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채 상병 의혹 유감 표명하면서도 특검 거부, 기존 입장 고수…여야 강대강 대치 이어질 듯
윤 대통령은 대국민 메시지에서 “저와 정부부터 바꿀 것은 바꾸고, 국회와 소통과 협업을 적극 늘려가겠다” “저와 정부를 향한 어떤 질책과 꾸짖음도 겸허한 마음으로 더 깊이 새겨듣겠다” “앞으로 3년 저와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더 세심하게 민생을 챙기겠다”는 등 발언을 통해 국민에 몸을 낮췄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중추 국가 외교를 통해 대한민국의 외교 지평을 크게 넓혔다” “핵 기반의 확장 억제력을 토대로 힘에 의한 진정한 평화를 구축했다” “청년들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고용세습도 혁파해왔다” “노동시장도 과감하게 개혁하며 합법적인 노동운동은 적극적으로 보장하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응해 노사 법치주의를 확립해오고 있다” “신한울 3·4호기 원전 건설을 재개하고, 신속한 일감 공급과 금융지원을 통해 무너진 원전 생태계도 복원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의료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등 대통령 취임 이후 ‘성과’라 판단한 국정 결과를 소개했다.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이나 채 상병 특검법, 여당의 총선 참패, 영수회담 비선논란 등 민감한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회견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질문으로 맞닥뜨려야 했다.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윤 대통령은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을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야당이 추진하는 김건희 특검은 반대한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전임 정부에서 수사기관을 동원해 이미 2년 넘도록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 윤 대통령과 가족을 겨냥한 수사를 했음에도 별다른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고도 했다.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는 “국군통수권자로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특검법은 사실상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경찰과 공수처에서 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 등 수사를 진행 중인 만큼 수사 결과를 먼저 지켜보고 ‘봐주기 의혹’ 미진한 점이 있으면, 윤 대통령 본인이 선제적으로 특검 수사를 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 기자회견을 두고 소통 의지 및 진정성을 강조했다. 정희용 수석대변인은 “국민께서 궁금해 할 모든 현안에 대해 대통령의 진솔하고 허심탄회한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며 “서로 간 입장 차가 있는 여러 특검 등의 사안을 두고는 특검의 본질과 취지를 강조하며 진상을 밝히기 위한 엄정하고 공정한 수사와 함께 협조의 뜻을 구했다”고 밝혔다.
야권에서는 이전 담화와 입장이 바뀌지 않은, 하나마나한 기자회견이었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2024년 들어 KBS 설 특별 대담, 의대증원 대국민 담화, 총선 참패 이후 국무회의 모두발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영수회담 등에서 카메라 앞에 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때마다 윤 대통령이 민심과 동떨어진 발언을 해 역풍이 일었다.
야권 관계자는 “기자회견 전 대국민 메시지 내용을 보면 총선 참패 이후 국무회의 모두발언과 내용이 똑같다.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서도 KBS 대담에서 ‘박절하게 대하지 못한 게 아쉽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들은 국정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심판을 내렸는데, 윤 대통령은 자화자찬만 늘어놓고 있다. 기존 입장을 반복할 거면 기자회견은 왜 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이 본인과 주변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 22대 국회에서도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5월 9일 ‘대통령 기자회견에 따른 긴급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지켜봤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며 “국민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몹시 실망스러운 회견이었다”고 평가했다.
박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지난 영수회담에서 국민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민심을 수용하고 변화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며 “모든 행위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윤 대통령 또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는 전면 수용하라”고 압박하면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는 “22대 국회가 시작되면 특검법 재발의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양평 고속도로와 명품백 수수 의혹 관련 부분도 같이 포함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이 기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민주당 한 당선인은 “야당이 압박하는 김건희 여사 문제와 해병대 수사외압 의혹은 윤 대통령에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정도에 따라 대통령 탄핵까지 갈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결국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 막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권의 고민도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비윤으로 분류되는 여권 한 관계자는 “국민적 의혹이 높은 사안에 대해서 대통령이 털어내야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계속 안고 가면서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지율이 높아질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