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의 옷을 벗고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에너지에 눈뜨는 일, 그 일은 자기로 살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과제일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가 “직관을 따라가라”고 했을 때, ‘어떻게’를 묻는 사람은 아직 관념적인 사람이다. 직관의 힘은 운명의 바람이 불 때 두려워 도망가지 않고 두려움까지 마주하며 오롯이 그 바람을 맞고 견디는 데서 온다.
내가 좋아하는 성격 중에 북유럽의 제우스, 오딘이 있다. 오딘은 척박한 땅, 중세 북유럽의 신이었다. 그는 직관이 발달한 전사의 신답게 늑대 두 마리를 데리고 다닌다. 한 마리의 이름은 ‘탐욕’이고, 또 다른 놈의 이름은 ‘굶주림’이다. 탐욕이나 굶주림이나! 늘 배가 고픈 것이다. 이놈들은 피 냄새를 따라 움직인다. 생존이 모든 윤리의 원천이었던 시대의 전사답다.
이 전사의 신이 마법의 신을 거쳐 지혜의 신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성찰해보면 선악을 넘어서지 않고 선악을 이야기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누구보다도 이 선악이 실체 없음을 선포한 철학자는 니체다. 그는 알았던 것이다. 옳고 그름에 집착하는 일은 옳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심하거나 편협한 사람을 만드는 일임을.
나는 지금 선악이 의미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선이라 배우고, 법이 불법이라 규정하는 일을 인간적인 관점, 총체적인 관점으로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의나 공정을 무시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사태를 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음을 알려주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인지 논의해볼 수 있게 한다.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나 조국 대표를 공격하는 포탄으로 ‘범죄 의혹’을 들었다. 그런데 왜 이 전략이 먹히지 않고, 이들이 이끄는 민주진영이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의 말에 시사점이 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범죄 의혹으로 재판을 받는 이재명 대표나 조국 대표보다 ‘정권 심판론’이 크게 작용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지난 대선의 민심의 격차는 0.73%포인트, 그것은 겸양을 바탕으로 협치의 길을 가라는 민심이었는데, 권력을 다 잡은 것처럼 행동한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법치주의의 힘은 통치자의 기분 따라, 이해관계 따라, 법을 운용해서는 안 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법 앞의 평등’을 이야기하는데 그것도 모든 사람을 법의 테두리에 가두는 것이 목적은 아닐 것이다. 다만 함께 사는 세상,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마음을 열고 함께 고민해보자는 관념 체계일 것이다.
법치주의든, 정의와 공정이든 관념 그 자체는 힘이 없다. 그 관념을 본능적 에너지로 소화해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편이 되게 하는, 직관에 힘이 붙은 ‘사람’이 있어야 관념이 힘이 된다. 역설적이게도 자신 안의 본능적 에너지를 깨운 사람만이 그동안 그가 배우고 익힌 관념들에 생명력을 줄 수 있다. 그러면 그 길을 막아설 자가 없다. 그럼 점에서 이번 선거에서 단연 눈에 들어온 인물은 조국이었다.
돌풍이라고 해도 좋을 조국 현상은 조국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외신 기자가 조국에게 물었다. 다음 대선에 나설 것이냐고. 조국의 답이 인상적이다.
“나는 경륜도, 지식도, 자질도 없습니다. 저는 오로지 오늘 하루하루에 집중할 것입니다.”
상대진영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무서운 말이고, 지지자의 관점에서 보면 얼마나 힘 있는 말인가. 그는 자신의 본능적 에너지, 현재에 거하는 힘에 눈을 뜬 것이다. 자기 촉으로 현재를 만져가는 자, 그런 사람이 리더가 되어 앞에 서서 이끌면 “산 자여, 따르라”는 노래가 살아있는 노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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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