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세 연하 여성에게 캐릭터 목소리로 사랑 속삭여…폐쇄적 환경 일본 성우업계 몇 년 새 불륜 사건 잇따라
5월 22일 주간문춘은 “성우 후루야 도루가 2019년부터 4년 반가량 불륜 관계에 있었다”고 폭로했다. 충격적인 것은 상대 여성이 37세 연하의 팬이었다는 사실이다.
불륜 관계였던 A 씨는 “2018년 공개된 극장판 ‘명탐정 코난’의 아무로 토오루 역을 계기로 후루야의 팬이 됐다”고 밝혔다. 사무소에 팬레터를 보냈고, 이후 후루야가 A 씨의 개인 번호로 연락을 해오면서 불륜 사이로 발전했다고 한다.
후루야는 A 씨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목소리로 사랑을 나누며 관계를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크게 바뀐 것은 2021년 A 씨가 임신 사실을 알리면서부터다. 후루야는 임신중절을 강요하고 주먹을 휘두르는 등 폭력을 저질렀다.
주간문춘에 의하면 “후루야는 1985년 동료 성우 마지마 사토미와 결혼해 슬하에 딸을 뒀다”고 한다. 딸뻘인 여성과 불륜도 모자라 폭력과 낙태를 종용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인터넷에서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후루야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장문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는 “한 여성 팬과 지난해 9월까지 4년 반이라는 긴 기간 동안 불륜 관계를 가졌다”며 “교제 중 말다툼을 하다 무심코 손을 한 번 올린 적이 있다. 어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최악의 행위였다”고 실토했다.
또 “임신중절을 강요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도 저질렀다. 상대에게 몸과 마음 모두 깊은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임신중절 강요 사실도 인정했다. 이어 그는 “오랜 세월 저를 응원해주신 팬 여러분의 신뢰를 저버리고, 실망시키고, 캐릭터를 더럽힌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제 남은 인생을 걸고 성심성의껏 속죄할 생각이다. 어떠한 제재도 받을 각오가 돼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후루야는 그동안 주로 정의로운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이 때문인지 “충격이 크다”라는 반응이 많다. 40대의 한 팬은 “연기력은 물론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로 믿었던 만큼 실망스럽다”라고 말했고, 30대 팬은 “정의로운 영웅 이미지였는데 불륜에 폭행, 임신중절이라니 배신감이 크다”라고 했다. 20대 대학생은 “무엇보다 캐릭터 대사를 불륜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이 용서가 안 된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돌이켜보면 최근 일본에서는 유명 성우들의 불륜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일례로 2022년에는 ‘귀멸의 칼날’의 토미오카 기유, ‘주술회전’의 게토 스구루 역으로 유명한 성우 사쿠라이 다카히로(49)가 기혼자인 것을 숨기고 복수의 여성과 불륜 관계를 이어온 사실이 알려졌다. 그가 출연하던 라디오 방송 작가는 사쿠라이가 유부남인 것을 모르고 10년 이상 연애를 해왔는데, 당시 충격으로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2021년에는 ‘귀멸의 칼날’ 주제가를 부른 가수 리사(LiSA)의 남편이자 ‘도쿄 리벤저스’의 류구지 켄 역으로 알려진 성우 스즈키 다쓰히사(40)의 불륜 스캔들로 세간이 떠들썩했다. 스즈키는 아내 리사가 부재중인 집에서 불륜을 저질러 네티즌들로부터 맹공격을 받았다.
다만 보도된 것은 빙산의 일각이란 주장도 있다. 일본 성우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륜만이 아니라 성희롱도 빈번하다”라며 업계 실태를 고발했다.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는 배경으로는 폐쇄적인 환경이 꼽힌다. 관계자는 “일본 성우 업계는 화려한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오디션과 레코딩 스튜디오, 집을 반복하는 일상이라 좌절감이 쌓이기 쉬운 환경이다. 여기에 소위 옛날 영화업계처럼 연기지도 등을 명목으로 젊은 여성 성우를 사적으로 불러내는 경우도 있다”라고 밝혔다.
동시에 “약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한다. 베테랑 성우나 작품 캐스팅권을 가진 윗선은 절대적인 발언력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어 이들의 지나친 행위를 거부하거나 잘못을 문제 삼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 관계자는 “일본 성우업계가 전체적으로 경직되고 폐쇄적인 환경을 개선하고 가치관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불륜 스캔들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성우는 많았지만, 대부분 일정 기간 자숙을 거치다 슬그머니 복귀하는 공식이 통용됐다. 여기에는 불륜에 관대한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한다. 불륜은 범죄가 아니라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만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물의를 빚은 후루야의 경우 불륜 상대가 37세 연하인 데다 낙태를 종용하고 폭행을 했다는 점에서 단순 불륜 이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성우계에서 영원히 은퇴하라”는 요구가 쇄도하는 가운데, 벌써부터 이벤트와 출연 프로그램이 취소되는 등 영향이 나오기 시작했다. 후루야의 소속사인 아오니프로덕션도 그간 느슨했던 업계의 ‘공식’과 달리 “본건은 성우로서의 자각과 책임이 결여된 행동이며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엄격한 입장문을 냈다.
이제 이목이 향하는 것은 ‘배역 교체가 있느냐’다. 특히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의 아무로 토오루 역은 2018년 흥행 수입이 90억 엔(약 783억 원) 이상 대박을 친 극장판 인기를 견인한 주요 캐릭터다.
일각에서는 “후루야가 일본 애니메이션업계에서 최고참 경력의 소유자이고 상당한 비중을 가진 중역이기에 성우 교체 없이 그냥 넘어갈 가능성 높다”라는 관측이 있는가 하면, “캐릭터를 사유화하고 불륜에 이용했다는 점, 타 불륜 사건과는 다르게 폭행이 엮인 사건이라는 점 등에서 묻고 넘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분명한 건 여기서 나온 결론이 본보기가 돼 향후 일본 성우계 스캔들 대응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과연 일본 성우계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