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청약 혜택 받으려 혼인신고 미루는 경우 늘어…높아진 초혼 연령 고려해 소득 요건 현실화 지적도
이유가 무엇일까. 식은 올려도 혼인신고는 하지 않을 부부, 출산 이후에도 한 부모 가정으로 남을 부부, 청약 당첨을 위해 위장 이혼을 한 부부의 사례까지 요즘 결혼 세태를 들여다봤다.
#서류보다 중요한 건 내 집 마련
6월 5일 통계청의 인구동향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혼인 건수 19만 3657건 가운데 결혼 1년 이내 혼인신고를 한 경우는 16만 1171건(82.23%)이었다. 이 가운데 결혼 전 혼인신고를 마친 건수는 8708건(4.50%), 결혼 후 1년 미만에 이뤄진 혼인신고는 15만 2463건(78.73%)이었다.
결혼 후 혼인신고까지 2년 이상 걸리는 지연신고 비율도 매년 늘고 있다. 2010년대부터 줄곧 5%대를 유지하던 지연신고 비율은 2021년 들어 7.06%를 넘어서더니 2023년에는 8.15%를 기록했다. 4년 차 부부가 혼인신고를 한 건수도 2020년 2939건에서 2021년 3225건, 2022년 3756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가장 큰 이유는 대출과 청약에서 혜택을 받기 위해서다. 혼인신고를 안 하는 것이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혼인율이 낮아지자 정부도 주택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청약제도를 개편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기 시작했다. 3월 국토교통부는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의 신혼부부 연 소득 기준은 기존 75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신생아 출생 가구 특례대출은 1억 3000만 원에서 2억 원으로 올렸다. 또 결혼 전 배우자의 당첨 여부나 주택 소유 여부와 무관하게 생애최초·신혼부부·신생아 특별공급을 신청하는 것은 물론 부부가 당첨일이 같은 주택에 중복 신청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정부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파격적인 개선책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신생아 출생 가구 특례대출의 경우 연 소득 2억 원이면 거의 모든 맞벌이 부부들이 해당한다. 그럼에도 결혼을 앞두거나 이제 막 결혼을 한 부부들 사이에서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2025년 봄 결혼 예정인 A 씨 커플은 결혼 후에도 혼인신고는 하지 않을 계획이다. 수도권 청약을 노리는 상황에서 예비신부 A 씨가 이미 지방에 주택 한 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두 사람 다 직장이 서울이기 때문에 수도권 집이 필요하다. 증여받은 집을 처분하려고도 해봤지만 지방에 있는 탓에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혼인신고를 하면 두 사람 다 유주택자가 되어 청약 기회조차 없어지기 때문에 일단은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룰 생각”이라고 했다.
만약 신혼집을 사고 혼인신고를 하면 ‘일시적 1가구 2주택’ 제도에 따라 5년 동안 1주택자와 동일한 세금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A 씨에게는 ‘굳이 하지 않을 선택지’다. 최소 2~3년간은 더 저축하여 좋은 부동산을 매입하고 그동안은 지방 부동산 가격이 오르길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혼인신고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A 씨는 “주변에 혼인신고 하지 않고 사는 부부들이 꽤 많다. 결혼준비 카페만 가도 ‘혼인신고는 최대한 미뤄라’ ‘최소 2년은 미혼으로 살면서 대출 등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받고 천천히 해도 된다’는 말이 넘친다”며 “실질적인 혜택 받는 것이 중요하지, 서류상 결혼했냐 안 했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연 소득 2억 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데 미혼모 자처, 왜?
결혼을 이미 한 경우는 어떨까. 결혼 3년 차로 올겨울 출산을 앞둔 B 씨 부부는 아이를 낳으면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을 생각이지만 혼인신고는 계획에 없다. 이른바 '위장 미혼'인 셈이다. B 씨 부부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는 두 사람의 연 소득 합산이 1억 5000만 원인 고소득 가구이기 때문이다.
신생아 특례대출 금리는 소득이 많을수록, 대출 기간이 길수록 높아진다. 구간별로 보면 연 소득 2000만 원 이하는 1.6~1.85%(10년 납~30년 납), 2000만 원 초과~4000만 원 이하는 1.95~2.15%, 1억 원 초과~1억 3000만 원 이하는 3~3.3%의 이자가 적용된다. 여기에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따라 1억 3000만 원 초과~2억 원 이하 구간이 추가될 예정이다.
B 씨 부부의 경우 가장 마지막 구간에 해당돼 대출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예상되는 적용 금리가 최소 3.3%~최대 4%에 육박한다. B 씨 입장에서는 오히려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 더 손해인 셈이다. 게다가 최근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는 6개월 연속 하락해 3%대까지 내려왔다.
B 씨는 “신생아 특례대출은 혼인신고 여부와 상관없이 미혼모·부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미혼모 신분이더라도 이자를 적게 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면서도 “편법이기 때문에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더 유리한 선택지가 있다면 누군들 안 하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국토부가 2023년 하반기 주택 청약 및 공급 실태를 조사한 결과, 신혼부부 특별공급 청약 자격을 얻거나 무주택 기간 점수를 얻기 위해 주택을 가진 배우자와 허위로 이혼하는 ‘위장 이혼’을 한 사례도 7건이나 적발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부산에 거주하는 C 씨는 가점제 당첨을 위해 허위로 이혼한 후 청약에 당첨되자 2개월 만에 다시 혼인신고를 했다. 조사 결과, C 씨는 이혼 기간에도 아내 명의의 집에서 계속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혼인신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부합산 소득 요건 등의 제한을 없애는 등의 더 과감한 혜택을 줘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초혼 연령이 높아지고 맞벌이 비중이 늘면서 출생 가구의 소득도 전반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부부들은 혼인신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의 A 씨는 “정부가 신혼부부를 위한 혜택을 늘렸다고는 하나 결혼 준비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결혼은 페널티’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B 씨는 “정부의 정책이 부족하다기 보다는 다들 혼인신고 전후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다 받으려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면서도 “꼭 대출 때문이 아니더라도 최소 1년은 살아보고 혼인신고를 하는 부부가 많이 늘었다. 반드시 혼인신고를 한 제도권 내 부부만 정상 가구라는 인식도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