, 행운의 자책골이 아니었다면, 점수차는 크게 벌어질 수 있는 경기 내용이었다.
대표팀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은 퇴장이었다. 경기가 풀리지 않자 대표팀에서 신경질적인 플레이가 나왔고 결국 추격의 희망으로 지목된 최전방 공격수 이영준이 후반 15분 위험한 반칙으로 퇴장을 당했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3골을 넣는 활약에 쏟아지던 찬사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수적 열세에 놓인 대표팀은 지속적으로 두들겨 맞는 경기를 이어갔다. 겨우 2-2로 동점을 만들긴 했지만 이어진 연장전, 승부차기에서도 반전은 없었고 결국 패배했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이번 경기를 두고 "지켜보면서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보통은 안 좋은 경기력으로 대회를 시작하더라도 경기를 치르면서 나아지기 마련인데 이번 대회는 오히려 점점 하락했다"며 "전술적으로나 선수 개개인 역량이나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단 하나도 없었다. 조별리그 3차전은 의지라도 보였으나 인도네시아를 상대로는 그런 모습도 없었다. 퇴장을 당하면서 매너에서도 졌다"고 꼬집었다.
이번 대회에 걸린 올림픽 본선 직행 티켓은 3장이다. 4위를 차지해도 플레이오프라는 기회가 있지만 8강에서 탈락한 우리나라는 빈손으로 귀국길에 올라야 한다.
#날개 꺾인 황새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달성하지 못한 황선홍 감독은 책임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지도자 생활 이후 꾸준히 K리그 무대에서만 몸담고 있다가 연령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황 감독은 한국 축구사에 남을 만한 큰 오점을 남겼다. 이번 대회를 놓고 준비 과정부터 선수 선발, 기용, 전술까지 비판이 이어진다.
이전까지 황선홍 감독은 내리막길을 걷던 인물이다. 전남 드래곤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 부산 아이파크에서 감독직을 시작했다. FA컵 준우승 등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이후 포항 스틸러스로 자리를 옮겼다. 선수시절을 보낸 포항에서 황 감독은 꽃을 피웠다. K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2회를 달성, '명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내리막이 시작됐다. FC 서울로 자리를 옮겼으나 3년 차 시즌을 치르다 중도 하차했다. 기존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변모한 대전 하나시티즌에서 다시 한 번 기회를 받았으나 원하던 승격을 이루지 못했다. 서울과 대전에서 모두 결과뿐 아니라 지지부진한 경기력이 비판을 받았다.
절치부심한 황 감독은 U-23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첫 무대였던 2022 AFC U-23 아시안컵, 8강에서 일본을 만나 0-3으로 완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이전의 행적까지 더해 비판의 화살이 쏟아졌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로 반등했다. 금메달이 아니면 실패로 여겨지는 대회에서 목표를 달성하며 올림픽까지 기회가 이어졌다.
그렇게 얻은 기회의 결과는 '참사'였다. 연령별 대표팀 사령탑이 황 감독에게 마지막 기회로 여겨졌던 만큼 향후 황 감독은 국내에서 감독 커리어가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금이나마 변명이 될 수 있는 요소는 단 한 가지다. U-23 대표팀은 지난 3월 전력 점검차 서아시아연맹 U-23 챔피언십에 초청팀 자격으로 참가했으나 당시 황 감독은 함께하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의 제안을 받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로 선장을 잃은 A대표팀의 임시 감독직을 수행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축구협회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는 황 감독 본인이다. 올림픽 진출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축구협회 어떤 해결책 내놓을까
40년 만에 올림픽 남자 축구 종목에서 대한민국이 사라진 상황, 많은 시선은 대한축구협회로 쏠린다. 앞서 정해성 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은 황선홍 감독에게 A대표팀 임시 지휘봉을 맡기면서 "실패했을 경우 책임 소재를 묻는다면 전력강화위원장으로서 전적으로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5월 초까지 A대표팀 정식 감독을 선임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축구협회는 올림픽을 월드컵 버금가는 이벤트로 간주한다. 과거 아시안컵을 등한시하고 올림픽 준비에 전력을 집중했던 일도 있다. 한 축구계 인사는 "남자 A대표팀을 제외하면 여자 A대표팀 등 그 어느 팀보다 협회는 올림픽 대표팀을 대우해 준다.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대표팀이 소집되던 시절에는 식사 메뉴부터 달랐다"고 전했다.
이번 U-23 아시안컵 준비를 위해 팀을 소집했던 시기, 여자 A대표팀도 A매치를 치렀다. 협회는 국가대표를 위한 고급 리무진 버스를 U-23 대표팀에 제공했고 여자 선수들은 일반 관광버스를 임대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집 당시 제공된 숙소, 훈련장 등 차이를 두고도 여자 선수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올림픽 대표팀이 천연잔디 구장에서 훈련을 진행하는 동안 여자 대표팀은 인조잔디 구장을 이용했다는 식이다. 이처럼 협회는 U-23 대표팀에 공을 들여왔다.
대회 개최지인 카타르에서 아픈 기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불과 약 3개월 전인 지난 1월, A대표팀은 우승을 목표로 아시안컵에 나섰다 실패를 경험했다.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아시아 대회에서 쓴맛을 본 것이다.
일각에서는 성인 아시안컵과 U-23 아시안컵 실패 원인을 같은 곳에서 찾는다. 축구협회의 감독 선임 절차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A대표팀 수장이었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최종 선택으로 감독직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독으로서 내리막을 걷다 장기간 공백을 가졌으나 정 회장의 비호 아래 대표팀을 맡았다는 것이다.
축구계에서는 황선홍 감독도 유사한 형태로 U-23 지휘봉을 잡은 인물로 통한다. 그가 선임된 시기는 김판곤 전 강화위원장 시절이다. 하지만 파울루 벤투 전 감독과 달리 김 전 위원장의 프로세스에 따라 선임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의 취향대로 '빅네임' 감독이 선택을 받았다는 후문이 이어졌다.
축구협회는 카타르 월드컵 이후 '실축'을 반복하고 있다. 2023년 갑작스런 징계 중인 축구인 사면 발표로 혼란을 초래하는가 하면 자신하던 국제대회 유치에 고배를 마셨다. 2024년 들어서는 연이은 '참사'로 실망감을 안겼다.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가 확정된 26일, 이들은 "축구인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사과문을 공식 발표했다. "오늘과 같은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이들이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