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이 허위경력으로 수강생 모아 3억 벌기도…“강사 정보 진위 파악 어려워” 불안감 표출
비용 부담이 큰 반면 정작 과외 강사의 경력이나 전문성을 제대로 확인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이 씨는 “강사가 ‘A항공사 승무원 출신’이라고 광고하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며 “쪽집게식으로 배우고 싶어 (유료)과외를 알아보는 것인데 강사 경력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지난해부터 재개된 항공사 승무원 채용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한항공을 시작으로 올해 1분기 국내 항공사 대부분이 객실 승무원 채용에 나섰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여객 수요 성장으로 항공사들이 항공기와 노선을 확대하면서 채용을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늘어나는 채용에 준비생도 늘면서 이들을 상대로 한 취업과외 광고가 쏟아지고 있다. 포털사이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항공사 채용’ ‘항공사 취업’ ‘승무원 취업’ 등을 검색하면 객실 승무원들이 지도하는 과외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올린 광고에는 ‘외항사(외국 항공사) 근무’ ‘항공사 면접관 출신’ 등 경력 사항이 기재돼 있다. 일부 강사는 특정 항공사의 승무원 유니폼을 입은 사진을 올려 실제 승무원으로 근무한 이력을 어필하고 있다. 준비생들은 이 모든 내용이 사실인지, 허위 내용은 없는지 파악할 경로가 사실상 없다.
현직 승무원들에 따르면 과외광고를 내는 이들 중에는 실제 승무원 근무 경력이 1~2년 수준으로 매우 짧거나 아예 경력이 없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한 중동지역 외항사에 합격한 객실승무원 A 씨(20대)는 “대학교 항공학과만 졸업한 뒤 승무원 취업 과외를 하는 사람도 있다”며 “준비생들에게 강사의 경력증명서를 보여주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객실승무원 학원강사는 “대한항공에서 근무한 경력이 총 2년밖에 안 되는 한 승무원이 ‘대한항공 출신’이라고 홍보하며 과외 학생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고작) 2년 근무 경력으로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나”라며 “학생들 입장에선 비싼 돈 주고 신입 승무원에게 자기소개서부터 최종면접까지 모든 준비를 맡기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준비생들은 과외강사들이 자신의 지도 전문성을 부각하기 위해 광고에 싣는 ‘합격자 수’ 정보도 믿기 어렵다고 말한다. 강사들은 보통 광고에 ‘2017~2023 국내 항공사 합격자 50명 배출’ 식으로 기재하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한 객실승무원 학원강사는 “학원들이 합격생 이름을 정확히 공개하는 방식도 아니고, 단순히 ‘몇 명 합격’이라고만 적는 과외 광고가 많다”며 “과외 광고에서 합격생 수를 허위로 기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과외 광고에 구체적인 교육과정이나 수업시간, 장소, 수강료 등 필수 정보가 빠져 있는 점도 준비생들의 원성을 산다. 이들 정보는 강사 개인에게 직접 문의해야만 알 수 있는데 사실상 이런 방법으로 수강생의 연락을 유도하는 것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과외 광고를 감독할 사회적 장치는 마땅치 않아 준비생들의 피해가 방치되고 있다. 학원은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학원설립·운영자는 강사의 연령·학력·전공과목 및 경력 등에 관한 인적 사항을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게시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강사 이력의 신뢰도가 어느 정도 관리되고 있다. 과외 교습은 이러한 의무 규정이 없다.
이런 점을 악용해 2013년 시중은행 직원이었던 30대 B 씨는 자신이 대한항공 부사무장 출신이며 직원 공채 면접관으로 참여한 이력이 있다고 허위 광고를 해 취업준비생들을 모았다. 과외 수입으로 3억 원을 번 B 씨를 수상히 여긴 한 항공사 승무원의 고발로 사기 행각이 들통 났다.
취업 준비생들은 기본 100 대1 수준인 높은 채용 경쟁률을 뚫기 위해 취업 과외에 기대기 쉽다. 높은 경쟁률은 외항사도 마찬가지로, 지난해 4월 핀란드 국적 항공사 핀에어의 한국인 승무원 2명 채용에 약 400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관련 대학 학과 입시경쟁률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23학년도 대입에서 한서대 항공관광학과는 65.85 대 1, 연성대 항공서비스과는 23.79 대 1, 부천대 항공서비스과는 22.8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들 학과 진학을 위해 승무원 취업 과외를 찾는 중·고등학생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취업준비생 사이에선 승무원 채용 면접 등을 통과하기 위해 과외나 학원 수강이 필수라는 인식이 꽤 퍼져 있다. 주요 면접 질문에 대한 맞춤형 답변을 지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에서 객실승무원으로 일한 김 아무개 씨(30대)는 “서비스 측면에서 각 항공사들이 원하는 답변은 다 비슷한데 항공사가 듣고 싶어할 답변을 과외·학원에서 잘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학원은 단순 지도 수준을 넘어 채용 과정에 실제 개입하는 부분도 있어 준비생들이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 지사를 두지 않은 일부 외항사들은 한국인 승무원 채용 작업을 국내 승무원 학원에 위탁하고 있다. 학원이 먼저 서류평가, 면접평가 등을 통해 지원자 중 일부를 추리면 본사에서 이들 중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전문가들은 항공업계가 스스로 승무원 취업준비생들의 사교육 의존도를 낮춰줄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 대학 항공서비스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사교육 없이 객실승무원이 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라며 “준비생의 직무역량을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파악할 수 있는 채용 과정을 (항공사들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