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일하이텍 3대주주 삼성SDI 의식? 배터리 원가 낮아져 투자 줄일 가능성도…SK이노 “협력 추진 변화 없어”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12월 성일하이텍과 폐배터리 금속 재활용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MOU의 주요 내용은 SK이노베이션과 성일하이텍이 2023년 내 합작법인을 설립한다는 것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독자 개발한 수산화리튬 회수 기술과 성일하이텍이 보유한 니켈·코발트·망간 회수 기술을 합작법인을 통해 결합할 계획이었다.
강동수 SK이노베이션 부사장은 MOU 체결 당시 “폐배터리 금속 재활용은 SK이노베이션의 ‘탄소에서 그린으로’ 파이낸셜 스토리 실행 및 친환경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에 있어 핵심이 되는 신규 사업”이라며 “성일하이텍과 협력을 토대로 배터리 원소재를 재활용하는 순환경제 모델을 빠르게 구축하는 한편 차별적인 재활용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규제에도 유연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2024년이 되도록 SK이노베이션과 성일하이텍의 합작법인 설립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고금리 상황 등으로 인해 사업 추진이 연기되고 있다”면서도 “성일하이텍과의 사업 추진은 협력이라는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몇 년간 미래 먹거리로 폐배터리 사업을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회사의 미래가 걸려있는 중요한 사업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7월 ‘SK이노베이션 스토리데이’에서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폐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BMR 추진담당’을 신설했고, 지난해 11월에는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온이 독일 바스프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SK온과 바스프는 향후 폐배터리 재활용 등을 포함한 배터리 밸류체인(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다양한 분야로 협력을 모색할 계획이다.
그러나 성일하이텍과의 합작법인 설립이 지연되면 SK이노베이션의 폐배터리 사업 계획에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대전광역시 환경과학기술원 내에 ‘데모플랜트’를 완공했다. 데모플랜트란 실제 상업 가동 이전에 작은 규모로 설비를 건설한 후 시험운영하는 단계를 뜻한다. SK이노베이션은 이를 토대로 성일하이텍과 2025년 가동을 목표로 국내 첫 상업공장을 건설할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공장은 현재까지도 착공에 들어가지 않아 2025년 가동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SK이노베이션이 주춤하는 동안 경쟁사들은 폐배터리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배터리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뿐 아니라 현대자동차와 포스코도 폐배터리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시장을 선점하지 못하면 향후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일례로 현대자동차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와 기아는 지난해 10월 경상북도, 경북테크노파크, 에코프로, 에바싸이클 등과 ‘배터리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얼라이언스 구축’ MOU를 체결했다. 이들은 시범사업을 통해 폐배터리 재활용의 경제성 및 신규 사업 추진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2022년 8월 폴란드에 2차전지 리사이클링(재활용) 공장 PLSC를 준공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GS에너지와 2차전지 리사이클링 사업 합작법인 ‘포스코GS에코머티리얼즈’를 설립했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포스코GS에코머티리얼즈 설립 당시 “포스코그룹과 GS그룹은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폐배터리 확보는 물론, 2차전지 리사이클링과 관계된 새로운 산업생태계 구축에도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과 성일하이텍의 합작법인 설립이 지연이 경쟁 심화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SDI는 현재 성일하이텍 지분 8.71%를 갖고 있다. 삼성SDI는 이강명 성일하이텍 대표, 이경열 성일하이텍 사장에 이은 성일하이텍 3대주주다. 성일하이텍은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원료를 삼성SDI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협력 중이다. 삼성SDI로서는 경쟁사인 SK이노베이션과 성일하이텍의 협력이 반가운 일은 아니다. 이 때문에 성일하이텍이 삼성SDI를 의식해 SK이노베이션과의 합작법인 설립을 미루고 있다는 뒷말도 나온다.
성일하이텍은 증권가에서 ‘폐배터리 대장주’로 거론된다. 성일하이텍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폐배터리로부터 5대 소재(코발트·니켈·리튬·망간·구리)를 생산하는 곳이다. 성일하이텍은 지난해 1~3분기 매출 2041억 원을 기록하는 등 국내에서 몇 안 되게 폐배터리 관련한 수익을 내는 곳이다. 성일하이텍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 합작법인과 관련해 “여러 내부 사정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오히려 SK이노베이션이 폐배터리 관련 투자를 축소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폐배터리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산업 전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배터리 소재 광물 가격은 하락세에 있다.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은 폐배터리에서 원재료를 확보해 비싼 배터리 원료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배터리 원가가 하락하면 굳이 폐배터리 시장을 찾을 이유가 없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리튬 가격은 지난해 1월 16일 1kg당 447.5위안(약 8만 2600원)에서 올해 1월 15일 86.5위안(약 1만 6000원)으로 1년 사이 80.67% 줄었다. 같은 기간 니켈의 가격은 1톤(t)당 2만 7100달러(약 3600만 원)에서 1만 6200달러(약 2150만 원)로 40.22% 감소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2월 박상규 SK엔무브 사장을 SK이노베이션 신임 총괄사장으로 선임하면서 경영 계획을 새로 세우는 중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과 성일하이텍과의 합작법인 설립 관련한 구체적인 일정도 현재로는 정해진 것이 없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합작법인 설립만 연기됐을 뿐, 협력 추진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폐배터리 사업이 당장 실적을 내는 것도 아니고, 전망도 불투명해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폐배터리 사업은 아직 초기 투자 수준”이라며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투자를 강화하고 있지만 아직은 시장 형성 단계”라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