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판단 미리 가늠 위한 ‘변호 전략’ 관측…법조계 “재판 지연 시도 미운털, 기각 가능성”
하지만 최근 법원 안팎에서는 ‘보석’을 둘러싼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등장하고 있다. 선고를 앞두고 피고인이 보석을 신청해 재판부의 심증을 떠보려 하는 시도들 때문이다. 재판부가 무죄나 집행유예를 선고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보석을 인용해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선고를 앞두고 보석으로 재판부 판단을 가늠해 보려는 것이다. 최근 1심 선고를 한 달 앞두고 보석을 신청한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 관련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해서도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선고 한 달여 앞두고 보석 신청
이화영 전 부지사는 4월 26일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수원지방법원에 보석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부지사 측은 오랜 기간 구속돼 재판 받아왔고, 쌍방울 실소유주인 김성태 전 회장 등 공범들도 이미 석방돼 재판받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판부에 전달했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가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킨텍스 대표이사를 지내며 쌍방울그룹으로부터 법인카드, 차량을 받아 사용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뇌물)로 2022년 9월 구속했고, 같은 해 10월 재판에 넘겼다. 지금까지 1년 6개월 넘게 진행된 재판 동안 법원은 두 차례 구속영장을 더 발부해 이 전 부지사의 신병을 확보했다.
2023년 4월에는 쌍방울그룹이 경기도 대북사업 비용을 대납하기 위해 외화를 밀반출하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로 이 전 부지사에 대해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10월에는 쌍방울 측에 ‘법인카드 의혹’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한 혐의(증거인멸교사)로 이 전 부지사에 대해 세 번째 구속영장까지 발부했다. 재판부가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이 전 부지사 측은 1심을 맡은 수원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신진우)에 대한 기피 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이 전 부지사 측이 항고와 재항고까지 하면서 재판은 지연됐고, 결국 4월 8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이 전 부지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6월 7일 오후 2시로 선고 기일을 확정한 상황.
그런 가운데 나온 보석 신청이다. 이 전 부지사 측은 △건강 악화로 인한 치료 필요 △무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도주 우려가 없음 등을 보석 청구에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전 부지사 측은 보석청구서에 “구속기간이 1년 7개월을 넘어가면서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피고인은 반복적으로 흑색변을 보고 있고 고혈압, 위염 등 증상이 있다”며 “선고 전에 치료할 기회를 줘 조금이라도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선처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현재 공판이 종결돼 피고인이 더 이상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없고 피고인은 누범이나 상습범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피고인은 명망 있는 정치인으로서 이 사건에 관해 자신의 명예를 걸고 무죄를 다투고 있어 결코 도망할 염려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달라”고 강조했다. 두 번째로 발부된 구속영장의 공소사실인 증거인멸교사 혐의에 대해서도 “공동정범들이 자기 형사 사건의 증거를 인멸한 것을 모의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형사소송법에 따라 무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아직 보석 심문 기일은 지정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법조계에서는 ‘기각 가능성’이 거론된다. 최근 수원지검 수사 과정에서 검찰 수사팀과 김 전 쌍방울 회장 측의 회유가 있었다며 이른바 ‘검찰 영상녹화조사실 술판 의혹’을 제기한 것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구체적인 장소나 시점이 바뀌고, 주장한 내용이 검찰 해명과 달랐던 점 등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이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부지사 측은 “변호인 해임 등 일련의 과정은 재판 지연 시도, 사법 방해가 아니라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기 위한 정당한 방어권 행사 차원의 대응”이라는 입장이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재판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 곱게 볼 재판부는 없다”며 “이를 유무죄 판단에 반영하지는 않겠지만 재판 일정 진행 과정에서는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혐의 유죄 가능성 거론
자연스럽게 ‘혐의마다 유무죄 판단을 확인해 보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직인 한 고법 부장판사는 “최근 변호사들이 1심이나 2심, 대법원 선고 기일이 잡히면 ‘재판 동안 피고인의 건강이 악화됐다’며 보석을 신청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며 “변호인들의 얘기를 들어 보니 이를 통해 재판부가 혐의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미리 확인해보는 차원에서 ‘밑져야 본전’ 맥락으로 보석을 신청한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한창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 유무죄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보석 신청에 반영되지 않지만 선고일자까지 잡혔을 경우 이미 재판부가 ‘유무죄 판단’과 ‘양형 여부’를 가늠했을 것이기에 이를 노린 보석 신청이라는 것이다.
형사 사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재판이 장기간 지연돼 진행되는 경우 어느 정도 재판부의 판단이 나왔다 싶을 때 확인 차원에서 보석을 신청하는 것도 하나의 변호 전략이 됐다”며 “판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재판 진행 과정에서 피고인이나 증인들에게 질문하는 것을 통해 어느 정도 심증을 추론하는데 이를 선고 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것 중 하나가 보석 신청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특히 대법원의 경우 공개 재판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판단이 나올지 모르는데 무죄로 판단이 바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일부러 보석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판사들 입장에서는 보석 여부 판단을 위한 별도의 심문 기일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현직인 한 수도권 재직 판사는 “보석 심문을 위해 별도의 서류를 확인하고 심문을 하는 것은 다른 사건들에게는 지연의 이유가 될 수 있다”며 “당연히 정당한 보석 신청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보석 신청이 변호사들의 전략적 선택인 경우가 늘어날까 우려가 된다”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