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차 에레디아 고감도 타율…모범생 맥키넌 구단 문화까지 주도
올 시즌 초반엔 특히 외국인 타자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5월 10일까지 KBO리그 타율 1~3위가 모두 외국인 타자다. 전 구단 외국인 타자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돼 오히려 "전임자들보다 성적이 훨씬 좋은데, 다 잘하니 별로 티가 안 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기복이 심한 롯데 자이언츠 타선에서 꾸준히 중심을 잡는 타격 3위 빅터 레이예스, 홈런왕 레이스에 참전한 요나단 페라자(한화 이글스)와 멜 로하스 주니어(KT 위즈), 지난해 활약을 바탕으로 재계약한 뒤 올해도 준수한 활약을 하고 있는 오스틴 딘(LG)·소크라테스 브리토(KIA 타이거즈)·로니 도슨(키움 히어로즈)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서도 유독 돋보이는 활약으로 화제를 모으는 외국인 타자 '투톱'이 있다. SSG의 기예르모 에레디아(33)와 삼성 라이온즈의 데이비드 맥키넌(30)이다. 시즌 전 포스트시즌 진출 후보로 꼽히지 못했던 두 팀은 '구관' 에레디아와 '신관' 맥키넌의 맹활약을 앞세워 5강 한 자리씩 꿰차고 있다.
#4할까지 바라보는 SSG 에레디아
에레디아는 올해로 KBO리그 2년 차다. 첫 시즌인 지난해 122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3 153안타 12홈런 76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46로 각종 타격 지표에서 수준급 성적을 냈다. 또 리그에서 가장 많은 10개의 보살을 기록하는 등 정상급 수비 능력을 뽐내 지난해 신설된 KBO 수비상 외야수 부문을 초대 수상했다. SSG는 그런 에레디아와 총액 150만 달러(계약금 15만 달러·연봉 115만 달러·옵션 20만 달러)에 망설임 없이 재계약했다.
당시 SSG 관계자는 "에레디아가 체력 저하나 비자 관련 문제, 부상 등으로 시즌 도중 공백이 있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한 시즌을 보내면서 144경기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며 "실력 면에서 에레디아보다 더 나은 타자를 구할 수 없다. 그의 기량을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올해 SSG 지휘봉을 잡은 이숭용 감독도 구단에 에레디아와 재계약을 강력하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교한 콘택트 능력이 강점인 에레디아는 KBO리그 두 번째 시즌인 올해 날개를 더 활짝 폈다. 5월 10일까지 36경기에서 타율 0.391 54안타 6홈런 28타점 25득점 OPS 1.002를 기록 중이다. 타율은 2위와 격차가 큰 압도적인 1위에 올라 있고, OPS 공동 2위·출루율(0.437) 2위·안타 3위·장타율(0.565) 8위·타점 공동 9위·득점 11위로 전방위 활약을 하고 있다. 5월 4일 NC전에서는 3안타 맹타를 휘두르면서 잠시 4할대 타율(0.406)을 찍기도 했다. 올 시즌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가운데 타율 0.370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에레디아가 유일하다.
에레디아가 이런 흐름을 잘 유지한다면, KBO리그 역대 세 번째 외국인 타격왕 탄생도 바라볼 수 있다. 한국을 거쳐 간 여러 외국인 타자 중 타격왕 타이틀을 거머쥔 선수는 2004년 클리프 브룸바(현대 유니콘스)와 2015년 에릭 테임즈(NC)밖에 없다. 에레디아가 9년 만에 테임즈의 뒤를 이으면, KBO리그와 SSG 구단의 외국인 선수 역사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긴다. 이뿐만 아니다. 득점권 타율이 0.500으로 역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 김혜성(키움·0.462), 3위 양의지(두산·0.452)와도 격차가 크다. 에레디아는 "득점권에서 특별히 집중했다기보다 매 타석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했던 노력의 결과"라며 "늘 팀 승리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몸을 낮췄다.
