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원석 라인 배제, 이창수 등 친윤 기획 라인 중용…법조계 ‘선 지키는 수사’ 전망
법조계에서는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원석 검찰총장 라인들이 대거 주요 보직에서 배제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특수통 중심으로 서울중앙지검장 등 주요 보직을 꾸려 ‘파헤치는 수사’를 지시했다면, 이번 인사에서는 기획 라인들을 대거 중용해 ‘선을 지키는 수사’를 지시했다는 풀이다.
#송경호 승진했지만 사실상 '좌천'
서울중앙지검장과 지휘를 받는 1~4차장검사는 모두 승진했다.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29기)은 부산고검장으로, 김창진 1차장과 고형곤 4차장(이상 31기)은 각각 검사장으로 승진해 법무연수원 기획부장과 수원고검 차장검사로 임명됐다. 김창친 1차장은 김 여사 명품백 의혹(형사1부)을, 고형곤 4차장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반부패수사2부) 수사를 이끌었다. 또한 박현철 2차장(31기)은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김태은 3차장(31기)은 대검 공공수사부장으로 배치됐다. 하지만 법무연수원은 검찰 내에서 ‘유배지’로 불리는 곳이고, 고검 차장검사도 실권이 없어 선호되는 곳이 아니다.
모두 외견상으론 승진이지만 사실상 좌천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평가다. 특히 송 지검장은 김 여사 명품백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을 지휘하면서 용산과 마찰을 빚은 것으로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이미 연초부터 “5월 중 인사를 통해 송 지검장을 고검장 승진과 함께 부산으로 보낼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던 상황이다.
이번 인사에 정통한 한 검찰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기획통인 김주현 민정수석을 임명하는 과정에서부터 인사를 준비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라며 “언론 예상보다 빠르게 인사가 나온 점이나 5월 10일 임명장을 받고 취임한 직후 주말이 지나자마자 인사를 한 점을 고려하면 ‘장악하겠다’는 시그널을 천명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대신 임명된 이들을 보면 이번 인사의 의미가 정확하게 나온다. 신임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에 임명된 이창수 지검장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맡았을 때 ‘총장의 입’인 대검 대변인을 지내는 등 대표적 ‘친윤’ 인사다. 특히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과의 갈등 과정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 윤석열 당시 총장의 신뢰를 얻었다는 후문이다. 이후 검사장 승진 코스인 성남지청장에 임명돼 성남 FC 후원금 수사를 이끌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기소했고, 전주지검장에 임명된 뒤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채용비리 사건을 지휘했다.
#검찰총장 레임덕 유도했나
이원석 검찰총장 입장에서는 ‘존재감’이 흔들릴 수 있는 인사였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5월 2일 김 여사 의혹 전담수사팀 구성을 지시하면서 “법리에 따라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라”고 강조했다. 이후 “납득할 수 있도록 수사 결과로 보여드리겠다”거나 “임기(9월) 안에 수사를 끝낼 수 있도록 신속하게 진행하겠다”는 취지로 여러 차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총장의 발언이 무색해지게 지검장과 1~4차장검사를 모두 교체한 것은 ‘검찰총장 레임덕’을 유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원석 총장은 5월 14일 출근길에 김건희 여사 수사 관련 차질이 우려된다는 얘기에 대해 “어느 검사장이 오더라도 수사팀과 뜻을 모아서 일체의 다른 고려 없이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원칙대로 수사할 것”이라며 “우리 검사들을, 수사팀을 믿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인사 직전 민정수석·법무부와의 의견 조율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부분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검찰총장의 참모진인 대검 부장은 양석조 반부패부장(29기)과 공모직인 감찰부장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이 물갈이됐다. 임기가 4개월 남은 총장이 새로운 간부들과 손발을 맞추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검찰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기획조정부장에는 전무곤 수원지검 성남지청장(31기)이 임명됐는데 그 역시 윤 대통령과 근무 인연이 깊은 인사다.
기획라인들의 대거 약진이 눈에 띈다는 분석도 함께 나오는 대목이다.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의 경우 전형적인 기획 라인에 해당한다. 서울 대원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 지검장은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파견 근무했고, 부장검사로 승진한 뒤엔 서울동부지검 형사4부장,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 등을 거쳤다. 법무부 국제형사과장과 2020년 9월 윤석열 검찰총장 당시 대검찰청 대변인을 맡았다.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차장과 함께 ‘빅3’로 불리는 법무부 검찰국장에는 송강 인천지검장(29기)이 보직을 받았다. 송강 신임 검찰국장 역시 법무부 법무과 검사, 대구지검·수원지검 2차장 검사, 대구지검 포항지청장,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을 거친 ‘기획, 공안’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통제할 수 없는 특수통’들 대신 ‘예측 가능한 기획통’들을 중용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지점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인사로 모든 것을 얘기한다고 하면서 논란이 없게끔, 모두가 납득 가능하게끔 인사를 하는 것이 검찰에서 그동안 이뤄졌던 인사”라며 “적어도 이번 인사는 검사라면 누구나 기조를 읽을 수 있게끔 하면서 검찰 통제의 키가 누구에게 들어갔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이원석·송경호 반발 가능성은 낮아
일각에서는 이원석 검찰총장이나 송경호 신인 부산고검장의 사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두 사람 모두 외부적으로 발언을 하고 다니기보다는 말을 아끼면서 가는 진중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문제를 키우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인사에 앞서 어느 정도 조율이 된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평소 인품을 봤을 때 이원석 총장이나 송경호 지검장 중 그 누구도 이를 외부에 문제 삼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정권 말이 됐거나 차기 정부가 들어선다면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소환 수사 시도가 무마됐던 이야기가 다시 재점화될 수 있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