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 구속…‘광’ 팔던 회장님 찬스!
▲ 지난 15일 하종선 현대해상 사장(가운데)이 외환은행 인수과정에서 론스타를 대리해 로비를 한 혐의로 구속수감되었다. 하 사장의 공백기간에 정몽윤 회장이 회사를 이끌면서 경영 복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 | ||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하 사장이 론스타를 대리해 정·관계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수사하다가 결국 하 사장을 구속수감했다. 검찰은 론스타 자금으로 의심되는 20억 원이 하 사장에게 유입된 단서를 잡고 하 사장의 금융계좌 추적, 사무실 압수수색 등을 벌여왔다. 그러나 하 사장은 불법 로비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 사장 구속수감으로 인해 현대해상은 갑작스러운 대표이사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이러다 보니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났던 ‘오너의 귀환’ 가능성이 자연스레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정 회장은 지난 1996년 분식회계 파문으로 그해 9월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고문직으로 물러난 뒤 대외적으로 대한야구협회장과 박찬호장학회 이사 등 체육계 활동에 주력했다. 지난 2001년 다시 회장직에 올랐지만 등기부에 이름을 올린 실질적인 복귀가 아니라 호칭만 ‘회장’인 ‘명예직’이었다.
지난 2004년 정 회장은 등기부상에 이사로 올리며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직에 올라 경영일선에 사실상 복귀했지만 하종선 사장이 등기 대표이사직을 맡으며 대외적으로 경영을 주관해왔다. 그러나 하 사장의 구속수감으로 이사회를 주관하는 정 회장이 대표이사 역할을 사실상 수행할 것이라 보는 시각이 팽배해있다.
그런 정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직에 오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동안 고문직이나 이사회 의장직에 있으면서 경영에 관여해왔을 것으로 보이지만 하 사장의 부재로 인해 정 회장이 명예직 회장이 아닌 대표이사 회장직에 완전 복귀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다.
▲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 ||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있던 정 회장이 벌써부터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불거진 바 있어 정 회장의 행보를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올해 대주주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정 회장 외아들 경선 씨가 주목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월 15일 경선 씨는 장내매수를 통해 현대해상 주식 2000주를 매입했다. 그리고 두 달 후인 지난 7월 13일 현대해상 주식 2만 4400주를 추가로 사들였다. 올해 21세로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경선 씨가 두 차례 지분 매입을 위해 투자한 금액은 3억 3000여 만 원이다. 경선 씨의 현대해상 지분이 아직 0.03%(2만 6400주)에 머물러 본격 후계작업을 운운하기는 이른 감이 있지만 지분 승계 작업의 첫 삽을 올해 떴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한편 정 회장은 지난 11월 16일 하 사장의 구속수감과 관련한 경영서신을 본사와 계열사, 영업대리점 등 1만 2000여 명의 현대해상 전 임직원과 설계사들에게 이메일로 발송했다고 한다. ‘하종선 사장의 검찰 구속수감은 애석한 일이지만 회사와는 무관하며 수사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 사장 거취문제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는 내용이었다고 전해진다. 하 사장의 대표이사직에 변동이 없을 것이라 못을 박으면서 정 회장의 대표이사직 복귀 소문을 정 회장이 본인이 차단하고자 한 셈이다.
업계 인사들 사이에선 “하 사장 구속수감 당일 임직원과 보험설계사들에게 서신을 보내 소문을 차단한 것은 잘한 일”이란 평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일부 업계 인사들은 “대표이사직만 취하지 않을 뿐 하 사장이 없는 상태에서 정 회장의 리더십은 별 수 없이 CEO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란 평을 하기도 한다. 대표이사 자리가 공석이기 때문에 당분간 현대해상 경영은 임원들이 담당 업무에 대한 결재권을 행사하되 중요 사안은 이사회를 수시로 열어 결정하는 형태로 갈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 의장인 정 회장의 자리가 부각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대표이사 부재 상태에서 경영의 중심은 이사회 의장인 정 회장에게 쏠릴 수밖에 없을 것이며 하 사장의 수감 기간 동안의 모든 실적이 곧 정 회장의 CEO로서의 경영성적표가 될 것이란 지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정 회장이 굳이 대표이사직에 복귀하려 하겠나’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미 현대해상 오너로서 등기임원직을 맡고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데 굳이 대표이사를 맡아 전면에 나서 법적 부담을 떠안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2선에서 ‘조용하게’ 후세 승계 작업 등 물밑 행보를 거듭하던 그에게 론스타 사건이 그를 무대 전면에 불러세운 셈이다. 정 회장의 형인 정몽준 의원의 경우 정치인으로 변신하면서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이면서도 현대중공업 내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업계 인사들 사이에선 ‘정몽준-정몽윤 회장 형제의 그룹 지배 스타일이 자주 비교대상으로 오르내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