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통 이름 날렸지만 문 정부 시기 연이은 좌천…대표 올라 ‘대세론’ 입증, 윤 대통령과의 관계설정 과제
#꽃길 걸었던 엘리트 검사
한동훈 대표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 부친인 고 한명수 씨는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한국법인 대표를 지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본관인 충북 청주에서 지냈고, 5학년 진학을 앞두고 서울 강남으로 왔다. 이후 현대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배우자인 진은정 씨는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고, 장인은 진형구 전 대전고검 검사장이다.
한 대표는 1992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나이는 만 22세였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공군 제18전투비행단에서 군법무관으로 3년 동안 복무했고, 2001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한 대표는 검사 재직 시 ‘특수통’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한 대표는 2003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로 발령됐다. 이 시기 윤석열 대통령과 처음으로 함께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에서는 최태원 회장을, 현대차 비자금 사건에서는 정몽구 회장을 구속했다. 한 대표는 부산지방검찰청 특수부 수석검사로 일하던 2007년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전군표 국세청장을 구속기소했다.
이후 한 대표는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09년에서 2010년까지 이명박 정부 민정수석실 민정2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일했다. 2013년에는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이 됐다. 이 직책을 거친 검사는 대부분 고위직으로 승진했다. 2015년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세조사부 초대 부장으로 발령됐다. 이 시기 SK건설 입찰 담합 의혹, 신세계 횡령 및 비자금 의혹, 동부그룹 비자금 조성 등을 수사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을 담당하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합류했다. 특검팀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구속하는 큰 성과를 냈다. 한 대표는 재계 1~3위 그룹의 총수를 모두 구속한 경력을 가지게 됐다. 한 대표가 ‘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이유다(관련기사 재계 총수 톱3 구속 이력…국민의힘 ‘소방수’ 한동훈이 걸어온 길).
이처럼 엘리트 코스를 거치고 여러 성과를 낸 한 대표를 자기 사람으로 끌어들이려는 선배 검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한 대표를 포섭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일하게 한 대표가 따랐던 선배 검사는 윤 대통령이었다. 애주가인 윤 대통령과 달리 한 대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한 대표는 술자리에서 탄산음료를 마신다. 윤 대통령은 검사 후배인 한 대표의 이런 모습을 존중했고, 오히려 ‘강단 있다’고까지 했다.
검찰 내부에선 한 대표를 두고 원칙주의자라는 평이 많다. 이 때문에 한 대표와 불편한 관계로 지냈던 선배 검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경선 캠프 관계자는 “(한 대표는) 공사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특히 ‘그게 원칙 아닌가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대단한 원칙주의자다. 검사 (정체성에) 앞서 공공선을 추구한다는 원칙이 있는 것 같다. ‘나라가 더 잘되는 것에 내가 기여하면 좋겠다’는 공적 책임의식이 있다”고 귀띔했다.
#거듭된 좌천
문재인 정부 시절 한 대표는 정부·여당과 충돌했다. 당시 한 대표는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자리에 오르며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문 정부 초대 정무수석을 지낸 전병헌 전 의원을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하려다 문 정부와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일가 수사를 지휘하면서 문 정부와 척을 지게 됐다. 조 대표는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딸 조민 씨 부정 입학, 장학금 부정 지급 의혹 등의 논란에 휩싸였다. 조 대표 일가 수사를 두고 야권과 조 대표 지지자들은 과잉수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조 대표는 임명 35일 만에 사퇴했다.
조 대표 후임으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부임했다. 2020년 1월 한 대표는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로 좌천됐다. 두 달 뒤인 3월에는 ‘검언유착’ 논란에 휘말렸다. 이 사건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한 위원장과 공모해 수감 중이던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의 비위 정보를 제공하라고 강요했다는 의혹이다.
