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00원 에코백 54만 원에도 되팔리며 인기…한정판인 데다 소셜미디어 유행 영향, ‘과소비’ 비판도
이번 시즌 미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뒤흔든 ‘잇백’은 명품 브랜드의 제품이 아니다. 미국의 대형마트인 ‘트레이더 조’에서 판매하는 2.99달러(약 4000원)짜리 에코백이다. 특별하거나 화려하지도 않은 이 에코백을 사기 위해서 새벽부터 줄을 서거나 오픈런을 하는 등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한 개라도 더 사기 위해서 몸싸움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다. 급기야 품절 대란이 벌어지면서 점점 구하기 힘들어지자 ‘트레이더 조’ 측은 구매 수량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체 평범한 캔버스 재질의 이 에코백이 이렇게 인기인 이유는 뭘까. 뜬금없는 에코백 대란을 지켜본 사람들은 올해 초 불었던 ‘스탠리 텀블러’ 광풍을 떠올리기도 한다. 천가방이나 텀블러 등 특별하지 않은 흔한 물건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LA에 거주하는 타데우스 얀(23)은 일주일 동안 ‘트레이더 조’ 매장을 무려 열두 번 이상 찾았다. 그가 이렇게 문지방이 닳도록 마트를 드나든 이유는 장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요즘 ‘핫템’이라는 ‘트레이더 조’의 미니 토트백을 사기 위해서였다.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등 네 가지 색상을 모두 사기로 결심한 얀은 “이 가방은 작고 귀여운 데다 가격도 저렴하다. 우리 Z세대에게 딱 맞는 제품이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가방을 손에 넣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트 문이 열리기 훨씬 전인 7시 30분부터 줄을 섰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마침내 여덟 번째 도전 끝에 겨우 성공할 수 있었던 그는 “매대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가방을 집어들고 있었다”면서 “나도 살 수 있는 만큼 다 가져왔다”라며 기뻐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네 개를, 그리고 친구를 위해 한 개를 샀다.
캔버스천에 ‘트레이더 조’ 글자가 새겨진 이 미니 토트백은 물병과 몇 가지 잡다한 물건들을 넣을 수 있는 작은 사이즈로, 사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가방이다. 그런데 평범한 이 가방이 현재 ‘이베이’와 같은 중고 사이트에서는 무려 수십 혹은 수백 배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20달러(약 2만 7000원)는 기본이요, 심지어 열 배가 넘는 400달러(약 54만 원)에, 혹은 색깔별로 네 개 세트는 무려 999달러(약 136만 원)에 재판매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왜 이 평범한 가방에 열광하는 걸까. 먼저 ‘저렴한 가격’이다. 최근 몇 년간 무섭게 오른 물가 탓에 식료품 가격은 올랐지만, 그에 비해 ‘트레이더 조’의 토트백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드렉셀대학 ‘로버트 앤 페니 폭스 역사 의상 컬렉션’의 책임자이자 수석 큐레이터인 클레어 사우로는 “많은 사람들이 집세와 식료품 가격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2.99달러짜리 토트백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지갑을 열 수 있다”라면서 “요즘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사치스러운 느낌이 나는 저렴한 물건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가방이 ‘한정판’이라는 점도 소비 심리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지금 아니면 못 산다’라는 조바심과 ‘나만 없다’는 소외감을 느끼기 싫은 사람들이 앞다퉈 매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가방을 구입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지만 쉽게 구하지 못하는 물건을 자신은 갖고 있다는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이에 대해 신시내티대학의 마케팅 교수인 조시 클락슨은 “사람들이 ‘트레이더 조’의 가방을 대하는 일종의 ‘사회적 신호’는 통상적으로는 사치품에 적용되는 것이다. 요컨대 사치품을 살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때문에 이번 현상이 천가방이라는 점은 역설적이다”라고 분석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행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이 가방의 유행에 한몫했다. 이를테면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가 소비에 불을 붙이는 연료가 된 셈이다. 노던일리노이대학교의 마케팅 조교수인 발레리아 페티넨은 “소셜미디어는 특히 젊은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을 포함한 많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소셜미디어를 통한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충동 구매를 하도록 유도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과잉 소비를 하는 경향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보스턴대학 퀘스트롬 경영대학의 임상 부교수인 제이 자고르스키는 “사람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 그럴싸한 물건들을 사재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특히 불확실한 시기에는 미래에 대한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사재기를 더 한다”고 덧붙였다. 가령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한창일 때는 두루마리 화장지와 같은 생활용품을 대량 구매해서 쟁여두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페티넨이 지적한 소셜미디어와 관련된 두 가지 핵심 요소는 첫째, ‘나만 없다’는 두려움이다. 그는 “신제품이나 한정판 제품이 인플루언서, 친구, 지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모습을 온라인에서 보면 긴장감이 유발된다”면서 “이러한 제품을 소유하지 않거나 이러한 트렌드에 편승하지 않으면 외로움과 따돌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긴다”라고 했다.
