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확인 직후엔 왜 “내 로또다” 안했나
▲ 로또 번호를 고르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이 번 로또 당첨금 분쟁의 주인공은 A 씨(여·61)와 B 씨(61)다. 이 둘은 A 씨 여동생인 C 씨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당시 C 씨와 B 씨는 내연관계였다. B 씨는 2006년부터 중국에서 C 씨와 동거하며 도시락 납품업체를 운영해 왔다. 이 인연으로 2010년 초부터 A 씨 남편은 B 씨의 업체에서 일을 시작했고, A 씨 역시 중국을 자주 오가며 일을 도왔다.
A 씨는 지난 2010년 10월 3일 중국으로 출국하며 충남 천안의 한 로또 판매점에서 3만 원 상당의 로또를 구입했다.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A 씨는 B 씨에게 로또를 건넸고 확인 결과 3장이 4등과 5등에 당첨됐다.
B 씨는 10월 23일 다시 한국에 들어가는 A 씨에게 당첨된 복권을 줬고, A 씨는 6만 원의 당첨금을 돈으로 받는 대신 복권 12장으로 교환했다.
한국에서 일을 마치고 중국에 돌아온 A 씨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12장의 로또를 B 씨에게 줬다. 문제는 12장의 로또 중 하나가 28억 원 상당의 1등에 당첨된 것. A 씨는 B 씨에게 1등 당첨된 로또를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B 씨는 거부했다. 그 때부터 로또 당첨금을 둘러싼 A 씨와 B 씨의 다툼이 시작됐다.
A 씨는 “처음 로또 복권을 살 때 내 돈으로 구입했고 B 씨에게 로또를 건넨 것은 당시 중국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어 B 씨에게 당첨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라고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반면 B 씨는 “한국을 자주 오가는 A 씨에게 내가 복권 구입을 부탁했고 그것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조사 결과 로또는 A 씨의 돈으로 구입한 것이 확인됐다. 이를 근거로 A 씨는 복권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로또 1등 당첨을 알게 된 이후 A 씨와 A 씨 여동생이자 B 씨의 내연녀인 C 씨가 보인 행동은 로또의 소유권자라고 하기엔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다음은 당시의 상황을 양쪽 주장을 통해 재구성해 본 내용이다.
B 씨 사무실에서 B 씨에게 로또 복권을 건넨 A 씨는 당첨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바로 사무실을 나와 자신의 여동생과 대화를 나눈다. 나중에서야 A 씨는 “아차 내 복권 얼마나 맞았나 봐야지”라고 말하며 다시 사무실로 돌아간다.
사무실에서 1등 당첨을 확인한 B 씨는 로또를 자신의 지갑에 넣는다. A 씨는 그 모습을 보고도 바로 로또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돌려달라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들은 함께 시장을 보고 저녁 식사를 하지만 A 씨와 C 씨는 B 씨에게 복권을 돌려달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시종일관 복권의 소유자로서 취했을 법한 태도를 보이지 않아 소유권 주장에 약점을 드러낸다.
반면 B 씨는 적극적인 태도를 띠며 복권의 소유자다운 모습을 보인다. A 씨보다 먼저 나서 소유권을 주장하고 로또 당첨금을 분배해 나눠주겠다는 의사를 표시한다. 복권 당첨 직후 B 씨는 “A 씨에게 1억 원, 당신에게 3억 원을 주겠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A 씨와 C 씨는 B 씨가 제안한 금액이 적다고 거부한다.
11월 B 씨는 그들에게 각각 당첨금 중 4억 원씩을 준다는 내용의 복권에 관한 합의서와 자기 소유의 식당 3개 운영권과 차량 2대를 C 씨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해 C 씨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A 씨가 이미 로또 당첨금에 대해 처분금지가처분 신청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B 씨는 C 씨에게 준 합의서를 다시 빼앗는다.
둘의 갈등이 깊어지자 B 씨는 당첨금 분배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A 씨를 만나 다시 합의서를 작성한다. 그러나 그 조건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던 A 씨는 합의서를 집으로 가져와 찢어버린다.
결국 둘의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은 법정 소송으로 이어졌다. 1심 재판을 맡은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B 씨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고(A 씨)에게 복권을 부탁했다는 피고(B 씨)의 주장을 의심해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원고가 복권 당첨 여부를 직접 확인하지 않았고 당첨 사실을 알고도 즉시 돌려받으려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며 “복권이 원고 소유임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A 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A 씨는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항소했다. 사건을 맡은 대전고등법원 항소심 재판부는 시민 패널을 민사 조정절차에 참여시켜 함께 해법을 제시하는 배심제도인 ‘시민솔루션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지난 7월 시민단체와 자치단체, 대학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14명의 시민 패널이 참석한 가운데 2심이 열렸다. A 씨 측과 B 씨 측의 팽팽한 공방 속에 패널들도 의견이 엇갈렸다. 오랜 토의 끝에 시민 패널들은 “양쪽 주장 모두 허점이 있고, 실제 주인이 누구냐를 가리기가 어렵다”며 당첨금을 50대 50으로 나눠 갖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패널들의 의견을 고려해 대전고법은 지난 21일 28억 원의 당첨금 중 세금을 제한 19억 원에서 A 씨가 4억 9000만 원을, 나머지는 B 씨가 갖도록 하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고 당사자들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복권 당첨금은 귀속 또는 분배 문제가 다른 재산권 이익 다툼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며 “피고가 원고에게 당첨금을 나눠주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점 등을 미뤄 상호 양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