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도 ‘대표작’ 만들어야…팬 사랑 에너지 삼아 열심히 살겠다”
여자축구 A매치에서 은퇴식이 열린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전가을은 "당연히 나도 은퇴식은 처음이고, 관계자분들도 경험이 없지 않나. 킥오프 전에 하려던 소감 발표가 하프타임에 바뀌는 등 혼란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전가을은 선수시절 다부진 플레이 스타일만큼 은퇴식에서도 씩씩한 모습을 보였지만 앞서 많은 은퇴선수가 그랬듯 그 역시 눈물을 참지 못했다.
"부모님도 동행했는데 가는 길에 아버지께서 '울지 마라'고 하시기에 '아우 뭘 울어'라고 했다. 울 일이 없을 줄 알았다(웃음). 은퇴 행사를 하면서 전광판에 영상이 나오는데 그때 코끝이 찡해졌다. 영상을 너무 멋지게 만들어 주셨더라.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아, 내가 저런 것들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울컥했다. 은퇴식 하면서 눈물 흘리시는 선배님들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웃음)."
참석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에겐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던 날이다. "처음 은퇴식 제안이 왔을 땐 속으로 '뭘 은퇴식까지 해'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막상 해보니 마음속에 남아 있던 무언가를 털어내는 느낌이라 좋았다. 10년 넘게 대표팀에서 산전수전 함께했던 '전우'들인 김정미, 조소현, 심서연, 지소연 등과 함께 했기에 더욱 뜻 깊었다. 개인적으론 권하늘, 김도연, 유영아 등 동기들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의 마지막 소속팀이었던 세종 스포츠토토에서도 은퇴식이 열렸다. 전가을은 대표팀과 소속팀 등에서 오랜 시간 함께한 윤덕여 감독의 색다른 모습을 봤다고 전했다. 그는 "가서 인사 드렸더니 한숨과 함께 '왔어?'라고 하시는데, 그런 눈빛은 처음 봤다. 아무래도 섭섭해 하시는 것 같았다"라며 웃었다.
오랫동안 해왔던 선수로서의 축구를 그만두고 새로운 시작을 했으나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여전히 활발하게 활약이 가능한 몸상태이고 많은 또래 선수들이 뛰고 있지만 선수생활에 대한 아쉬움이 남지 않은 듯했다. 그는 "3년 전부터 은퇴에 대해 생각해왔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쉬운 것은 없다. 나는 욕심이 많은 선수다. 내가 가진 100%를 쏟지 못한다면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주변 선배님들은 70~80%로 하더라도 선수생활 오래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신다. 이제는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된다. 그래도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설명했다.
A매치 101경기 38득점은 역대 최다 출전 8위, 최다득점 2위 기록이다. 남자 대표팀으로 범위를 넓혀도 그보다 많은 골을 넣은 이는 지소연(71골) 차범근(58골), 황선홍(50골), 손흥민(46골)뿐이다. 월드컵, 아시안컵, 아시안게임 등 여자 선수로서 나설 수 있는 모든 무대를 경험했다. 전가을은 대표팀 생활 중 월드컵 득점과 2015년 동아시안컵에서 한일전 프리킥 득점을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꼽았다. '축구선수 전가을'을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첫손에 꼽을 장면이다.