둘째, 동일한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무리에 속한다는 ‘소속감’이다. 페티넨은 “소비자들은 과장된 제품이나 경험을 하고 그것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함으로써 사회적 지위와 타인에 대한 소속감을 표시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어딘가에 속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과 동일한 것을 갖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초 갑자기 불어 닥쳤던 ‘스탠리 텀블러’ 열풍도 같은 맥락이었다.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서 스타벅스와 협업해서 제작됐던 분홍색과 빨간색의 이 텀블러는 대형 마트인 ‘타깃’에서 49.95달러(약 7만 원)에 판매됐다. 이 제품 역시 한정판이었으며, 출시되자마자 모든 지점에서 동이 나는 등 그야말로 품절 대란이 일어났다. 물건을 구하기 위해 전날 밤부터 텐트를 치고 줄을 섰는가 하면, 중고 시장에서는 무려 여섯 배가 넘는 300달러(약 41만 원)에 재판매되기도 했다.
이른바 ‘스탠리 열풍’은 사실 4~5년 전부터 시작됐다. 특히 여성과 여학생 사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스탠리 텀블러’는 더 이상 평범한 텀블러가 아니었다. 일종의 패션 액세서리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의상이나 매니큐어 색상에 맞춰 텀블러를 바꿔서 들고 인증샷을 찍는 인플루언서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목격됐으며, 텀블러에 장식하는 미니 파우치, 맞춤형 립밤 슬롯까지 구매해서 자랑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알록달록한 수십 개의 스탠리 컵을 한 줄로 늘어놓고 자랑하는 틱톡 영상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6년 처음 출시된 ‘스탠리 퀜처’로도 알려진 이 모델이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남자들의 전유물이자 캠핑족들 사이에서만 인기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변화는 분명 놀라웠다. 이와 관련, 앨라배마대학의 디지털 미디어 조교수인 제시카 매독스는 “스탠리 텀블러는 ‘컬러 드롭’, 즉 희소성을 유도하는 색깔별 한정판 제품을 출시해서 성공했다”라고 말하면서 “기업들은 일부러 제품을 부족하게 만들어서 틱톡과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광고를 한다. 그렇게 소비자들에게 긴박함을 조장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마케팅 덕분에 ‘스탠리’의 매출은 나날이 성장했다. 2020년부터 2021년 사이 ‘스탠리 텀블러’의 판매량은 275% 급증했고, 전체 매출은 2019년 7300만 달러(약 1000억 원)에서 2023년 7억 5000만 달러(약 1조 원) 넘게 급증했다.
하지만 이런 열풍을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재기할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장롱이나 찬장 속에서 먼지만 뽀얗게 쌓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물론이다. 더욱이 천가방이나 텀블러가 지속가능성을 목적으로 제작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친환경 제품이 오히려 과소비를 조장하는 꼴이 되고 만 데 대해 콜로라도주립대학의 디자인 및 상품학과 부교수인 소날리 디디는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는 재사용 가능한 제품을 구입하는 목적을 무색하게 한다”고 비난했다.
어쩌면 천가방이나 텀블러는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음에는 또 다른 제품이 또 다른 과잉소비를 부추길지 모른다. 델라웨어대학 패션의류학과의 정재희 교수는 ‘비즈니스인사이더’에 “실제로 물건은 가지고 있으면 어느 순간 지루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아이템으로 넘어간다”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이런 사이클은 계속될 것이다. 다음 제품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머지않아 곧 알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아메카지’룩 좇아서…일본에도 불고 있는 ‘트레이더 조’ 열풍
‘트레이더 조’ 에코백 열풍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불고 있다. 무엇보다 ‘아메리칸 캐주얼’ 스타일을 뽐내고 싶어하는 젊은층 사이에서 그렇다. 여행 인플루언서인 캘리포니아 출신의 플로르 알파로는 최근 도쿄를 방문한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일본에서는 ‘트레이더 조’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사람을 수없이 많이 볼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일본인들이 특히 이 가방에 꽂힌 이유에 대해 일본계 미국인인 앤서니 야마다는 “일본에서 ‘트레이더 조’ 에코백은 5년 전부터 서서히 유행하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하면서 “일본에는 ‘아메리칸 캐주얼’이라고 불리는 패션 문화가 있다. 특히 아이비리그 패션은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국 패션이다”라고 소개했다. 이런 점에서 ‘트레이더 조’ 가방은 제격이다. 사람들에게 미국에서 유학했거나, 미국에서 살다온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트레이더 조’는 합리적인 가격과 조리하기 쉬운 제품, 다양한 레토르트 식품 때문에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마트다. ‘트레이더 조’ 가방이 미국의 대학생 분위기를 내고 싶어하는 일본 패셔니스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일본에서 ‘트레이더 조’ 가방의 유행을 이끈 이들은 유명인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이었다. 소셜미디어에서 이 가방을 들고 있는 이들의 사진을 본 일반인들이 덩달아 따라하면서 유행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기본 사이즈인 ‘트레이더 조’ 가방의 일본 소매가는 4.99달러(약 6800원)다. 하지만 중고 시장에서는 무려 1000달러(약 136만 원)의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야마다는 “한번은 미니 토트백이 2000엔(약 1만 7000원)에 되팔리는 것도 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