이숭용 SSG 감독은 에레디아의 활약에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에레디아는 영리하고, 노림수가 좋다. 상황에 맞는 배팅을 할 줄 아는 타자고, 수비에서도 여러 차례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며 "정말 잘해주고 있다. 앞으로도 부상 없이 이렇게만 계속 활약해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에레디아의 각오도 이 감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는 무조건 건강하게 한 시즌을 완주하는 것이 목표다. 출전할 때마다 팀 승리에 도움이 되는 게 내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일본에서 온 복덩이 삼성 맥키넌
올 시즌 삼성에 합류한 맥키넌도 에레디아 못지않은 '복덩이'로 통한다. 삼성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3년간 함께하던 외국인 타자 호세 피렐라와 결별하고 새 얼굴 맥키넌과 계약했다. 피렐라와 마찬가지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다 온 맥키넌은 복수의 국내 구단이 영입 후보에 올려 놨던 내야수다. 지난해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127경기에 출전해 타율 0.259 15홈런 50타점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다. 8월 말 허리 통증으로 1군에서 이탈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성적도 가능했다.
특히 홈런 15개 중 하나는 일본에서 유독 화제를 모았다. 올해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12년 총액 3억 2500만 달러에 계약한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지난해 오릭스 버팔로스 유니폼을 입고 164이닝 동안 피홈런 단 2개를 기록했는데, 그중 하나를 맥키넌에게 맞았다. 이래저래 주목받았던 맥키넌은 시즌 종료 후 세이부의 재계약 제안을 뿌리치고 한국행을 택했다. 지난해 세이부에서 9000만 엔을 받았는데, 삼성과는 신입 외국인 선수 몸값 상한선인 100만 달러에 사인했다.
결과적으로 삼성과 맥키넌 모두에게 최고의 선택이 됐다. 맥키넌은 5월 10일까지 타율 0.367 47안타 3홈런 18타점 17득점 OPS 0.940을 기록하고 있다. 에레디아 다음으로 타율이 좋고, 출루율은 0.456으로 10개 구단 타자 중 1위다. 선구안이 원래 좋은 데다 아시아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한국 투수들의 공에 금방 적응했다. 콘택트 능력도 리그 정상급이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일본 투수들이 워낙 좋지 않나. 그걸 경험하고 한국 야구를 접하니 타석에서 확실히 여유가 있다. 일본 생활이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성적만 좋은 게 아니다. 맥키넌은 이종열 삼성 단장에게 저연차 선수 야구용품 지원을 건의할 정도로 팀을 먼저 생각한다. 박 감독은 "기술뿐 아니라 멘탈적인 부분에서도 모범이 되고 있는 선수다. 우리 팀에 젊은 선수들이 많은데, 큰힘을 주고 있다"고 했다. 삼성 간판타자 구자욱도 "맥키넌이 우리 팀 분위기를 살리는 데 일등 공신"이라며 "우리와 어울리기 위해 정말 노력한다. 한국 선수 못지않은 친화력이 있다. 젊은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력도 많이 줘서 고맙다"고 거들었다.
맥키넌은 경기에서 승리한 뒤엔 그날의 최우수선수(MVP)를 자체 선정하고 선수들이 함께 박수를 보내는 문화도 만들었다. 5월 1일 잠실 두산전이 끝난 뒤 이날의 주인공이 됐던 삼성 이성규는 "맥키넌이 분위기를 정말 잘 띄운다. 본인이 못해도 잘한 동료들은 축하해야 한다면서 직접 MVP를 선정해서 '이 선수 덕분에 이겼다'고 소개한다"며 "경기 후에 동료들에게 받는 축하는 또 기분이 다르다. 우리 팀의 좋은 분위기를 대변하는 문화로 자리잡았다"고 귀띔했다.
단점이 없어 보이는 맥키넌에게 부족한 점이 단 하나 있다면, 외국인 타자 치고 홈런 수가 적다는 거다. 그러나 팀에서는 "다른 장점으로 그 부분을 상쇄하고 있다"며 개의치 않는다. 박 감독은 "홈런은 구자욱, 김영웅 등 우리 팀 다른 선수들이 잘 쳐주고 있다. 맥키넌은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안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