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모티브…시험기간 개봉 한계 극복하면 여름 흥행까지 기대
5월 15일 ‘그녀가 죽었다’, 29일 ‘설계자’, 6월 5일 ‘원더랜드’가 연이어 개봉했다. 변요한, 신혜선, 강동원, 탕웨이,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등 경쟁력 있는 배우들이 연이어 등판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6월 10일 기준 ‘그녀가 죽었다’는 114만 4394명, ‘설계자’는 50만 8986명, ‘원더랜드’는 49만 1452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 6일째인 ‘원더랜드’가 49만 1452명을 동원한 것을 기준으로 보면 ‘그녀가 죽었다’는 42만 4143명, ‘설계자’는 39만 132명으로 ‘원더랜드’가 조금 앞선다. ‘설계자’는 100만 관객 돌파가 요원해 보이고 100만은 넘긴 ‘그녀가 죽었다’ 역시 200만 관객까지는 힘겨워 보인다. 입소문이 흥행을 좌우하는 개봉 2주 차를 앞둔 ‘원더랜드’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기대작 한국 영화들이 꾸준히 개봉하고 있다는 부분은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일일 박스오피스에서 4~5위를 기록하고 있는 ‘범죄도시4’가 극장가를 독점하고 있던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이어진 분위기와는 분명 달라진 양상이다.
확실한 반등 포인트가 절실한 상황에서 한국 영화계는 6월 21일 개봉 예정인 ‘하이재킹’에 기대감을 집중하고 있다. ‘하이재킹’이 다시 흥행의 불씨를 당겨줄 수 있다면 그 분위기가 최대 성수기인 7~8월 여름 극장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영화계가 극심한 어려움에 빠진 이유는 단연 여름 극장가 흥행 부진이었다. 엄청난 제작비가 투자된 대작들이 동반 흥행 실패를 기록해 영화계의 근간인 투자 환경까지 뒤흔들어 버렸다.
‘하이재킹’은 1971년에 발생한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여객기 조종사 ‘태인(하정우 분)’과 ‘규식(성동일 분)’, 승무원 ‘옥순(채수빈 분)’ 등이 납치범과 사투를 벌이는 내용으로 비행기에 사제폭탄을 터트리며 조종실을 장악한 납치범 ‘용대’ 역할은 여진구가 맡았다.
‘태인’ 역할의 하정우는 비행기를 무사히 착륙시키기 위해 영화 내내 안간힘을 쓰지만, 배우 하정우는 흥행 비행기를 더 높이 띄워야 한다. 하정우는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확실한 티켓 파워를 갖춘 배우로 분류됐지만 최근 흥행 성적은 이런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 ‘비공식작전’과 ‘1947 보스톤’이 연이어 흥행에 실패한 것. ‘비공식작전’은 2023년 여름 성수기, ‘1947 보스톤’은 2023년 추석 성수기에 개봉했지만 두 영화 모두 100만 명을 겨우 넘는 흥행 성적에 만족해야 했다. 하정우 입장에선 ‘하이재킹’을 통해 자신의 티켓 파워를 다시 띄우는 데 성공해야만 한다.
‘국민 남동생’으로 불리던 여진구는 ‘하이재킹’에서 최초로 악역에 도전한다. 그가 맡은 캐릭터 ‘용대’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며 한국전쟁 때 북한 인민군 장교가 된 형 때문에 극심한 차별과 괄시를 받으며 살아온 인물이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복역한 그는 북에 있는 형을 만나겠다는 생각으로 비행기를 납치한다. 여진구 역시 아역 시절 받은 큰 사랑에 비해 최근 몇 년 동안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거의 없다. 악역 캐릭터에 도전해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하는 여진구 입장에서도 ‘하이재킹’이 확실한 반전의 계기가 돼야 한다.
하정우와 여진구는 같은 영화에 출연한 경험이 있다. 바로 2017년 개봉작 ‘1987’로 하정우는 ‘공안부장’ 역할로 출연했고 여진구는 ‘경찰 조사를 받다 사망한 대학생’ 역할로 특별출연했다. 그리고 ‘하이재킹’의 연출을 맡아 입봉하는 김성한 감독은 ‘1987’ 조감독이었다.
더욱 눈길을 끄는 이는 ‘하이재킹’의 시나리오를 쓴 김경찬 작가다. ‘1987’의 시나리오를 쓴 김경찬 작가는 ‘카트’ ‘뺑반’ ‘파이프라인’ ‘태일이’ 등의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김경찬 작가는 ‘카트’와 ‘1987’로 51회와 5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바 있다.
73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성공은 물론이고 작품성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1987’의 주역들이 다시 의기투합한 영화가 바로 ‘하이재킹’이라는 점에서 영화계의 기대치가 높다. 이번에도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기도 하다.
제작보고회에서 김성한 감독은 “조감독으로 ‘1987’을 마치고 작가님과 종종 뵀는데 1971년 하이재킹 사건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 같은 이야기라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작가님과 제작자분들께서 감독 해봐도 좋겠다고 하셔서 운이 좋게 맡게 됐다”라며 “실화 바탕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이것을 영화로 만듦에 있어 중요한 것은 ‘진심’과 ‘진정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부분이 관객에게 잘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하이재킹’ 입장에선 기말고사가 가장 큰 적이다. 개봉일인 6월 21일 기말고사 기간과 겹치는데 극장가 최악의 비수기가 바로 시험기간이다. 아무래도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이 극장을 찾기 힘겨운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22년 여름 극장가 최고 흥행작 ‘탑건: 매버릭’이 6월 22일 개봉해 82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사례도 있다. 영화만 좋으면 개봉 시점과 무관하며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2024년 최고 흥행작인 ‘파묘’와 ‘범죄도시4’도 비수기에 개봉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과 OTT 확장세라는 직격탄을 맞은 한국 영화계의 유일한 돌파구는 비록 외화일지라도 좋은 영화가 많이 개봉해 다시 일반 대중의 발길을 극장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조금씩 분위기가 좋아지며 ‘파묘’와 ‘범죄도시4’가 연이어 흥행하는 성과로 연결됐다. 따라서 초여름 극장가에서 ‘하이재킹’이 흥행에 성공할 경우 대작들의 격전장이 될 여름 극장가로 좋은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다.
일주일 뒤인 6월 26일에는 이성민, 이희준의 ‘핸섬가이즈’가 개봉하고 7월 3일에는 이제훈, 구교환, 홍사빈의 ‘탈주’가 그 뒤를 잇는다. ‘하이재킹’과 함께 비수기에 개봉하는 한국 영화들이 2024년 여름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면 한국 영화계가 완벽한 봄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