검언유착 논란이 불거진 이후 한 대표는 부산고검 발령 6개월 뒤인 2020년 7월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됐다. 네 달 뒤에는 법무연수원 충청북도 진천 본원으로 다시 옮겼다. 이 시기 서울중앙지검이 검언유착 의혹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과정에서 정진웅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가 한 대표의 스마트폰을 뺏으려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 대표는 정 부장검사를 독직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독직폭행은 공무원이 지위나 직무를 남용해 폭행을 저지른 것을 뜻한다. 2021년 6월 한 대표는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다시 좌천됐다. 1년 6개월 사이 네 번 좌천된 셈이다.
역설적으로 정부와 맞설수록 한 대표 인지도는 크게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데이터랩을 통해 ‘한동훈’이라는 이름의 일일 검색량을 측정한 결과 2020년 6월 25일 검색량이 폭증했다. 이날 추미애 장관이 검언유착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던 한 대표를 직무에서 배제하고 감찰을 지시했다. 이 밖에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2022년 4월 13일과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서 사퇴를 선언한 2024년 4월 11일에 검색량이 급증했다.
한 대표는 검언유착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 2년 만인 2022년 4월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독직폭행 고소 건은 2022년 11월 대법원이 정진웅 검사의 무죄를 확정했다. 이동재 기자는 2023년 1월 해당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채널A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은 지난 1월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한 대표는 2021년 2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윤 총장이나 저나 눈 한번 질끈 감고 조국 수사 덮었다면 계속 꽃길이었을 겁니다. 권력의 속성상 그 수사로 제 검사 경력도 끝날 거라는 거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 하나 덮어 버리는 게 개인이나 검찰의 이익에 맞는, 아주 쉬운 계산 아닌가요. 그렇지만 그냥 할 일이니까 한 겁니다. 직업윤리죠”라고 말했다.
#윤-한 갈등 새로운 분기점 돌입
좌천성 인사를 당한 다음에도 윤 대통령과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2020년 2월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있던 한 대표를 찾아가 격려했다. 2022년 20대 대선에서 당선된 다음에는 한 대표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장관으로 지명된 한 대표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후 한 대표는 인사청문회, 국회 대정부 질의, 국정감사 등에서 민주당 의원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질문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들어 역공을 가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 모습을 보고 한 대표를 지지하는 보수층이 늘었다.
한 대표는 장관 시절 정치적인 메시지를 내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2022년 8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출석 당시 기자들과 만나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에 대해 “깡패가 부패 정치인 뒷배로 주가 조작하고 기업인 행세하면서 서민 괴롭히는 것을 막는 것이 국가의 임무인데 그걸 왜 그렇게 막으려는지 되레 묻고 싶다”고 했다.
2023년 9월 21일에는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이 의원은 잡범이 아니라 중대범죄 혐의자”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같은 달 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유창훈 부장판사)은 이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목소리도 냈다. 한 대표는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에 사과했고, 부산에서 일면식도 없는 30대 남성에게 돌려차기로 폭행을 당한 여성에게 전화로 사과하고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죄질이 무거운 성폭행범이 출소한 다음에도 정부가 이들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형 제시카법 입법을 추진하는 등 존재감을 드러냈다.
2023년 12월 26일 한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했다. 보수층에서는 한 대표가 위기에 빠진 국민의힘을 수습할 구원투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한 달 뒤인 2024년 1월 윤 대통령과의 불화설이 불거졌다. 이른바 윤-한 갈등 1라운드였다.
22대 총선을 이끌었던 한 위원장은 개헌저지선을 간신히 넘긴 108석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한 대표는 참패의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 대표는 대통령실이 제안한 오찬 요청을 거절했다. ‘윤한갈등’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장고 끝에 한 대표는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친윤계는 강하게 비토했지만 한 대표는 대세론을 공고히 다져 나갔다. 한 대표는 7월 23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62.84%의 지지율로 과반 득표에 성공하며 당대표에 당선됐다. 하지만 집권당 수장 자리에 오른 한 대표와 ‘1호 당원’ 윤 대통령 간 관계가 새로운 분기점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