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홈런·타점 3개 부문 1위 달려…역대 한 시즌 최다안타 페이스
강백호는 5월 9일 수원 NC 다이노스전에서 올 시즌 두 번째로 4안타 맹타를 휘두르면서 최다 안타 부문 단독 1위(5월 10일 기준)로 올라섰다. 이날까지 올 시즌 KT가 치른 39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했는데, 산술적으로는 214안타까지 가능한 페이스다. KBO리그 역대 단일 시즌 200안타는 2014년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 소속으로 뛰던 서건창(현 KIA 타이거즈)이 기록한 201개가 유일하다. 2015년부터 10구단 체제가 되면서 경기 수가 144게임으로 늘어났지만, 이후에도 한 시즌 200안타를 때려낸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2020년 두산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가 199안타로 시즌을 마쳐 아깝게 대기록을 놓쳤다.
아직 시즌 전체 일정의 27.1%를 소화한 시점이긴 하지만 강백호의 타격 페이스는 이례적으로 좋다. 역대 두 번째 200안타를 넘어 역대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까지 기대해도 좋을 정도다. 5월 6경기에서 타율 0.464(28타수 13안타) 1홈런 6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233을 기록하면서 페이스를 더욱 끌어올렸다. 시즌 전체 성적도 타율 0.343(169타수 58안타) 11홈런 37타점 31득점 10볼넷 35삼진 출루율 0.379 장타율 0.598 OPS 0.977로 엄청나다. 안타·타점 단독 1위에 홈런 공동 1위, 장타율 3위, 득점 4위, OPS 5위, 타율 6위에 올라 있다. 강백호는 데뷔 이후 아직 타격 부문 개인 타이틀을 따낸 적이 없는데, 올 시즌엔 안타·홈런·타점 3개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고교 시절부터 천재적인 타격 재능을 뽐낸 강백호는 2018년 신인 2차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아 KT에 입단했다. 데뷔 첫해부터 고졸 신인 최다 기록인 홈런 29개를 터트리며 신인왕을 받았고, 2019년에는 0.336의 고타율로 이 부문 5위에 올랐다. 2020년에는 3할 타율(0.330)과 20홈런(23개)을 동시에 달성했고, 2021년에는 첫 100타점(102점) 시즌을 보내면서 KT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2020~2021년에 2년 연속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받기도 했다.
다만 지난 2년간 거듭된 부상과 크고 작은 논란 속에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2022년엔 발가락과 햄스트링 부상이 잇달아 찾아와 고생했고, 지난해에도 내복사근을 다친 데다 수비에서 느슨한 플레이를 하다 거센 비난을 받으며 심리적으로도 무너졌다. 2년간 각각 62경기와 71경기 출장에 그쳤다.
강백호는 올해 절치부심해 모두 알던 '그 타자'로 돌아왔다. 건강한 몸으로 시즌을 시작했고, 심리적인 압박감도 훌훌 털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1루와 외야 수비에 큰 부담을 느끼다 올해 포수로 복귀하면서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강철 KT 감독은 "포수를 시작한 뒤로 강백호가 웃고 다니더라. 그렇게 잘 웃는 얼굴은 처음 봤다. 포수로 나가면서 밝아지고, 집중력도 높아졌다"고 흐뭇해 했다.
KBO는 올해부터 기계가 볼과 스트라이크를 가리는 자동 볼판정 시스템(ABS)을 도입했다. 이 여파로 포수 프레이밍의 실용성이 사라지자 백업 포수를 고민하던 이 감독은 과감하게 강백호에게 마스크를 씌우기로 결심했다. 강백호는 지난 3월 31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처음 포수로 기용됐다. 승부가 이미 한화 쪽으로 기운 8회에 테스트 차원에서 처음 포수 마스크를 썼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8경기 타율 0.265(34타수 9안타) 1홈런 6타점 OPS 0.688로 평범한 성적을 내던 참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포수 자리에 앉기 시작한 4월부터 타율 0.363(135타수 49안타) 10홈런 31타점 OPS 1.049로 타격이 확 살아났다. 타고난 강견 덕에 2루 송구 능력이 좋고, 포수로서 캐칭이나 움직임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반대 투구도 척척 잡아내고, 원바운드 공도 안정적으로 블로킹하며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포수로 자리잡았다.
아직 강백호는 지명타자로 나서는 경기가 더 많다. 그러나 KT 주전 포수 장성우와 안방을 나눠 맡으면서 벌써 포수로 10경기(선발 6경기) 58이닝을 수비했다. 실책 2개가 나왔고 도루 저지율도 5.9%(17개 중 1개 저지)에 불과하지만, 강백호는 포수 마스크 덕에 야구의 즐거움을 다시 찾고 새로운 역할에 적응해가고 있다.
더 좋은 점은 팀의 미래였던 강백호가 살아나자 KT도 빠르게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거다. KT는 4월 21일까지 7승18패1무(승률 0.280)로 최하위였는데 이후 13경기에서 10승3패(승률 0.769)를 기록해 이 기간 리그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어느덧 승률도 5할을 향해 다가가면서(0.447·17승21패1무) 순위를 7위까지 끌어올렸다. 강백호의 부활과 KT의 반등이 궤를 같이 하는 모양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