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만 과열된 관심은 우리 산업의 씁쓸한 단면…에너지 전환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 의지 미흡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역사를 기술한다면 '성장과 발전을 향한 끝없는 도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다. 이러한 표제는 이른바 '기업가정신'의 핵심이기도 하다. 나아가 산업혁명과 기업가정신의 실현을 떠받친 핵심 원동력은 누가 뭐라 해도 '화석연료'다. 화석연료가 가져다준 막대한 에너지가 없었다면 산업화나 기업가정신의 실현은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소 민주주의(Carbon Democracy)’를 쓴 티머시 미첼(Timothy Mitchell)은 근대 민주주의는 발전이든 억압이든 화석연료 없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고도 말한다. 화석연료는 산업화 시대 이후 모든 방면에서 인류 역사의 핵심요인이었다.
지금은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손꼽히고 있고 모두가 바라는 지속가능한 방식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의 해답은 사실 간명하다.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최종 합의문에도 담겼듯이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Transition Away From Fossil Fuels)’을 이뤄내는 것이다. 많은 과학자는 이미 많이 늦은 상황이라고 하지만 더 늦기 전에 화석연료의 단계적 감축에 착수해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에 따르면 절망스럽게도 2023년까지도 화석연료의 '감축'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도 유의미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재생에너지 용량의 증가는 매년 신기록을 이루고 있고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금액이 화석연료를 크게 앞지른 지 오래다. IEA에 따르면 2023년 재생에너지 투자는 약 1.74조 달러였던 반면,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는 약 1.05조 달러였다.
문제는 여전히 많은 기업과 국가들이 화석연료에도 1조 달러가 넘는 막대한 투자를 한다는 점이다. 같은 통계에 따르면, 펜더믹 등의 영향으로 화석연료 투자금액이 2019년 처음 줄고 2020년까지 감소세가 이어졌지만, 이후 2023년까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2023년에도 화석연료 감축은커녕 에너지 전환도 사실상 제대로 시작되지 않았다고 평가해야 적절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영일만에 석유 및 가스 매장 가능성과 시추 탐사 지시를 언급해 여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실제 매장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윤 정부 역시 화석연료 투자를 멈추지 않는 다른 국가나 기업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전환에는 별다른 의지가 없음을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루지 못한 주요 원인으로는 신재생에너지 역시 산업이기에 기술 공유보다는 치열한 경쟁이 빈번하다는 것, 전쟁 등 국제정세로 인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점 등이 꼽힌다. 무엇보다 여전히 화석연료는 에너지 소비자에게는 가격이나 수급 측면에서 매력적인 자원이고, 생산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수익성 있는 사업이다. 유전 개발로 대규모 성장을 노리는 가이아나의 대통령이 최근 영국 BBC와 논쟁적인 인터뷰를 하기도 했던 것처럼, 여전히 화석연료는 성장과 발전을 이끄는 인류의 핵심 동력이다.
윤 대통령이 영일만 시추 탐사를 언급한 당일 한국가스공사의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갑작스러운 정보에 시장이 과잉 반응한 것일 수 있지만, 한편에서는 산업 전환을 위한 금융의 역할과 기후 투자를 강조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씁쓸한 기분을 감추기 어렵다.
영일만 보도에 비해 여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최근 우리도 유럽이나 미국 등에 이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초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새로운 화석연료 채굴이 여전히 유효한 시대에 과연 맹목적인 성장이나 발전보다는 '지속가능성'이 기업가정신의 핵심 가치가 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시행될 지속가능성 공시가 기업의 핵심정보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노종화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다. 현재(2017년 5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상근)으로도 재직 중이다.
노종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