"선수생활 중 정해뒀던 몇 가지 굵직한 목표 중 하나가 월드컵이라는 무대다. 꿈에 그리던 무대에 나서 골까지 넣었다. 한일전 골은 그런 기회가 나에게 왔다는 것, 많은 분이 기억해 주신다는 것에서 감사한 골이다. 요즘 들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생각을 해봤는데 연예인들도 '대표작'이 있듯이 축구선수도 '대표골', '대표 경기'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그런 장면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선수생활에 임하면 동기부여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가을은 대표팀 생활 외에 미국, 호주, 영국 등 해외 무대에서도 많은 경험을 했다. 여자 선수의 해외 진출이 흔치 않던 어린 시절에도 그는 마음속으로 목표를 품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은 유럽 쪽도 많이 발전했지만 내가 어릴 때는 여자축구에서 미국이 단연 최고 무대였다. 그래서 어느 팀이라기보다 막연히 미국에 대한 꿈이 있었다. 2016년에 처음 미국에 진출 했는데 더 일찍 나갈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간절했던 목표였기에 미국에서 정말 간절하게 축구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순조로웠던 호주 생활을 빠르게 마친 것도 미국 축구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그는 "멜버른 빅토리에서 한 시즌간 경기력이 좋았다. 시즌 말미로 갈수록 몸 상태가 더 좋아졌다. 멜버른 기후가 나와 잘 맞는 느낌이었다"며 "시즌을 마치고 구단에서 '호주 시민권을 줄 테니 남아 달라' 했는데 마다하고 떠났다. 미국에 가려고(웃음). 결국 미국으로 다시 가지는 못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 호주에 남았어도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영국 무대도 경험했다. 브리스톨 시티에서는 코로나19가 발생해 많은 경기에 뛰지 못했으나 레딩의 부름을 받고 다시 도전했다. 그는 여러 차례 해외에 진출한 이유로 '갈증'을 꼽았다.
"한번 경험을 해본 선수만이 그 갈증을 느낀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가 2016년인데 그때 이미 경기장에 3만 관중이 들어왔다. 아쉽지만 국내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에너지를 받는다. 운동하는 환경도 너무 좋다. 시설이나 시스템이 잘 돼 있다. '이런 것이 프로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집(한국)이 마음은 편하다. 그런데 나는 꼭 마음 편하자고 한국에 돌아오면 또 다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가을은 후배들에게 해외 진출을 적극 권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미 나가 있는 후배들이 많은데 더 많은 선수가 경험을 해봐야 한다"며 "돈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국내보다 많이 받고 나갔지만 남자축구의 중국이나 중동 무대처럼 2~3배 이상 조건은 아니었다. 남들은 돈을 주고서도 유학을 가는데 나는 벌면서 배우러 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WK리그에서도 10년 이상 활약하며 수차례 우승을 경험한 전가을이다. 그는 자신의 경력 중 첫 소속팀 수원시설관리공단(현 수원 FC 위민)에서 첫 우승을 첫손에 꼽았다. "스토리가 있지 않나"라며 "신생팀에 가까운 팀이었다. 직전 시즌에 최하위였는데 당시 일인자였던 현대제철을 누르고 우승했다. 첫 우승이라 더 기억에 남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챔피언 결정전에서 2-1로 이겼는데 내가 두 골을 다 넣어서 지금 말하는 거다"라며 웃었다.
선수로서 그라운드를 떠났지만 여전히 축구와 가까이 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자리를 잡고 축구교실을 열었다. 그는 "내 노하우를 알려주려는 생각으로 열었는데 내가 더 많이 배우는 것 같다. 사회생활은 처음이기에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축구교실이지만 짧은 기간에도 그의 마음가짐은 달라지고 있다. 10년 이상 여자축구 중심에서 활약하던 전가을의 다음 행보에 많은 시선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문의가 많이 온다.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과 상담을 하는데 어떤 학부모님이 '고맙다'는 말을 하더라. 그 분이 여자축구 선수로 살다가 해설위원 활동도 하고 이런 일도 하는 게 어린 선수들에게 꿈이 되고 부모님들께도 방향을 알려주는 길이라고 말해줬다. 사실 나는 아예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는데 어린 친구들이나 부모님들이 축구 쪽 일을 계속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는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전가을은 "나를 지켜보고 있고 좋게 생각해주고 있어 고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아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한 명이라도 나를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덕분에 선수생활 이후로도 겁없이 도전하고 있다. 앞으로 어느 자리에서든 팬분들이 보내주신 에너지를 발판삼아 열심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