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다 진한 것이 돈?
▲ 멀쩡한 동생을 알코올 중독자로 몰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 재단 이사 자리를 박탈하려던 누나가 구속됐다. 사진은 의학 드라마의 한 장면. |
분당경찰서는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자신의 남동생(49)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킨 혐의로 강 아무개 씨(여·57)와 강 씨의 범행에 가담한 정신병원 사무장 2명 등 3명에 대해 10월 25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강 씨의 범행에 추가적으로 가담한 사무장 2명은 현재 불구속 입건된 상태다.
더군다나 경찰에 따르면 강 씨는 평소 자신의 남동생과 우애가 꽤 좋았다. 때문에 이번 사건이 강 씨 일가에겐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들 남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친누나가 남동생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켰다’는 소식이 세간에 알려지자마자 일약 ‘남동생 킬러’라는 오명을 얻은 강 씨에 대해 누리꾼들의 관심이 사뭇 뜨겁다. ‘자신의 남동생을 인천, 용인 등 전국의 정신병원 5곳에 강제 입원시킨 강 씨야말로 진짜 정신병자가 아니냐’는 게 이들의 주된 반응이다.
강 씨는 경기도에 위치한 유명 공원묘지 재단 부사장으로 평소 업계에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온 이름난 CEO였다. 특히 그가 5~6년 전부터 선친을 대신해 운영해온 이 공원묘지 재단은 약 15만평 부지에 시가 8000억 원에 달하는 ‘알짜배기’ 물건으로 부동산 업계에 알려졌다.
이번에 강 씨에 의해 피해를 입은 그의 남동생 역시 5~6년 전부터 이 재단의 이사를 맡아왔다. 한마디로 남매가 선친의 재단을 함께 운영해온 셈이다.
그러던 지난해 가을 무렵 강 씨는 누나의 부름을 받고 재단 사무실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재단을 함께 운영 중인 누나가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해서 별다른 의심 없이 찾았다가 거대한 체구를 가진 남성 4~5명에 의해 제압당한 채 ‘개처럼’ 끌려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강 씨에겐 씻을 수 없는 ‘악몽’이 시작됐다. 인천, 용인 등 전국에 위치한 정신병원 5곳에 5개월간 강제로 입원당해야만 했다. 병명은 ‘알코올 중독’.
이 사건을 담당한 조천용 분당서 형사팀장은 “피해자 강 씨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이었다. 가해자인 누나 강 씨가 동생이 평소 사업 수완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경영권을 장악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의 지인이라고 밝힌 한 익명의 관계자는 26일 통화에서 “누나 강 씨는 평소 자신이 꿈꿔온 경영 능력을 펼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남동생이 경영에 걸림돌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강 씨의 남동생이 15~20년 전부터 나이트클럽 등 유흥주점 사업으로 돈을 많이 까먹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공원묘지 재단 이사장이었던 친모가 노쇠하자 재단 운영권이 자연스레 강 씨 남매에게 넘어오게 됐다. 재단을 물려받은 누나 강 씨는 기존의 묘지 재단을 국내 최고의 공원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손을 대는 족족 ‘말아먹는’ 남동생의 사업 능력에 의심이 갔다. 자신은 재단 부사장인데 능력도 없는 남동생이 이사라는 사실도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남모르게 감정의 골이 깊어진 찰나 강 씨는 지난해 초 지인으로부터 남동생이 필리핀으로 도박 여행을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 당시 남동생 강 씨는 필리핀에서 10만~20만 원 정도의 가벼운 도박을 재미삼아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누나 강 씨는 경찰조사에서 “당시 남동생이 필리핀을 자꾸 왔다 갔다 하니까 도박 중독에 걸린 줄 알고 오해했다. 가뜩이나 사업을 못하는 남동생인데 도박에까지 손을 대니까 경영권을 분담하는 게 심적으로 크게 부담됐다”고 밝혔다.
부인과 딸이 필리핀에 거주 중인 터라 가족도 만날 겸 필리핀 여행을 몇 차례 떠났던 강 씨는 이 사실이 누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수갑을 채우고 끈으로 묶인 채 낯선 이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 당했을 때 정말 죽고만 싶었다”면서 “주동자가 누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멀쩡한 그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된 데에는 ‘가족동의서’만 있으면 언제든지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는 현행제도의 맹점이 있었다.
강 씨는 바로 이 점을 노리고 남동생의 처와 딸을 설득해 자기편으로 만든 후 가족동의안을 받아내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동안 강 씨의 올케와 딸은 교육 문제로 오랫동안 필리핀에 거주해왔다. 때문에 전적으로 시누이인 강 씨에 의지해 남편 소식을 들어왔다는 것.
누나 강 씨는 수시로 올케에게 전화를 걸어 ‘동생이 알코올 중독이 심해서 걱정이다. 치료할 수 있게 도와 달라’, ‘동생이 동거녀와 살림을 차렸는데 내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다. 이번에 내가 사람 만들어 놓겠다’며 회유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강 씨는 남동생의 ‘동거녀’에 대해 자주 거론하며 남동생 부부를 서로 이간질하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결국 올케로부터 가족동의안을 받아낸 강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정신병원 사무장(40)에게 1억 3000만 원을 건네주고 ‘작업’을 시작했다. 조직폭력배를 매수해 남동생을 어떻게 납치할지 계획을 짜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또한 이 사건에 가담한 사무장들은 강 씨의 남동생을 다른 정신병원 사무장에게 소개시켜주는 한편 전국 각 지역 병원에 차례로 입원시키면서 덜미를 잡히지 않기 위한 추가적인 작업을 했다.
알코올 중독이 아닌 강 씨는 입원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주치의로부터 ‘정상’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강 씨는 퇴원하는 즉시 또 다른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지옥 같은 나날은 계속됐다. 이렇게 약 5개월 간 강 씨가 정신병원을 전전하는 동안 2명의 사무장들이 각각 7000만 원, 3000만 원을 챙겼다.
친누나에 의해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전전할 뻔했던 강 씨는 지난 2월 한 양심 있는 의사에 의해 비로소 햇빛을 볼 수 있게 됐다. 더불어 ‘무서운’ 친 누나의 만행도 일단락됐다.
동생 강 씨를 담당했던 최영훈 정신과 전문의는 “면담을 해보니 정상이었고 입원하게 된 과정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강 씨는 최 전문의의 도움으로 보건소 관계자와 변호사 등을 만나 비로소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게 됐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