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뒷골목의 가난한 노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 봤다. 가난한 노인들이 공짜 지하철을 타고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무료급식소 앞이었다. 노인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200명만 비빔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허겁지겁 뒤늦게 나타난 노인 바로 앞에서 줄이 끝났다. 그 노인은 돌아서서 한참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이 개XX들아.”

내 나이 70이 됐다. 실버타운에서 2년간 살아봤다. 내가 변호사인 걸 알고 실버타운 직원이 물었다. 조카가 절도죄로 감옥에 갔다는 것이다. 40년 변호사 경험을 살려 가족과 상담도 하고 법률 서류도 써 줬다. 밤새 탄원서를 작성해 법원장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그런데 부탁한 사람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나는 그저 늙은이로 전락해 있었다. 더 이상 변호사가 아니었다. 40년 법조 경력이 삭제된 느낌이었다.
같은 실버타운에 80대 노인이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부산에서 평생 의원을 해 왔어요. 동해바다의 또 다른 파도가 좋아서 이 바닷가 실버타운으로 왔죠. 좋은 일을 하고 싶어요. 가지고 있는 재능을 썩히면 뭐합니까?”
그는 매주 이틀씩 노인들을 진료해 주었다. 어느 날 그가 하소연 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어요? 간호조무사인 직원이 나한테 진료에 대해 일일이 명령을 하는 거예요.”
그는 펄펄 뛰었다. 자존심을 다친 것 같았다. 그는 실버타운을 떠났다. 1년 후 그 의사 노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실버타운의 계단이 어두워서 밤이면 넘어질 위험이 있었다. 직원에게 층계참에 등을 하나 달아주면 어떻겠느냐고 건의했다. 그가 무표정하게 들었다. 잠시 후 돌아서 가는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늙었으면 밤에 디비져 자지 않고 뭐 하러 다니노.”
폐차장에 수북이 쌓인 녹슨 자동차들이 떠올랐다. 거기에는 고급차고 아니고가 구별이 없었다. 나는 이제 75세를 앞에 두고 있다. ‘플랜 75’라는 영화 장면이 떠오른다. 75세가 되면 정부가 안락사를 권했다. 초고령사회에서 인간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이었다.
변호사인 나는 강태기 시인이 사는 달동네 임대아파트에 간 적이 있었다. 폐암 4기인 그는 어둠침침한 방에 혼자 누워 있었다. 노인이었다. 썰렁한 방바닥에는 얇은 요가 깔려 있고 그 위에 때 묻은 이불이 구겨진 채 놓여 있었다. 끼니때가 되면 기어서 싱크대로 다가가 혼자 누룽지를 끓여 먹는다고 했다.
그는 버스 정비공으로 있던 소년 시절 두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문학 천재였다. 그는 서서히 죽음의 언덕 밑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요의 옆에는 공책과 연필이 놓여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국가에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임대아파트에서 살게 해 줘서 하루 종일 누워있을 수가 있어요. 쌀도 주고 돈도 줍니다. 한 달에 두 번씩 주민센터에서 사람이 와서 목욕을 시켜줘요.”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나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전혀 모릅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그의 복지정책에 대해 정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노인이 되는 나이를 70세로 하자는 입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법조문 안에 국가가 노인을 인격으로 대하는 정신이 들어있는 것일까. 아니면 몰래 계산기를 두드린 것일까. 모르겠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 journalist@ilyo.co.kr