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통’ 신임 장인화 회장 의지가 관건…포스코 “시장 상황에 맞게 투자 계획 조정”
포스코가 생산 계획을 축소한 이유는 전기차 업황 악화 때문이다. 이를 업계에서는 전기차 캐즘(Chasm)이라고 설명한다. 캐즘이란 첨단 기술 제품이 소수의 혁신적 성향 소비자들로부터 선택받았다가 대중이 널리 사용하는 단계에 이르기 전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하거나 후퇴하는 현상을 뜻한다. 증권사 연구원들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라고 진단했다.
전기차 캐즘은 2차전지 업계 모두의 악재다. 실제 상당수 2차전지 회사가 투자 계획을 축소했다. 그럼에도 유독 포스코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최근 최고 의사결정권자(회장)가 교체됐기 때문이다. 포스코그룹은 지난 3월 장인화 회장을 신규 선임했다. 장인화 회장은 포스코 철강생산본부장(부사장), 철강부문장(대표이사 사장)을 거친 ‘철강통’이다. 전임 최정우 전 포스코그룹 회장은 경영기획본부에서 주로 일했다. 장 회장은 최 전 회장과 입장이 달라 아직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2차전지에 보수적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이 경쟁력 입증해야"
관건은 장인화 회장이 2차전지 밸류체인 구축에 있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여부다. 재계에 따르면 한 대기업은 올해 들어 2차전지 계열사를 포스코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포스코는 2차전지 사업과 관련한 수직계열화 완성을 위해 해당 기업 인수 검토에 착수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회장이 바뀌는 과정에서 인수합병(M&A) 작업도 중단됐다.
이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전방산업 악화 때문에 투자를 늦추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도 “포스코는 본연의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딜에도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선 것 같다”고 귀띔했다.
포스코그룹 계열사인 포스코퓨처엠은 국내 소재 업체 중 가장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양극재와 음극재, 전구체는 물론 탄소소재 등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포스코퓨처엠 내부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과제는 음극재 국산화다. 음극재는 양극재와 전해질, 분리막과 함께 배터리를 구성하는 4대 소재다. 음극재는 배터리의 안정성과 수명, 충전 성능을 결정한다.
음극재의 글로벌 생산량은 2022년 기준 147만t이다. 이 중 약 96%를 중국 기업이 생산한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코퓨처엠이 완전 국산화에 성공한다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 수혜를 독점할 수 있다. 현재 국내 기업 중 전기차 배터리용 흑연계 음극재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포스코퓨처엠뿐이다. 경쟁사인 엘엔에프는 지난해 음극재 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대구국가산업단지 내 약 56만㎡(17만 평) 토지에 음극재와 양극재 신공장을 2025년까지 설립할 계획이다.
포스코퓨처엠의 문제는 중국산 흑연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조흑연으로 음극재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올해 2분기 중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문제는 제품 완성도가 잘 나올지 여부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초기 수율이나 가동률을 감안하면 당분간 적자가 예상된다”며 “단기 실적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포스코퓨처엠이 인조흑연 상업화에 실패하면 공급처 다변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 외신에 따르면 포스코퓨처엠은 호주 광산 업체 시라리소시스로부터 아프리카 모잠비크 발라마 광산에서 채굴하는 흑연을 공급받기로 했다.
양극재도 ‘생산’에서 ‘질’로 목표를 바꿨다. 생산량 목표치는 낮췄지만 고품질 제품 개발에 중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포스코퓨처엠은 광양공장의 기존 N65 라인을 N86 라인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N65는 니켈 함량 65%, N86은 니켈 함량 86%라는 뜻이다. N65는 대부분 유럽에 수출되고, N86은 미국 GM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법인인 얼티엄셀즈에 팔린다. 포스코퓨처엠은 전기차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에 하이니켈 양극재를 판매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또한 수율이다. N86은 아직 완성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욱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분기 중 광양 1~2단계 라인이 N86으로 전환될 것”이라며 “출하량은 일시적으로 부진했다가 회복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문제는 수익성이다. 수율이 올라와야 출하량과 수익성이 개선되는 구간에 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2차전지 업계 한 관계자는 “인조흑연 음극재나 N86은 올해 눈에 띄는 성적을 보여줘야만 할 것”이라며 “전기차 업황이 주저앉는 상황이기 때문에 올해 포스코퓨처엠이 경쟁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현 경영진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이라는 정반대의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포스코홀딩스 "2차전지 소재는 철강과 함께 양대 축"
사실 포스코는 대규모 투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포스코그룹의 근간인 철강 사업의 고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에프앤가이드는 지난 2월 포스코홀딩스의 2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을 9619억 원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난 5월 20일 기준 예상치는 7311억 원으로 감소했다. 포스코홀딩스의 오는 3분기와 4분기 예상치도 지난 2월에는 각각 1조 1561억 원, 1조 2257억 원이었지만 최근 9785억 원, 1조 780억 원으로 줄었다.
김윤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4월 말 보고서에서 “상품 가격 반등이 나타나고 있으나 이는 지정학적 위기와 러시아산 비철금속 제재 등의 영향이었다”며 “중국 경기 악화와 수급 둔화로 인한 저가 철강재의 수출 위협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 원재료 가격 하락으로 투입원가가 줄고, 자동차 시장 회복으로 판가 인상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포스코가 지난 몇 년간 2차전지 위주로 투자해 철강 사업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보고 있다. 철강회사인 만큼 원재료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만 2차전지와 관련된 리튬과 니켈 등 확보에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포스코는 지난 4월 기업설명회에서 제철소 공정 자동화, 노후설비 전면 재검토 등을 통해 연간 1조 원 이상의 원가를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중장기적으로는 스마트팩토리도 구현한다는 방침이다. 인공지능(AI)이나 로봇을 활용한 제철소 공정 자동화를 구축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와 관련,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2차전지 소재는 철강과 함께 양대 축이라고 장인화 회장이 밝힌 바 있다”면서도 “시장 상황에 맞게 투자 계획을 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